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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원 배제한 ‘눈높이 체험’…인성교육 덤으로

등록 2010-03-14 15:02

기성품처럼 틀에 박힌 업체의 체험학습 프로그램 대신 학부모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직접 기획해보는 공동 체험학습이 새로운 방식의 체험학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체험학습을 나온 학부모와 아이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기성품처럼 틀에 박힌 업체의 체험학습 프로그램 대신 학부모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직접 기획해보는 공동 체험학습이 새로운 방식의 체험학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체험학습을 나온 학부모와 아이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부모와 아이들이 만드는 ‘품앗이 체험학습
또래 아이 둔 부모들 서너명서 프로그램 꾸려
공연예약·강사초빙 등 직접 진행해 비용줄여
초등 6학년 딸을 둔 홍정수(41)씨는 요즘 봄나들이 구상에 여념이 없다. 이달 말쯤 아이를 데리고 체험학습을 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홍씨는 밤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며 갈만한 장소를 물색한다. 낮에는 주변의 다른 학부모들 대여섯 명과 만난다. 커피숍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번 체험학습의 콘셉트를 정하고, 프로그램 구성에 대해 얘기한다. 홍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주변 부모들과 같이 모임을 꾸려 체험학습을 다녀오곤 했다”고 했다.

바야흐로 체험학습 계절이다. 인터넷 공간에는 수많은 체험학습 업체들이 저마다 프로그램을 내놓고 부모와 아이들을 유혹한다. 민간 단체나 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체험학습 참가자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뜯어보면 뭔가 부족하다. 이름난 유적지나 박물관 등에서 강사의 설명을 듣고 체험학습보고서를 작성하는 ‘뻔한’ 프로그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기성품’으로 잘 만들어져 있어 골라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체험학습 대신 부모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공동 체험학습’이 확산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공동 체험학습은 몇 년 전 붐을 일으켰던 ‘품앗이 교육’과 맞닿아 있다. 품앗이 교육은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이 통하는 또래 자녀의 엄마들이 영어, 수학, 과학 등 각자 전공을 살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 입소문을 타면서 품앗이 교육은 피아노, 미술 같은 예능교육으로 확산됐다.

공동 체험학습은 학습에 주안점을 두는 품앗이 교육과 달리 체험활동에 좀더 큰 비중을 둔다. 특정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장소만 정한 뒤 그곳에 가서 즉흥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거나, 보고서 작성 등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충분히 자연이나 문화재를 느끼도록 하는 식이다. 도서관을 방문해 하루 종일 원하는 책을 맘껏 읽는 공동 체험활동을 하는 모임도 있다. 홍정수씨는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둔 부모들 서넛 또는 네댓 명이 모여서 한 달에 한두 번씩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찰, 산, 강 등으로 떠나는 경우가 주변에 꽤 많다”며 “특히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부모들이 공동 체험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정 주제를 정해 활동하는 자발적 모임들도 있다. 유적지나 박물관 등 역사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역사문화기행 모임,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 등 관람을 주목적으로 하는 공연체험 모임, 계곡이나 수목원, 희귀동식물 등을 찾아 떠나는 자연생태탐방 모임, 도서관 등지에서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문학작품의 무대가 된 지역을 찾아가는 독서여행 모임 등 다양하다. 인터넷 카페 ‘또니또사랑’(cafe.daum.net/qmftiahfjqm)의 운영자인 김미진씨는 “공연팀, 온라인서평팀, 체험·견학모임 등 몇 개의 주제별 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며 “회원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주제별 모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체험학습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 속성을 충분히 고려해 프로그램을 꾸리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린이 놀이정보 사이트 ‘놀며 자라는 아이들’(noljaa.co.kr) 운영자 이원영(41)씨는 “공동 체험학습을 하는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또 아이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체험학습은 아이들의 정서 및 인성 교육에도 좋다. 4인 가족이 모여 6개월 정도 공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는 김정란(38)씨는 “자기중심적이던 아이가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친구 사귀는 법, 말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다. 아이가 한층 성숙해진 것 같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성교육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부모들 사이에 친목을 쌓고 육아·교육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공동 체험학습은 비용 면에서도 유리하다. 장소 섭외, 공연 예약, 강사 초빙, 숙박 예약 등을 부모들이 직접 진행하면서 거품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미진씨는 “경주나 공주 등으로 1박2일 갔다 와도 6만~8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남의 도움 없이 부모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 공동 체험학습 모임을 하기 위해서는 뜻이 맞는 부모와 아이들을 모아야 한다. 요즘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모임을 꾸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동네에 사는 이웃 위주로 꾸리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는 토론을 충분히 하되, 일단 내용이 정해진 뒤에는 역할 분담을 꼼꼼히 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부족하다면 공동 체험학습은 오히려 스트레스만 남길 수 있다.

공동 체험학습 경험자 가운데 상당수는 “지나치게 교육적 목표를 노린 프로그램 구성은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어울려 같이 놀고, 즐기고, 얘기하는 것, 그리고 자연이나 문화재를 보면서 궁금증을 갖고 왜 그런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 체험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윤현주/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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