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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국영수만 달달달? ‘나눔교육’이 뜬다

등록 2010-05-09 17:09수정 2010-05-09 17:10

“불우이웃돕기 성금 내세요.” 엄마한테 손 벌려 오천원, 만원을 내던 건 옛날 얘기다. 지금 교실에선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나눔교육이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국·영·수만 배울 게 아니라 나눔도 스스로,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나눔교육 현장 두 곳을 찾아가봤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내세요.” 엄마한테 손 벌려 오천원, 만원을 내던 건 옛날 얘기다. 지금 교실에선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나눔교육이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국·영·수만 배울 게 아니라 나눔도 스스로,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나눔교육 현장 두 곳을 찾아가봤다.




서울 송파초 졸업생 모임 ‘나눔회’

말·글 통한 나눔 개념 세우기부터
장터·봉사활동 참여…저금통 기부
“장애 편견·왕따문제 저절로 해결”

#1. 수동적 나눔교육→자발적 나눔교육

“이런 얘긴 처음 하는 거 같네요.(웃음) 교사 2년차 때 한 여학생이 저를 많이 힘들게 했었어요. 저와 충돌하는 걸 즐거워했고, 이걸 이용해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도 행사했죠. 심지어 제 이름을 붙인, 저를 못살게 구는 카페도 만들었어요. 그런 아이가 한순간 달라지더라구요. 수학여행에서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 그때 제가 쌍화탕 한 병을 내민 게 변화의 계기였죠.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기한테 약을 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었다고…. 흔히 말하는 결손가정 아이였거든요. 저도 처음으로 나눔의 힘을 알게 됐고, 공부를 시작했죠.”

지난 4월18일, 서울 송파구 석촌의 한 어린이집에선 거원초 노기전 교사가 나눔교육을 하게 된 진솔한 사연을 풀어놨다. 노 교사를 중심으로 모인 열 명의 사람들은 학부모와 학생으로 이뤄진 ‘나눔회’의 회원들이었다. 6년 전, 노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송파초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구성된 모임은 2005년에 결성됐다. 나눔 바이러스를 퍼뜨린 노 교사는 아름다운재단 교사 연수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나눔교육을 접한 뒤 반 아이들과 나눔교육을 시작했다.

단순 봉사 모임이라고 부르기엔 나눔회는 자발성과 자기주도성이 두드러졌다. 학교나 교사 차원에서 실시하는 일방적인 나눔교육을 배제하고, 학생 각자를 나눔의 주체로 세운 덕이다. 노 교사는 먼저 학생들 각자가 생각하는 ‘나눔’이 무엇인지를 말이나 글로 정리해보고, 자신만의 개념 정립을 권유하는 것으로 나눔교육의 문을 열었다. 그 뒤 나눔저금통 등을 만들어 일상적으로 돈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모은 돈을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요.” “남북어린이어깨동무에 기부하는 건 어떨까요?” 적은 돈이지만 아이들은 시민모금가로서 자신이 모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생각들을 풀어놨다. 나눔교육은 참나눔통신이란 이름의 통신문을 통해 가정에도 전파됐다. 학부모들은 학급 차원에서 실시하는 나눔 현장학습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나눔회는 나눔저금통 기부, 아름다운가게 나눔장터 참여, 가브리엘집 봉사 등을 거쳐 요즘은 인근 지역 독거노인을 돌보고 있다.


