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원 건국대 입학사정관
이주의 교육테마 / 전경원 건국대 입학사정관 인터뷰 차등지원 방침 뒤 과열 분위기
사정관들 불안정한 신분 ‘문제’
수험생들 ‘진솔한 스펙’ 유념을 요즘 교육계의 화두는 입학사정관제인 듯싶다. 입학생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겠다는 대학부터 지난해 선발 인원보다 10배 이상의 인원을 이 제도를 통해 뽑겠다는 대학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새로운 ‘패션’이자 ‘열풍’이다. 건국대 전경원(39) 입학사정관은 “점진적인 접근 방식을 통한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칫 섣불리 접근하다보면 점수 위주 입시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증요법이 아닌, 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삼자는 얘기다. 그는 제도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 진로지도의 실질화,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의 연계 강화, 입학사정관의 신분 보장을 통한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 등이 이 제도의 성공 여부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고등학교 3학년 교사로 8년동안 진학지도 담당을 맡아온 그는 현장을 아는, 이 분야 전문가다. ■ 최근 입학사정관제도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하나? “해방 이후 점수 위주 입시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입학사정관제는 큰 틀에서 기존 구도를 바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도로 봐야 한다. 점수 위주 입시가 가져온 결과는 분명하다. 공교육 현장, 즉 학교가 파행적으로 운영됐다. 사교육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다. 대학은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했다. 대학들이 이런 현실에 공감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의 차등적 지원을 약속한 뒤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과열 분위기에는 문제가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가?
“차분하면서도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오해와 선입견을 제대로 교정하지 않고 섣부르게 접근하다가는 부작용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일단 이 제도에 대한 이해가 좀더 필요하다. 고등학교의 일선 교사들도 이 제도를 잘 알지 못한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예를 들어서 학교의 성적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제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서류전형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돼 있는 내신성적과 이에 대한 교사들의 코멘트는 평가항목에 포함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에 대해 좀더 깊은 사회적 토론과 소통이 있어야 대증요법이 아닌 체질을 바꾸는 해법이 될 수 있다.” ■ 최근 한 대학의 총장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고등학교에 따라 등급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의 취지와는 어긋나는 방향이다. 맞지 않는다. 학교 간의 학력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배들의 성적을 적용하는 것은 ‘연좌제’의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개인의 잠재력과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제도의 기본적인 철학이라는 점에 비춰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입학사정관들이 현장을 방문해 고등학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지만, 그 목적을 ‘등급화를 통한 평가’에 둬서는 안 된다. 어떤 교육적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 입학사정관 전형을 크게 늘리겠다는 대학들조차도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현재 대학에는 입학사정관의 수가 충분하지 않다. 입학사정관은 한 자릿수인데 응시자가 수천명~수만명 단위라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처럼 신뢰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곳에서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신뢰받는 제도로 발전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부실하게 운용된다면 부작용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점수를 비교한 후에야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입시제도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 문화에서 입학사정관제도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대학들이 만들어놓은 입학사정관 제도는 점진적인 접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식’ 입학사정관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원조 격인 미국에서는 입학사정관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입학사정관과 함께 해당 전공학과의 교수나 기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의 수도 늘려야 하지만 ‘신분 보장을 통한 독립성 확보’도 중요한 문제다. 현재 전국적으로 250명 안팎의 입학사정관이 대학에 고용돼 있는데 이 가운데 9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신분이 불안하다보니 소신 있게 이 제도를 구현하기가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은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보는가? “현재 교육학이나 상담심리학, 통계학 등의 전공자 가운데 입학사정관을 선발하고 있는데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문지식과 함께 필요한 것은 현장에 대한 전문성이다. 이 제도의 성패는 대학과 고등학교가 얼마나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연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두 곳을 모두 아는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대학을 경험한 이들은 고등학교 내신 시험에서 어떤 식으로 평균 점수를 부풀리는지를 잡아내지 못한다. 이에 비해 교사 경력자들은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고등학교 교사 가운데 박사학위를 가진 교사가 1000명이 넘지만, 선뜻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다. 신분 보장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입학사정관의 절대 숫자를 충분히 늘리고 입시 전형이 시작됐을 때 한시적으로 결합해 일할 수 있는 임시사정관 제도도 적극 활용해 볼 만하다. 이를 위해서는 퇴직 교수나 교사 등을 이에 참여시킬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 지난해 치러진 전형을 보면 9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석달 동안 서류와 면접시험을 모두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간을 늘려 1학기 때 전형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류의 진위 여부나 고등학교 교육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전형 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 1학기 때부터 시작해서 철저한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어쨌든 올해 고3 학생들의 진학을 책임져야 하는 현장의 교사들은 실무적인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보나? “우선 학교생활기록부를 내실화해야 한다. 일선 교사들의 평가권을 강화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대학 입장에서 보면 지원자에 대한 다양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교과발달사항, 세부능력, 특기사항 등을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정리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면 대학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런데 실제 기록부를 보면 식상한 내용이 무성의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독서 이력 같은 것도 무성의하게 기록된 것과 알차게 기록된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 올해 고3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하는가? “‘스펙’(대학이 요구하는 입학자격)을 관리해준다면서 컨설팅을 제의하는, 이른바 ‘고급 사교육’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포장은 평가자들에 의해 쉽게 검증된다. 학교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이뤄진 경력과 경험이 좋다. 진솔하고도 구체적인 경력과 경험이 평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 학교에 들어온 한 학생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가 추구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 학생은 경기도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의 역사유적에도 관심을 보이다가 조선의 실학자 안정복의 묘지가 지역에 있는 것을 계기로 해서 그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안정복이 다산 정약용의 스승뻘이 된다는 점, 그의 묘지가 의외로 초라하다는 점 등을 파악하면서 관련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논문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결과 군청에서는 그 묘지를 유적지로 만들었다. 지금 1학년인 이 학생에게 뭐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10년 뒤에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일할 텐데 그때쯤에는 프랑스에서 직지심경을 돌려받아 그것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자연스럽게 찾는 데 공교육과 학부모가 나서야 하고, 대학은 그들을 제대로 찾아내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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