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선생님이 권하다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인천 부광중 여학생 셋은 얼마 전, 책 두 권을 놓고 재밌는 토론을 했다. 주제는 ‘내 주변, 나와 조금 다른 사람들의 인권’. 구실을 마련한 주인공은 누굴까? 인문서 또는 역사서? 아니면 소설? 자서전? 모두 틀렸다. 세 사람을 모이게 한 건 재밌는 그림과 말풍선으로 이뤄진 바로 그 책, ‘만화’였다. <십시일反>(창비),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한겨레출판)를 읽은 학생들은 이번 독서 토론을 놓고 할 말이 많았다. 일단, 교과서나 신문에서만 보던 ‘인권’이란 말이 만화 안에 있다니 알고픈 마음이 꿈틀거려 책을 펼쳤다는 게 공통된 이야기다. 우현주(15)양은 “얘기로만 줄기차게 들었던 ‘인권’ 개념을 제대로 알았고, 왜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민수연(15)양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만화의 ‘한 컷’도 소개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손목이 잘려 있는 그림이었는데요. 말풍선에서 고용주가 노동자한테 그렇게 말하고 있었죠. “집으로 갈래? 병원으로 갈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도 종종 들은 얘긴데도 만화로 보니까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인권·평화·가족 등 주제있는 ‘좋은 책’ 인식
거부감 덜하고 잘 읽혀 독서 토론에 유용해
창의·사고력 신장에 도움…‘숨은 가치’ 발견
만화책이 당당히 교실로 들어오고 있다. ‘만화책=놀 때 보는 책’이란 공식도 깨진다. 교사의 시선을 피해 몰래 만화책을 펼치던 학생들은 이제 교사한테 만화책을 추천받기도 한다. 부광중 학생들 역시 김명순 국어교사의 추천으로 책을 접하게 됐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만화, 대놓고 ‘학습’을 외치는 만화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머리와 가슴을 살찌우게 하는 만화책들이다. 만화책의 좋은 점은 뭘까? 두말할 것 없다. 국어교사, 사서교사, 출판평론가, 만화평론가, 학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거부감이 덜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거죠. 재밌잖아요.” 덕분에 만화는 독서에 흥미가 없거나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한테는 더없이 좋은 독서의 첫 단추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학생에 한정지어 말한다면, 모든 학문 혹은 관심사에 입문하는 책으로 바람직하다”며 “‘인권’ 또는 ‘세계사’라고 떡하니 적힌 두툼한 책을 내밀면 도망갈 아이들이 <사이시옷>(창비) 같은 책은 겁 없이 잡는다”고 했다. 오직 만화책만으로 지식을 체계화하거나 깊이를 쌓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만화가 어려운 개념, 지식 앞에 부담 없이 다가서게 하는 텍스트임은 분명하다. 만화책의 장점을 ‘학습’에만 가둬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습만화’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때, 만화책을 ‘지식습득용’으로 많이 활용하지만 여러 교사들은 “오히려 대놓고 학습 정보를 나열하는 만화는 안 보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렇잖아도 학습에 지친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식의 만화는 또다른 피곤을 안겨준다. 오히려 만화책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요즘 나오는 만화책들은 성장, 여행, 평화와 생명, 진로와 직업 등 다양한 주제에 손을 뻗는다. 덕분에 감성을 살찌워주는 문학적 기능도 톡톡히 한다. 김윤미 서울 동성고 사서교사는 “만화 자체로 즐거움을 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는 책들, 예를 들면 학교생활이나 사춘기 고민, 가족의 사랑을 다룬 만화책이 학생들의 공감을 많이 산다”고 했다. 외모지상주의란 주제를 기발하게 풀어낸 <삼봉이발소>(소담출판사)나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대를 사랑합니다>(문학세계사) 등이 그런 경우다. 만화책의 타고난 성격은 ‘창의력’과도 맥이 통한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교수(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는 “만화는 창의력을 길러내는 종합선물 패키지”라며 “특히 연속적이지 않은 만화의 형식은 창의성을 기르는 가장 기초적인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선으로 이루어진 이미지 언어를 받아들인 다음, 연상 작용을 통해 그것을 해독하고, 다음 칸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이미지 언어와의 연관성을 찾으면서 상상을 하고, 사고를 하게 되죠.”
박인하 교수가 말하는 만화책 교육법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