엄마, 이모, 고모, 선생님, 보문이, 현신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다 다르지만 회원들은 나눔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뜻에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학부모 최은아씨는 “나눔회 활동을 통해 딸만큼 스스로도 깨친 게 많다”고 했다. “사실 저도 이 활동 하면서 장애인들을 거의 처음으로 가까이 접하게 됐어요. 저 안에 있는 편견이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고 있죠. 저희 딸은 아마 장터를 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를 팔아봤을 거예요.(웃음)” 나눔교육을 통해 교과서로만 접하던 세상 문제를 진지하게 곱씹어본 학생도 있었다. 장보문(일신여중3)양은 “중증장애인들이 있는 가브리엘집에서 봉사를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는데 요즘은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왕따 문제를 자꾸 고민해보게 된다”고 했다. 학부모 나현주씨는 나눔회를 통해 자녀가 자연스럽게 자기주도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된 변화를 이야기했다. “제가 일이 있어서 봉사를 못 간 적이 있었거든요. 딸아이도 안 가겠거니 했는데 아이가 ‘당연히 가야지’라고 하더라구요. 저한테 의지해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아이가 정말 우러나와서 하는 활동이구나 싶었어요.” 체험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나눔교육을 통해 학부모들은 생각지 못했던 교육적 효과도 느끼고 있다. 나씨는 “딸아이가 글 하나를 써도 자기도 모르게 체험을 녹여내는 걸 보면서 신기했다”며 “막연히 나눔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고, 공부하고, 토론해보면 모두에게 의미 있는 활동이 되는 거 같다”고 했다.

구리 두레학교 ‘막무가내 대장부’

지리산 종주 ‘100m에 100원’ 모금
2007년 시작 1500만원 넘게 기부
“창의적 기획…자부심·성취감 키워”

#2. 나눔에도 ‘창의적 기획력’

“자! 이번엔 시민모금가들의 이야기를 만나봅시다. 돈을 내는 것만이 나눔은 아니에요. 이분 머리를 보세요. 1억원을 모금하려고 이렇게 머리를 길렀다고 해요. 사람들한테 이 역겨운 모습을 보기 싫으면 돈을 내라고 했답니다. 재밌죠? 이런 방법 말고도 국토를 걷거나 마라톤을 하면서 모금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름다운재단 임주현 간사가 다양한 나눔 방법을 흥미롭게 소개하자,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지난 4월30일 오후 3시, 경기 구리에 있는 대안학교인 두레학교에선 25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임 간사의 나눔교육 강의가 한창이었다. 이날 임 간사가 두레학교를 찾은 이유는 두레학교 학생 25명이 ‘막무가내 대장부’란 이름으로 오는 5월25일, 나눔을 위한 지리산 종주 활동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는 2007년도부터 지속돼 온 두레학교의 나눔활동으로 학생들이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주변 친구, 가족, 이웃에게 모금을 약속받고, 모은 돈을 아름다운재단 ‘길 위의 희망찾기 기금’으로 전달하는 활동이다.

두레학교의 나눔교육은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기부금만 내는 방식은 아니었다. 어려운 또래 친구들을 돕고는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학교 차원에서 이런 주제로 고민을 하던 차, 지금은 미국 유학을 떠난 최병훈 교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들이 100m당 100원씩,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완주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주변 친구, 가족, 이웃 등에게 모금을 약속받아 돈을 기부하는 것이다. ‘극기’와 ‘나눔’이 더해진 기획력 있는 나눔교육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2007년부터 ‘막무가내 대장부’ 이름으로 시민모금을 한 결과 학생들은 지금까지 모두 1583만원을 기부했다.

25일에 떠나는 4기 학생들은 임 간사에게 나눔이란 무엇이고, 요즘 나눔의 양상이 어떤 식으로 달라지고 있는지, 기금이 어떤 곳에 쓰이는지 등 설명을 듣고 느낀 게 많은 표정이었다. 안희경(13)양은 “기부는 무조건 돈으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산에 오르면서 기부를 할 수도 있단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김주용(13)군은 “장애인 친구들이 기부받은 돈으로 제주 여행을 한 동영상을 보고, 우리가 기부한 돈도 저렇게 쓰이는구나 싶었다”며 “우리에겐 일상적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이 그 친구들에겐 엄청나게 특별하고 귀한 경험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고 했다.

막무가내 대장부 1, 2, 3기를 이끌었던 은칠성 교사는 “이 활동은 극기와 나눔이 더해진 활동”이라며 “우선 힘든 코스를 다녀왔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여기에 더해 기부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개념 규정까지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임주현 간사는 “얼마 전까지는 돈 얼마 내라는 식의 일방적인 기부가 나눔교육의 전부였지만 요즘은 나눔의 개념이 뭔지, 기부를 하면 어떤 과정으로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나눔의 아이디어는 없는지 등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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