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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프로젝트 학습은 학생 중심의 교육”

등록 2010-04-11 15:25

강인애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
강인애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 인터뷰 | 강인애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




학교 안 평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서울시·부산시교육청이 올해부터 정기고사에서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강화한 데 이어 경기도교육청도 이르면 하반기부터 초·중학교에 서술형 문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평가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다. 창의성과 문제해결력 신장 그리고 사교육을 막기 위한 방침이다. 평가 방식이 달라지면서 교실 안 학습 방법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3월25일, 경기도 내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90개 초·중·고교에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하기로 했다. 프로젝트 학습이 학교 현장에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까? 지난 6일, 우리나라에 프로젝트 학습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온 경희대 교육학과 강인애(49·사진) 교수를 만났다. 이날 강 교수는 연구실에서 그의 대학원 제자이면서 이번 프로젝트 학습의 지원단을 맡고 있는 서봉현 교사(창용초)와 프로젝트학습 결과를 얘기하고 있었다.

서 교사가 “성공했습니다!”라고 했는데 뭐가 성공했단 이야기인가?

“서 교사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수업을 했다. 한 집단은 기존의 방식으로, 한 집단은 프로젝트학습 또는 문제기반학습 방식으로 말이다. 지식을 일방적으로 가르칠 땐 흥미도 못 느끼고 별 미동이 없던 아이들이 프로젝트·문제기반학습 환경에선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인 게 드러났다는 얘기다. 대학원 제자 가운데 정준환 교사(남양주 덕소초)는 오랫동안 이런 방식의 수업을 해오고 있는데 요즘 가르쳤던 아이들을 추적 조사하면서 논문을 준비중이다. 제자들이 고교 진학을 할 때까지 학업성취도·자존감·자기주도성 등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보는 건데 모두들 흔히 말하는 좋은 학교로 진학을 했더라.”

방금 프로젝트학습, 문제기반학습 두 개념이 나왔다. 문제기반학습(Problem-based Learning)은 7차 교육과정에서 문제해결력이 강조되면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교육청 발표안을 보면 프로젝트학습, 문제중심학습 등 여러 방법론이 나온다. 개념 혼란이 있다. 각각이 어떻게 다른가?

“주어진 주제나 학습 과제의 개방성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크게 보면 같은 개념이다. 지구온난화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 온난화로 세계가 시끄러운데 네가 이 주제로 신문 특집면을 구성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게 프로젝트학습이다. 풀어야 할 하나의 과제를 던져주는 거다.

문제중심학습은 ‘제한요소’가 더 많다. 예를 들어, 그냥 신문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겨레 어린이신문’을 만들어보라는 문제가 주어진다.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한겨레적인 시각이 뭔지를 생각할 거고, 아이들에게 맞춰 기사를 어떻게 쓸 건지 고민할 거다. 부산 지역의 온난화 이야기를 쓰되, 꼭지 수는 몇 개로 하고, 주어진 글자수는 몇 자고…, 이렇게 제한요소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 아이들은 과제가 요구하는 범위 안에 맞는 기사를 넣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결국 프로젝트도, 문제기반도 모두 과제다. 어떤 게 더 현실감 있을까? 당연히 문제기반학습이다. ‘문제’라는 단어가 “문제 있다”는 의미로 많이 쓰여서 그런 뉘앙스로 다가갈까봐 프로젝트란 문패를 단 것 같다.”


주제 던져주고 스스로 문제 해결하는 방식
흥미유발로 감성 깨우면 아이 적성계발돼
통합적 수업방식…과목별 사교육 없을것

구체적으로 교사 구실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리돼야 할 거 같다.

“연수 때 보니 중·고교 교사들은 한숨을 쉬더라.(웃음) 지금 교육 환경에선 어마어마한 혁명일 거다. 기존엔 답이 정해져 있는 수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규시간에 이런 방식이 도입된다니 교사들은 막막할 거다. 교사 구실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부터 필요하다. 프로젝트학습의 열쇳말은 ‘학습자 중심’이다. 지금의 학습환경에선 아이들이 학습의 객체다. 아이들이 학습의 주체가 되고, 교사는 학습 코칭을 하면서 몸을 낮춰야 한다. 처음엔 이런 수업이 뭐고, 어떻게 진행하는 건지 룰을 가르쳐줘야 한다. 또 과제를 구체적으로 좁혀주고, 쓰레기 정보들을 걸러내주며 그때그때 필요한 학습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수업이 고등학교에서 가능하리라고 보나?

“고1까진 그래도 어떻게 하는데 고3은 정말 어렵다고 말한다. 입시가 달라져야 하지만, 내 생각엔 지금도 수능 문제 자체는 이런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본다. 다만, 학교에서 이런 방식을 택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다. 우선 각 과목의 ‘통합’이 어렵다. 지구온난화를 초등에서 다루면 그나마 쉽다. 근데 중·고교로 넘어가면 전문적인 지구과학 지식에 국어 지식까지 더해져야 한다. 과목 구분이 너무 명확해서 과목들 사이를 넘나들지 못한다.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이런 수업을 하는 사례가 방송에 나오더라. 이런 방식의 교육 혜택이 똑똑하다는 소수한테만 주어지는 게 아쉽고 속상했다.”

