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교사도, 부모도 몰랐던 재능을 서로가 먼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팀워크’ 덕이었다. 오른쪽부터 류승오, 이윤형, 이성수, 박순우군.
창의력 대회 준비하며
서로의 숨은 장점 발견
‘당당한 2등’ 값진 결과 넷은 모두 달랐다. 육군 장교가 되고 싶은 이성수(12)군은 말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동갑내기 박순우(12)군은 온통 책에만 관심이 있을 뿐 친구 사귀는 법을 몰랐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책과 신문만 끼고 사는 순우군 탓에 어머니 김난영(38)씨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류승오(13)군은 때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산만한 순우군이 못마땅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다. 학교에서는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혀 어머니 천은희(52)씨를 수시로 담임교사 앞에 세웠던 이윤형(13)군은 화를 잘 냈고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넷이 모여 창의력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고속열차(KTX)를 구경하러 간다며” 놀렸다. 지난 2월 16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이 일어났다. 대구에서 열린 ‘미래문제해결기법 한국대표 선발대회’에서 이들은 쟁쟁한 영재교육원 출신들을 제치고 ‘문제해결 부문’에서 2등상을 받았다. 해결한 문제를 연극으로 표현하는 ‘행위연출’ 부문에서도 3위에 올랐다. 이들을 지도한 김은선(46) 교사는 이런 결과에 대한 답을 “협동”의 결과라고 말한다. 네 학생은 인천시 부평구 부개1동 성당이 운영하는 ‘두레터 방과후 학교’의 창의력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김은선 교사는 두레터 학교의 교감이자 창의 수업을 맡은 교사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넷씩 팀을 이뤄 진행되는 협동수업의 형태라 어쩔 수 없이 얘기를 하고 얘기를 들어줘야 했다. 팀은 매주 수업이 열릴 때마다 바뀌었다. 여느 친구들한테는 없는 그 친구만이 가진 장점과 강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수군은 “순우를 처음 봤을 때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는 걸 보니 경제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윤형군이 연극 대본을 잘 쓴다는 것도, 까칠하고 꼼꼼한 승오군한테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다는 것도 서로 깨달았다. 발랄하기만 한 줄 알았던 성수군한테 다양한 의견을 정리하는 리더십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서로의 능력과 재능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자 협동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우주쓰레기 처리’에 대한 문제를 주고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내라고 했던 대회에서 넷은 마치 한 수레를 굴리는 네 바퀴 같았다. 빠른 시간 안에 넷의 의견을 요약 정리하는 데는 성수군이 나섰고, 현실적이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는 순우군의 몫이었다. 행위연출에서 3위에 입상할 수 있었던 데는 대본 작성에 능력을 발휘한 윤형군과 부족한 시간을 쪼개 쓰며 꼼꼼히 소품을 만든 승오군의 능력이 있었다. 김은선 교사는 “학교에서는 그리 인정받는 아이들이 아닌데도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은 넷이 협동한 결과”라며 “학교에서 소외받는 아이들도 교육의 방식을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찐한’ 협동의 기억으로 이들은 모두 훌쩍 컸다. 새 학년 새 학기, 친구의 장점을 먼저 본다. 이제 중학생이 된 윤형군의 어머니 천씨는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한명씩 새로 사귀는 친구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초교 때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썽만 부렸던 아이인데 정말 기적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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