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입시 때는 학원에서만 공부해도 가능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에서 수능만 대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입시의 중심은 학교다. 김동춘 대전 대성고 교사는 “입학사정관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교육 활동을 통해 학생이 잠재력을 어떻게 계발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부모의 지원보다 학교의 지원이 더 중요하다. 학교는 어떻게 학생들을 지원해야 할까. 입학사정관들이 분야마다 ‘모범 사례’를 선정했다.
■ 안양 동안고
전교생 ‘개인 포트폴리오’
제2의 학생부로 자리잡아
동안고(경기 안양시·공립)는 학교가 학생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책임진다. 상위권과 하위권을 막론하고 1800여명의 전교생이 모두 ‘개인 포트폴리오’를 지닌다. 올해 학기 초 학교가 전교생한테 나눠 준 ‘자아실현을 위한 비전설계노트’라는 문서 모음집이다. 학생들은 고교 3년의 모든 교육 활동을 문서에 기록해 ‘비전설계노트’에 보관하게 된다.
보관 대상이 되는 자료에는 내신 성적, 수능 모의고사 성적뿐만 아니라 학업계획서, 희망 대학과 학과에 대한 정보, 입시설명회 참여 소감문, 봉사활동 확인서와 자료 사진, 임원 임명장, 상장, 논술 답안지,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감문 등이 있다. 학생의 고교 3년을 기록한 모든 문서가 해당된다. 이 학교 정종회 교사는 “이런 자료를 스스로 모으면서 자기 미래를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기획했다”며 “진로나 진학과 관련된 준비와 노력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관리에는 교사들도 동참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사는 그동안 학생들이 모은 자료를 검토해 도장을 찍어 내용을 증빙해준다. 수업 시간에 접촉하는 것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학생들의 특기나 흥미 등을 꾸준히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학생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기록한 ‘제2의 학생부’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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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이렇게 지원해라
학생들이 내는 포트폴리오도 좋지만 입학사정관한테 가장 공신력 있는 전형자료는 학생부라는 점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포트폴리오에 무게를 두다 보면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부만이 사교육이 대신할 수 없는 공교육의 고유 영역이며 따라서 우리는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의 평가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지킬 생각이다.
특히 교사들의 구체적인 평가가 기록되는 ‘과목별 세부 특기 사항’과 ‘종합의견’ 난에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한 문장을 복사해 붙이기 하는 것처럼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다. 이런 평가 내용을 비공개로 하는 것도 교육 당국은 검토해야 한다. 모든 내용이 공개되는 현재로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가 있을 수 있어 교사가 솔직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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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대성고
학교가 동아리 활동 인증
등록은 쉽게 심사는 철저
대성고(대전시 중구·사립)는 학교가 동아리의 보증을 선다. 동아리 활동에 지속성과 진정성이 있음을 학교가 보증하는 ‘동아리 인증 시스템’을 통해서다. 이 학교 김동춘 교사는 “지금까지는 학생부에 동아리 이름을 올리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는 새로운 입시와는 맞지도 않을뿐더러 교육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며 “활동하는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고 말했다.
대성고는 학기마다 동아리 심사위원회를 연다. 심사위원회는 교감, 인문사회부장, 자연과학부장, 진학 담당 교사, 동아리 담당 교사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되며 한 학기 동안 동아리가 활동한 결과를 평가해 인증서를 발급한다. 1학기에 열심히 활동한 동아리라도 2학기 활동 내용이 없으면 2학기에는 인증서를 받을 수 없다. 인증서를 못 받은 동아리는 학생부에도 기재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심사기준표를 만들어 심사를 진행한다.
대신 동아리를 만드는 데 따르는 제한을 없앴다. 김동춘 교사는 “예전에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동아리를 만들고 싶어도 지도교사를 구할 수 없으면 등록이 안 됐다”며 “어떤 동아리든 마음 맞는 학생들이 모여서 의미있는 활동을 했으면 학교는 인증서를 준다”고 말했다. 동아리 인증 시스템을 운영하기 전에는 20개에 그쳤던 동아리가 현재 40여개로 늘었다.
대성고 학생들은 수시모집에 지원할 때 동아리 인증서를 첨부하고 학교는 인증서가 발급된 배경과 동아리 인증 시스템에 대한 소개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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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 이렇게 지원해라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보면 동아리 활동이 근거가 되는 일이 많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선택할 때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학교는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에 적어도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
사실 동아리는 학교의 대단한 관심이나 지원이 없어도 쉽게 활성화할 수 있는 교육 활동이다. 같은 관심과 특기를 지닌 학생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게 ‘또래효과’다.