민사고 아이들은 상위권의 소수 아이들이다. 과연 모든 학생들이 이런 방식의 수업을 좋아하고, 학습 능률도 오를까?

“교사가 코칭을 잘하고, 구체적이고 구조화된 주제를 던져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냥 지각 변동을 배우면 저게 뭘 어쩐다는 건지, 현실에서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모르고 앉아 있던 아이들이 이런 방식의 수업 앞에선 뭔가 해보고 싶어서 움직인다. 칠레, 터키 지진 영상을 보여주면서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보자.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일 때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그걸 내가 사는 현실의 문제로 체감한다. 동기 부여를 하는 거다. 인지가 아니라 감성이 먼저 반응해 온몸으로 그 문제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프로젝트학습에선 ‘펀’(fun, 즐거움)이란 개념이 중요하다. 거기서 출발한다. 물론 흥미 유발을 위해선 엔세대(Networking Generation)가 좋아하는 동영상 기자재 등을 충분히 활용해서 잠자고 있던 감성을 깨워야 한다.

교사가 코칭을 잘하면, 글을 잘 쓰는 아이는 지구온난화를 기사로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는 만평을 그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흔히 주입식 교육에선 낙오되던 아이들이 두각을 드러낸다. 적성 계발이 되는 거다.”

‘펀’(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프로젝트학습, 문제기반학습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도록 이끈 ‘펀’ 요소는 무엇이었나?

“대학 때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육공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그런데 어느 날, 괄호 안에 답을 채워넣는 방식의 평가를 하더라. 정말 놀랐다. 내가 영문학에서 배운 건 자기 생각을 에세이로 창의적으로 풀어쓰는 거였는데…. 정말 미치겠더라. 관둘까 하던 시점에 구성주의 수업을 만났다. 그게 내 삶의 ‘펀’이었다. 교육에서 객관주의가 교사를 지식 전달자로, 학생을 습득자로 관계를 굳히게 한다면 구성주의는 항상 실제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고, 학생을 학습의 주체로 서게 한다. 틀에 박힌 걸 싫어하는 내 사고와 정말 잘 맞았다.”

프로젝트학습은 다른 나라 것이고, 결국 우리 현실엔 안 맞는 이상론이 아니냐는 비판도 들었을 것 같다.

“90년대 초, 사람들이 구성주의로는 한국에서 일을 못 구할 거라고 했다. 한국 교육환경에선 대세가 되려면 정말 힘들다고 했다. 난 일 잡으러 가는 게 아니라 내가 평생 공부하고 싶은 즐거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오자마자 대세가 역전됐다. 사실 와서 1997년에 <왜 구성주의인가?>라는 책을 내고 욕도 먹었다. 미국 얘기만 한다고. 근데 당시엔 미국도 객관주의 방식으로 공부했다.(웃음) 이건 배움에 대한 시각이 다른 거지 미국식 또는 한국식으로 구분할 건 아니다.”

그럼 객관주의 지식관은 교육에서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보나?

“객관주의에서 말하는 지식은 외부에서 심어주는 것이다. 구성주의 지식관에서 지식은 내가 흡수하는 거다. 방법론이 아니라 관(觀)이 달라져야 한다. 그림을 보여주고, 여기에다 두달 안에 터널을 만들어보라고 과제를 준다. 아이들은 주어진 것으로 뭔가 열심히 해본다. 그러다가 ‘터널을 잘 뚫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교사는 여기서 나오는 게 미분이고, 그걸 알아보자고 할 수 있다. 객관주의에서 아이는 오직 미적분만 풀지만, 구성주의에서 아이는 문제 해결 과정을 먼저 고민한다. 터널을 뚫기 위한 도구로 미적분을 활용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문제기반학습의 평가방법을 보면 자기 평가, 동료 평가, 교사 평가 등으로 평가가 이뤄지는데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내신에 대한 압박감 등으로 부작용도 예상되는데?

“평가에서도 학습자 중심이 돼야 학습이 완성된다. 아이들에게 평가자로서의 구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럼 아이들 스스로 긍지를 느낀다. 구체적인 평가 항목을 제시해야 하고, 트레이닝도 필요하다. 구체적인 근거와 이유가 제대로 제시된다면 교사평가나 학생평가 사이의 큰 차이가 없다. 자기평가를 시켜보면 아이들은 ‘나는 공부 안 했다’고 고백할 만큼의 정직성은 있더라.(웃음)”

이번 안은 사교육의 폐단을 최소화하자는 목적으로 나왔다. 이런 학습 방법이 사교육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워낙 통합적인 수업 방식이라 과외가 어렵지 않을까.(웃음) 수학·과학 등 지금과 같은 과목별 사교육은 없을 거다. 과외를 받아 수학을 잘하던 아이들은 문제기반학습의 문제들을 보고 못 풀겠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미적분 공식에 맞춰 문제를 잘 푸는 방법만 배웠으니까.”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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