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모아둔 방에서 재밌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최영 씨. 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신발 트렌드를 연구해 창의적인 신발 브랜드를 출시하는 게 꿈이다”라고 했다. 최영씨 제공
[창의적 인재가 말한다] 13년 ‘신발 전문가’ 최영씨
“남극에서 냉장고를 판다면 어떻게 팔 건가?” 사고력, 순발력, 문제해결력을 모두 요하는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냉장고엔 냉장실과 냉동실이 있죠. 얼리지 않고 차게 먹어야 할 음식도 많잖아요. 그건 냉장실이라는 곳에 넣으면 된다고 설명해서 팔 거 같은데요. 사실 이건 답이 없으면서 한편으론 답이 많은 문제예요.” ‘신발 천재’ 최영(28)씨의 대답이다. 최씨는 “정형화된 교육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질문이 낯설어서 당황할 거다. ‘장난해? 추운데 왜, 어떻게 팔아?’라고 물을 거다”라며 웃었다. 그가 이런 질문 앞에서 창의적인 답을 하도록 구실을 마련한 건 어떤 사람도, 어떤 제도교육도 아니다. ‘신발’과 ‘세상’이었다.
중학생 때 나이키에 ‘꽂혀’ 몰입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뾰족한 물체에 찔려 생긴 상흔을 ‘푼크툼’(punctum)이라고 했다. 순간에 화살처럼 꽂히는 무엇,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필’(feel)과 비슷한 것이다. 13년 전, 숫기 없던 중학생 최영의 가슴에도 푼크툼의 순간이 찾아왔다. 또래 친구들이 이성 친구를 보며 가슴 설렐 때, 최영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신발이었다. “동네 신발매장에서 처음 본 나이키 에어맥스 95! 이성을 볼 때 첫눈에 반하잖아요. 왜 좋은지를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고. 그때 심정이 그랬죠.” 첫사랑의 열병처럼 병이 났다. 책상, 칠판, 연필, 가방, 선생님까지 세상이 온통 신발로 보였다. 돈이 생기면 신발을 수집했다. 각종 전문서적을 읽고, 연구를 하느라 밤을 샜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선 상위권이던 성적이 바닥을 쳤다. “신발은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는 더 심해졌다. “오타쿠 아냐?”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두고 오타쿠라 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 앞엔 신발전문가라는 수식이 붙는다. 신발이 화살처럼 마음에 꽂힌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는 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다. 발품 팔아 전문가를 만나고, 자신을 알렸던 게 그만의 문제해결 방법이었다. 고등학생 때 만든 기획안 채택돼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두 달 동안 신발 업체 ㅍ사에 몇 번에 걸쳐 기획안을 보낸 게 시작이었다. 그 회사 제품의 장단점과 앞으로 나갈 방향, 어울릴 만한 콘셉트를 적은 내용이었다. 학생의 열정을 읽은 회사 쪽에서 연락이 왔다. “두 달 뒤 팀장님이라는 분을 만났죠. 제 아이디어가 반영이 될 것 같다면서 신발 인생 30년 만에 너 같은 열정을 가진 애는 처음이라고 하셨죠. 감사했던 게, 부모님께 이 분야에서 큰일을 할 거니까 반대하지 말라고 해주셨어요.” 그 뒤로도 전화번호부를 보고 관심을 갖던 여러 신발회사에 연락해 아이디어를 보냈다. 기획안을 받아 본 ㄹ사 쪽에선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부산 경남정보대 신발패션학과에 들어가서 전문적인 공부를 해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목표가 생긴 거죠. 근데 그때 공부를 하기엔 너무 늦었고,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신발디자인공모전에 우선 도전했어요. 직접 시장에 나가서 5000여장의 신발 사진을 찍고 그걸 앞에 두고 그림 연습을 했죠.” 결국 공모전 금상 수상을 했지만 입학이 쉽지 않았다. 내신이 낮아 예비 1 순위로 있다가 겨우 입학을 했다. “꼴찌로 들어갔죠.(웃음) 그래도 과 수석은 놓치지 않았어요.” 10년 이상의 ‘몰입’이 가능했던 이유를 묻자 그는 “이유라기보단 마음에 품은 열정이 있었고, 문제를 세상에 나가 차근차근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발품 팔아 전문가들을 만나는 과정에선 책을 읽고, 읽은 것을 정리해두는 습관, 자기 암시를 글로 옮겨두는 습관 등이 큰 도움이 됐다. “군대 때도 그랬어요. 읽고 넘어가는 건 아니다. 뭐라도 남겨야 한다. 그래서 기록을 했죠. 기획안을 만들 때, 설득을 할 때 그게 도움을 준 거 같아요. <미래를 읽는 기술>이란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장밋빛 미래 말고, 다른 미래도 상상해보라고 말하죠. 전 A라는 상황이 있다면 B라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는 여지를 종종 생각해요. 이런 대처, 저런 대처를 다 해보게 되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글로 적어가면서 시나리오처럼 써보는 거예요. 생각 폭이 넓어지죠.” “수많은 답 중에 나만의 답을 찾길” 최씨는 경남정보대 졸업 뒤 전문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연세대(원주캠퍼스) 경영학과에 편입했고, 올 2월에 졸업했다. 2006년도에는 ㅅ사와 자신의 브랜드 ‘TAKI 183 by Young Choi’를 출시하기도 했다. 지금은 중견 신발업체 ㄴ사에서 신발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잡지 <스트리트 풋> 객원기자, 자기계발과 진로 선택을 주제로 한 대학 특강 강사로도 활동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냉동과 냉장의 차이를 이용한 자신만의 답을 말하면서 “문제해결력이란, 수많은 답 가운데 나만의 이유가 있는 하나의 답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내가 정말 뭐에 빠져 있는지 제대로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차근차근 적어보면서 해결해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일본 학자 노구치 유키오의 말을 인용했다. “지식의 습득이 쉬워질수록 박식함이 떨어진다고 했거든요. 전 책 보고, 전화해서 그 분야 사람들을 만나 직접 조언을 구하며 문제를 풀었어요. 공부하지 말고 나가라는 얘긴 아니에요.(웃음) 공부에서 기르는 문제해결력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예를 들어 지식 검색 사이트에 익숙해지지 말고, 아날로그적으로 지식을 찾아보는 거예요. 여러 길이 보일 거고, 몰라서 가볼 생각도 못한 길도 보일 겁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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