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하나가 학급 청소를 안 하고 도망쳤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학급 청소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 뒤의 일이라 교사는 더욱 화가 났다. 다음날 아침, 등교하는 제자를 붙들고 다짜고짜 물었다. “너 왜 청소 안 하고 도망갔어?” 제자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다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별거중이신데, 어제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너무 반가워서 말씀도 못 드리고 그냥 왔어요. 죄송해요….” 송윤희 교사(경기 상원고)는 이 일로 학생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교사는 종종 갈등을 계기로 제자와 진실로 소통하는 경험을 한다. 갈등은 교사를 교육자로 키우는 밑거름이다. 갈등을 통해 소통하는 전화위복의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새학기, 제자들과의 뻔한 싸움이 지겹고 두려운 교사들이 ‘참여소통교육모임’(www.chamtong.org) 교사들한테 고민을 털어놨다.
참여소통교육모임에 접수된 고민들
잘못을 벌하지 말고 잘못의 원인을 찾아주라
#1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떠들면 수행평가 태도 점수를 깎겠다고 얘기합니다. 점수로 아이들 협박하는 게 비교육적이라는 건 압니다. 어떨 때는 내가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점수밖에 없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이런 상황 피할 수 없을까요?”
참여소통교육모임(참통)은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무조건 학생을 벌주려고 하기보다 학생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송윤희 교사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는 건데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야 한다”며 “수업이 지루한 건지, 어려운 건지, 아님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살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교사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사는 수업에 흥미를 못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수업 일보’를 만든다. 수업 일보에는 수업에 의욕이 없는 학생들의 아주 작은 변화나 사소한 선행을 칭찬하는 내용이 주로 담긴다. 수업은 재미없어도 교사가 좋아서 수업에 참여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 벌을 주더라도 점수 말고 학생의 성향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자존심이나 권위보다 관계를 우선하라
#2 “제 수업 시간에 주요 과목 문제집을 푸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4년 동안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고작 아이들한테 외면이나 당하는 건가 싶어 가슴이 아파요. 날 무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도 생기죠. 그러지 말자 하는데 자꾸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아이들을 혼내게 됩니다.”
참통 교사들은 우선 학생들의 태도나 생각을 곡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용훈 교사(경기 영생고)는 “아이들도 입시나 사교육 때문에 그러는 거지 교사를 싫어하거나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다”라며 “아이들의 상황이나 처지를 오해하고 교사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서로한테 기억하기 싫은 수업으로 남을 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교사들은 이런 갈등 상황에서 교사의 권위나 자존심보다 학생과의 관계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이범희 교사(경기 기흥고)는 “아이들의 사정은 고려치 않고 무조건 내 과목만 고집해서는 서로 스트레스를 받고 관계만 어긋난다”고 말했다. 참통 교사들은 또 수업 내용이나 방식을 바꿀 것을 권했다. 김용훈 교사는 “과목의 필요성을 좀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거나 내용을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들면 얼마든지 학생들이 참여하는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를 신뢰하는 잣대는 공정성과 형평성이다
#3 “야자, 보충을 빼 달라는 아이들, 저도 빼주고 싶죠. 그런데 하나 빼주면 다른 아이들도 다 빼달라고 해요. 선택적으로 보내주려고 해도 누구는 보내주고 누구는 안 보내준다고 원성을 살까봐 조심스럽습니다. 다 보내주자니 교감, 교장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 눈치가 보이고요. 학생들과 갈등이 정말 심해요.”
참통 교사들은 강제 야자나 강제 보충을 둘러싼 학생과의 갈등 상황에서는 형평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모두한테 적용되는 공평하고 뚜렷한 기준을 세우는 게 좋다. 김용훈 교사는 하루에 5명씩만 불참을 허용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그날 아침에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모두한테 불참할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마다 몇 번씩 불참의 기회를 누렸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일람표를 만들어 학급에 게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학생들이 ‘차별’이라고 느낄 만한 일에 주의해야 한다. 이혜림 교사(경기 늘푸른고)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야자나 보충을 빠지게 되면 진짜 분위기가 안 좋다”며 “대신 야자나 보충을 잘하는 학생이 있으면 모범사례로 삼아서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하면 다른 아이들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제자의 거짓말은 밝히는 것보다 속아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
#4 “거짓말하는 게 눈에 다 보이는데도 끝까지 아니라고 하면 정말 화가 나죠. 그냥 사실대로만 말하면 다 용서해 줄 수 있는데 말이에요.”
만약 학생이 교사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교사는 먼저 평소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는 게 참통 교사들의 의견이다. 이범희 교사는 “눈을 부릅뜨고 ‘솔직하게 말하면 다 용서해 준다니까’라고 엄포를 놓는 선생님한테 어떻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겠냐”며 “사실 교사와의 관계가 평소에 친밀하면 학생은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 준다’는 교사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친밀감을 평소에 쌓아왔느냐가 이 갈등의 핵심인 셈이다. 송윤희 교사는 “교장선생님이 편하게 말하라고 하시면 우리 교사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융통성 있게 학생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거짓말에 속아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득이 될 때도 있다. 김용훈 교사는 “당장은 속아주고 나중에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면 학생들이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며 “비슷한 상황이 와도 우리 담임은 사실을 알면서도 봐주려고 한다는 걸 아니까 거짓말을 덜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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