부모교육 강사 이윤정(44·사진)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 쓴 부모교육 강사 이윤정씨
중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그분’이 찾아온다. 거짓말은 날로 늘어가고, 반항기는 쑥쑥 자란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보편적 징후다. 그러잖아도 초기 갱년기를 맞으며 기운 없이 지내는 엄마는 힘들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어디서 말대꾸야?” 상처뿐인 말들을 내뱉은 엄마는 곧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 부모교육 강사 이윤정(44·사진)씨는 자녀와 함께 비폭력대화를 나누며 불화의 고리를 풀어갔다. 얼마 전, 큰아들 김도형군과 함께 쓴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한겨레에듀)를 통해 그 과정을 소개한 이씨를 만나봤다.
부모교육을 한 지 10년이 됐다고 했다. 부모 대상 교육을 한 계기가 있나? “큰아이를 갖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과외를 했다. 집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 집안에 대해 잘 알게 되더라. 그때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더 심각한 문제를 안은 부모가 있단 걸 알게 됐다. 또 청소년들에게 성교육 문제가 심각하단 것도 알았다. 나이 40부터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는데 과외를 그만 두고 선택한 게 성교육 강사였다. 공부는 재밌었는데 상담이 어려웠다. 미혼모 등을 대상으로 상담하는데 나도 모르게 “왜 저래?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스스로 공감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부모교육이 떠올랐다. 어떤 주제이건 간에 강의를 한다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용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외 하면서 접했던 여러 부모 유형도 있었고, 내가 현재진행형 부모니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제 사례도 털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교육 가운에서도 대화법, 대화법에서도 비폭력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비폭력대화의 핵심은 뭔가?
“서로의 욕구를 보는 거다. 다른 대화법은 보통 ‘먼저 들어라. 양보해라. 상대를 받아들여라’라고 충고한다. 비폭력대화는 양쪽의 욕구를 중시한다. 일방적인 게 아니라 양쪽 욕구를 채우는 방법을 모아보자는 거다.
내 큰아이는 사춘기를 참 다양하게 보냈다.(웃음) 뒤에 다른 학생의 사례도 있긴 한데 주요 스토리는 중2 때부터 고1 때까지 큰아들이 저지른 이야기고, 아이의 마음을 적은 부분도 아들이 썼다. 친구들에게 꽂혀서 몰려다니고 일을 저지르더라. 나는 나대로 고통스러웠고, 아이는 아이대로 답답해했다. 그때 내가 배운 비폭력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사춘기 아이와 엄마 사이에 비폭력대화가 필요한 이유가 있나?
“보통 어떤 집단이 회의를 하면 다수결로 뭔가를 결정한다. 우린 그걸 ‘민주’라고 배웠다. 비폭력대화의 회의에선 소수의 의견과 욕구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뜻에서 한 사람도 불만이 없도록 합의해서 결론을 낸다. 시간은 좀 들지만 구성원들 모두의 동의를 구하고, 생산성도 늘려주는 방법이다. 사춘기 시절, 부모와 자식 관계는 힘을 가진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의 싸움과 비슷하다. 부모들은 “내 말 무조건 들어!”라고 말한다. 비폭력대화는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에서 ‘힘을 가진’ 부모의 욕구만 중요한 게 아니고, 힘없는 아이의 욕구도 함께 중요하단 걸 알려주는 대화법이다. 서로의 욕구를 충분히 보고 합의하는 절차를 거치자고 강조하는 게 비폭력대화의 핵심이고 매력이다.”
사춘기를 겪는 모든 아이와 부모는 갈등을 겪지만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도 있지 않나?
