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이중언어 학습 성과…‘절대시간’의 위력

등록 2009-08-23 20:12수정 2009-08-23 20:13

미국서 영어단행본 낸 초등생 계은수양
미국서 영어단행본 낸 초등생 계은수양
동네도서관서 국어·영어책 닥치는 대로
한달 최소 10권…“언어노출 시간 중요”
국어나 영어를 동시에 잘할 수 있는 공부법은 없을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도 있는 걸까. 언어가 다른 학문을 잘하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띤다는 점이 자명해진 요즘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는 ‘국어와 영어의 동시 정복’에 관심이 많다.

여기 이제 6학년에 올라가는 초등학생이 한 명 있다. 그는 올해 6월 미국 현지에서 영어로 쓴 책을 출간했다. 책 이름은 <리틀 가든>(엑스 리브리스 펴냄). 23편의 시로 이뤄진 1부와 7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2부로 구성됐다. 단편은 논픽션, 판타지, 신화, 공포물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은 이 책의 저자인 계은수(12·대구 계성초 6)양을 만났다. 은수양의 언어능력 계발 과정을 어릴 적부터 지켜봐온 어머니 박순진(45)씨와 함께였다. 박씨는 “은수가 영어와 관련해서 사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먼저 박씨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책을 어떻게 내게 됐나요? 그것도 미국 현지에서 낼 수 있었던 데는 배경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가족이 지난해 1년 동안 미국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노스웨스턴 대학의 문학영재 프로그램 강의를 듣게 됐는데 가르치던 교수님이 은수 글이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진지하게 권하시고 직접 출판사에 글을 보내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 책으로 나오게 됐어요.”

보통의 아이들은 우리말 글쓰기도 어려워합니다. 하물며 사교육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영어 글쓰기가 자유자재의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어릴 적부터 동네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면서 책을 읽혔어요. 우리말로 된 책과 영어로 된 책을 가리지 않고 읽혔습니다. 일곱살 때쯤 되니까 스스로 읽는 능력이 길러지더라구요. 은수 할아버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눈 것도 언어적 감수성을 길러주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구요. 또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독서교육을 무척 강조하는데 학교 방침도 아이 교육방식과 잘 맞아떨어졌어요.”


아무리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글쓰기가 저절로 될까. 어머니 박씨는 “네살, 다섯살 때부터 독서하는 생활을 일상화하니까 어느 순간인가 글을 스스로 쓰려는 욕구를 보였다”고 회상했다. 정작 은수양은 글쓰기를 자주 하게 된 이유를 묻자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하는 것은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고, 상상을 이끌어 낼 수있다는 점도 매력적인데, 소설보다는 시가 상대적으로 더 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은수양에게 독서량을 물었다.

“한달에 최소한 10권 이상은 읽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루한 책도 있고, 재미있는 책도 있어서 양은 일정하지 않죠. 읽고 싶은 책이고, 지루하지 않다면 보통 1시간 반이나 2시간 정도면 한 권을 읽을 수 있어요. 책을 많이 읽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빨리 읽는 능력이 생겼나 봐요.”

우리말 책과 영어 책 중에서 어떤 것이 읽기 쉽나요?

“이제는 비슷한 수준이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 전까지는 영어 책을 좀 많이 읽으면 한글이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반대로 한글 책을 집중적으로 읽으면 영어 능력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4학년 때부터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작년에 미국에 있을 때 <트와일라이트>라는 책을 읽었는데 최근에 한국에서도 영화로 나왔죠. 그때 참 재미있게 읽어서 한국에서 번역본을 사서 읽었는데 원본보다 재미가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번역이 제대로 안 된 것 같았어요.”

독서를 한 뒤에 독후감을 쓰나요?

“길게 쓰는 독후감을 쓰지는 않아요. 대신 책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놓는 독서노트를 써요. 한 권에 한 20자 정도로 짧게 요약하는 거죠.”

몇 년째 쓰고 있다는 은수양의 독서노트를 훑어봤다. 영어 책과 한글 책이 완벽하게 뒤섞여 있었다. 올해 3월치를 넘겨 봤더니 1739번째 책으로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적혀 있었다. 우리말 책인 <한국사편지1>은 1720번째에 기록돼 있었다. 어머니 박씨에게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영어를 얼마나 일찍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데요. 은수양의 사례로 볼 때 조기 이중언어 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언제가 최적의 시기라고 정확한 시점을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한국어의 체계가 완성되지 않으면 영어에 대한 이해도 그렇게 높지 않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은수도 한국어가 깊어지면 질수록 영어의 깊이도 깊어진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서를 할 때 이해하는 면을 지켜보면 정확히 알 수 있죠. 우리말 체계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과도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

주변에서 영어 공부의 비결 같은 것을 물어오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대답해주시나요? “일시적이지만, 외국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어서 일반화해 말하는 것이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이나 글을 쓰는 시간은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효과가 큽니다. 절대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의 수준에 다다르기는 힘들죠.”

어머니 박씨는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위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 시스템이 아직 국내에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은수양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프로그램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은수양은 지금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 자신이 지닌 영어 글쓰기 능력을 발휘해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글을 써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