학교는 학생들이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각 고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를 모을 때 동아리 활동과 지원에 대한 내용도 수집할 계획이다. (김경숙 동국대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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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곡여고
학교-봉사기관 직접 협약
‘지역사회 나눔’ 모델 제시
송곡여고(서울 중랑구·사립)는 지난해부터 ‘학교 주도적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근처의 서울시립 북부노인병원과 협약을 맺고 안정적인 봉사활동의 길을 열었다. 이정수 교사는 “봉사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학교와 병원의 협약식 날에는 병원 관계자와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현판식도 열었고 ‘송곡봉사단’ 출범식도 따로 했다”고 말했다.
학교와 봉사활동 기관이 협약을 맺으면서 봉사활동의 질이 달라졌다. 학생들은 책을 읽어 드리거나 손톱을 깎아 드리는 등 노인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미술반과 음악반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에 병원에서 열리는 음악치료과 미술치료반에 보조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00명의 봉사활동 지원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한 뒤 너댓 명씩 모둠을 구성해 각각의 모둠과 병실이 자매결연을 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병원의 사회복지사와 직접 협의해 봉사 시간과 봉사 일정을 조정한다.
학생들은 봉사활동의 결과를 사진이나 동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한다. 송곡여고는 올해부터 이런 봉사활동의 결과물에 대해 상을 주는 ‘봉사대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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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이렇게 지원해라
단 한 차례의 국외 봉사활동보다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봉사해 온 학생들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학교가 다양한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발굴해서 학생들한테 제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교내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이 적었지만 내용만 발굴된다면 다른 봉사활동에 견줘 훨씬 의미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 그래야 각 학교가 놓인 지역적인 격차의 문제도 자연스레 해소된다. 대다수의 농산어촌 지역은 학교 밖의 봉사활동 기관이 마땅치 않다. 문제는 아직 학교 스스로가 교내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여전히 교내 봉사상은 상위권 학생한테 프리미엄을 몰아주는 식으로 활용된다. 교사들이 성적과 상관없이 진짜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인정하고 학교 안에서 양질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교내 봉사활동도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다.
(김수연 가톨릭대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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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진명여고
매년 2회 ‘진로의 날’ 개최
미래 직업·학과 직접 지도
진명여고(서울 양천구·사립)의 달력에는 ‘진로의 날’이 두 번 있다. 1학기 때는 ‘희망 직업인과의 만남’이, 2학기 때는 ‘희망학과 선배들과의 만남’이 열린다. 올해로 벌써 9회째다. 해마다 40~50여개에 이르는 직업과 학과에 대한 수업이 개설돼 전교생이 참여한다. 이 학교 조재경 진로상담부장은 “특강을 개설하고 원하는 사람만 들으러 오라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1년 내내 준비를 해야 한다”며 “행사 당일 간단한 강의 평가서를 제출해야 출석으로 인정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진로상담부는 학기 초에 몇 반을 모집단으로 정해 지난해 개설 강의를 소개하고 올해 새롭게 알고 싶은 직업을 적어 내는 설문지를 배포한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40~50개의 직업 목록을 만든 뒤 상담부는 섭외에 들어간다. 조재경 교사는 “학교 동문이나 교사들의 지인들을 총동원하는 작업”이라며 “섭외 과정에서 그해 실제로 개설할 수 있는 직업 강의 목록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상담실은 확정된 직업 강의 목록을 공지하고 전교생한테 설문지를 다시 돌려 수강을 원하는 직업과 그 직업에 궁금한 점을 받는다. 전교생이 제출한 설문지는 각 직업의 예상 수강 인원이 되며 이때 지원자 수가 적은 강의는 강사와의 협의 아래 이듬해로 미뤄지기도 한다. 수거된 설문지는 강사들의 강의 준비를 위해 발송된다. ‘희망 학과 선배들과의 만남’ 행사도 비슷한 순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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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지도,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대학들이 학과별 모집을 실시하면서 앞으로는 학과별 인재상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할 것이다. 대학은 고교 시절에 원하는 진로와 학과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해 온 학생을 뽑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가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는 일은 이제 매우 중요한 학교의 교육 활동이 됐다. 학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진로 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방과후 학교에도 직업 강의를 열 수 있다. 직업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돕는 5~6회 강의를 만들고 수강한 학생들은 학생부의 ‘진로 지도 상황’에 기록해 준다. 방학에는 강사로 나섰던 직업인과 연계해 학생들이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전경원 건국대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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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선 기자 ed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