“외국 학자들은 우리나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보고 병리적이라고 한다. 일정 나이가 되면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부모는 내 몸으로 낳은 아이를 나로부터 독립시키는 게 목표인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또 한 가지 특수한 상황은 학습에 대한 강요가 크다는 거다. 학부모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는 상황은 ‘공부 안 하냐? 성적 왜 이 모양이야?’라고 말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잖아도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힘든 시기에 우리나라 아이들은 입시에 대한 압박까지 떠안고 산다. 학교에 가선 성적 때문에 좌절하고, 집에 와선 엄마 잔소리에 상처 받고 사는 게 우리나라 사춘기 아이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대화법이 필요한 건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사춘기 아이들은 비논리적이라 감정적으로 자기 말만 앞세우는데 부모는 그 앞에서 종종 화가 치민다. 비폭력대화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을 기본 모델로 한다. 엄마 처지에선 ‘왜 이랬어!’가 아니라 ‘네 생각은 이런 거니? 엄마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는 자기 욕구를 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될 거다. 물론 아이의 욕구가 뭔지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어보면 서로의 감정에 대한 ‘공감’을 핵심어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태이거나 속상한 상황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그 감정에 대해 공감받지 못하면 지능이 떨어진다는 결과도 있다. 일단, 공감을 얻으면 문제해결력이 생긴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다. 엄마들 대화도 그렇잖나. ‘그래. 속상했겠다. 네가 진짜 걔한테 어떻게 했는데…. 엄마 노릇 힘들지’라는 이야기를 다른 엄마한테 들으면 어느 순간, ‘어머! 우리 애 올 시간 됐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원 가기 싫다고 하면 ‘그래. 정말 가기 싫겠다. 집에서 편하게 낮잠 자고 싶지? 그러게, 얼마나 힘드니’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몸도 만져줘야 한다. 그러면 말 안 해도 아이 스스로 학원에 가야 한다는 걸 알고 행동한다.”
기린 엄마, 자칼 엄마 개념이 나온다. 기린은 아이들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엄마를 상징하고, 자칼은 폭력적인 언어를 쓰는 엄마를 상징한다. 기린 엄마에 대해서 아이를 마냥 품어주는 엄마로 오해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부모 노릇은 크게 ‘사랑하기’와 ‘가르치기’로 나뉜다. 사랑을 할 땐 더없이 자애로워야 하고, 가르침을 줄 땐 엄격할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건 훈육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훈육 먼저 한다. 내 자식은 나보다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다. 받아주기만 하는 게 기린 엄마는 아니다. 사랑을 먼저 전달하는 게 기린 엄마다. 내가 얼마만큼 아이를 사랑하는지를 아이에게 먼저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엄마 마음은 이거고, 네 마음은 이래. 그리고 엄마는 이걸 부탁하고 싶어’라고 말해줬으면 한다. 훈육은 그다음에 해야 한다.”
비폭력대화를 통해 각각 엄마와 아이가 변화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사춘기가 오면서 아이의 거짓말이 점점 심해지더라. 어느 날, 아이가 거짓말하는 이유를 듣고, 깨달은 게 있었다. 아이는 노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큰아이는 자유와 재미,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내 욕구는 아이와 신뢰 관계를 쌓는 거였다. 비폭력대화 강사면서 내가 가진 욕구, 아이가 가진 욕구, 그것들의 크기 등을 못 보고 있었단 걸 알았다. 결국 서로의 욕구를 충족하는 합의안을 만들었다.
예전엔 다투고 난 뒤 아이의 회복 속도가 하루 정도 걸렸다면 이젠 30분 안에 ‘제가 아까 너무 화냈어요’라고 말하더라. 갈등 없는 관계는 없다. 중요한 건 문제 해결 과정이다.”
운영하는 블로그 제목이 ‘기린 엄마를 꿈꾸며’다. 꿈꾼다는 건 본인도 종종 자칼 엄마가 된다는 얘기인가?
“수시로 자칼 엄마가 된다.(웃음) 그런데 달라진 건 분명히 있다. 내가 자칼로 변할 때 내가 지금 자칼이라는 걸 인식한다는 거다. 내가 난리를 치고 있는데 난리를 칠 때 욕구가 뭔가를 빨리 봐야 한다. 사실 자칼이 될 때 부모 마음, 즉 욕구는 아이와 다정하게 얘기하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은 거 아닌가.
부모들에게 매번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기린 엄마를 해보고, 성공사례를 들려 달라’고 한다. 비폭력대화 강사인 나도 아는 걸 삶으로 실천하지 못해 좌절할 때가 많다. 그래서 부족한 걸 드러내고 실패했던 사례를 놓고 함께 공감받으며 산다. 가장 중요한 건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철학을 품고 성장하는 거다.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도 성장하라는 신호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사춘기 내 아이, 비폭력대화로 사랑하는 법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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