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학습장애 탈출 ‘3년간의 기적’

등록 2009-02-08 16:19수정 2009-02-08 16:21

학습장애 탈출 ‘3년간의 기적’.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학습장애 탈출 ‘3년간의 기적’.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커버스토리 / 대승이 엄마의 아이 장애 극복기



ADHD와 비슷한 증상도 겪었죠…먼저 아이상태 인정해야 해요
요리로 글자·숫자 가르쳤는데…가장 중요한 건 자존감이예요

신영화씨
신영화씨
김대승(가명·11)군이 지난 3년 동안 이뤄낸 변화는 극적이다. ‘학습장애’와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이는 부모들이 많은 현실에서 더욱 빛나는 결과다. 3년 전, 김군한테 학습장애 진단을 내린 의사는 “우리나라에 학습장애와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손 내밀 곳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킨 주역은 어머니 신영화(40·경기 성남시 분당구·사진)씨였다.

신씨는 아들의 학습장애를 인정하는 데서 첫 단추를 끼웠다. “많은 부모가 처음에는 내 아이가 이런 문제를 지닌 아이일 리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습장애가 뭔지 제대로 모르면서 기대를 내려놓지 않으면 자녀를 결코 도울 수 없어요.” 귀가 아니라 뇌의 문제 때문에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때로 말도 헛나온다는 것, 상위 5%의 지능을 가지고도 ‘지진아’로 오해받는 아들 역시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것 등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제야 신세 한탄을 벗어나 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습을 돕기 위해서는 아들의 흥미를 공략하기로 했다. 글자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리려고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활용했다. “사진이 많이 나온 요리책을 함께 보며 만들고 싶은 요리를 직접 고르게 했어요. 빵 만들기를 자주 했는데 빵의 종류, 만드는 방법 등을 보면서 자연스레 글자를 접했죠.” 글자만 보면 엎드려 울던 아들도 요리책에 나온 글자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재료 구입을 위해 시장을 보고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는 숫자와도 친해졌다. 그때 신씨는 “글자를 아니까 빵 만드는 게 참 편하다, 그치?”라는 말을 슬쩍 덧붙였다. 자연스레 글자를 배워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영어 알파벳도 모르는 우리가 미국의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학습장애 애들한테 글자를 배우는 일은 정말 괴롭고 힘들어요. 그 스트레스를 이기려면 강한 내적 동기 부여가 필요하죠.”

못마땅한 자기 자신을 보며 느끼는 무력감과 학교에서 겪는 좌절감을 어루만져 주는 것도 중요했다. “크고 작은 상처가 쌓이면 ‘나는 못난 아이야, 나쁜 아이야’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죠. 그게 평생 상처로 남지 않게 하려면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법을 깨우쳐 줘야 할 것 같았어요.”

“우리 아들은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해?”


“엄마.”

“그래? 엄마는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데.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럼 자기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양보, 배려 등 아들이 대인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가치를 체득한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눈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탓에 화를 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아들은 “화가 나면 조용히 앉아서 즐겁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며 화를 잊을 수 있”게 됐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화가 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신씨와 함께 깨달은 뒤였다.

신씨는 이 모든 교육의 열매는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자녀의 학습으로 고민하는 여느 부모들도 공감할 법한 결론이다. “사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제가 적용했던 모든 교육의 방법이 결국에는 ‘자존감’을 키워주지 않았나 싶어요.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죠.” 아들은 이제 주의력과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약을 먹는 대신 계획표를 세워 실천한다. 두 문제 풀고 5분 쉬고 1시간 공부하고 30분 쉬는 지난한 과정이다. 하지만 아들한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결국 지난해 2학기 기말고사 국어 시험에서 난생처음 100점을 받았다.

아들한테서 패배와 좌절의 주홍글씨를 지우는 동안 신씨는 억만금을 주고도 들을 수 없는 ‘엄마 수업’을 받았다. “아들이 10살이면 나 역시 엄마로 산 건 10년뿐이니 어른 행세를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이를 존중하고 제대로 사랑할 줄 알게 된 거죠.” 엄마가 아파서 늦게 일어난 날에는 “아침을 꼭 드시라”며 밥상을 차려 놓고 간다는 속 깊은 아들이 100점 받은 아들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말하는 신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신씨는 현재 학습장애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카페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cafe.daum.net/dyslexia7)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는 도움을 받았던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고 2008년부터는 부모들의 공부 모임을 꾸려왔다. “학습장애나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나 치료보다는 교육이 절실해요. 일본에서는 지방에도 학습장애협회가 있어서 알맞은 교육을 제공한대요. 이런 아이들한테 맞는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짐이 더 무거워요.”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는 신씨의 짐을 사회가 덜어줄 때가 된 것 같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글자만 보면 울고…이름 석자도 못써…아이들엔 놀림감

2005년 11월

아들은 글자를 보면 울었다. 글자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서워 서럽게 울었다. 유치원에 다니면서도 자기 이름 석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외국에 다녀온 어린이들을 모아 하루종일 한글만 가르치는 유치원에 반년 동안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의 통과의례, 받아쓰기 시험을 잘 치를 리 없었다. 반 친구들은 ‘빵점짜리’라는 별명을 붙여 놀렸다. 그때 담임교사는 아들한테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엄마가 읽어주는 경시대회 문제를 암산해 풀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다. 2005년 11월, 병원에서는 아들한테 지능은 상위 5%에 속하지만 읽고 쓰는 능력에 문제를 보이는 ‘학습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라는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산만한 게 지나쳐서 약을 먹기도 했다. 학습장애가 있는 아동의 70%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함께 지닌다고 알려져 있다.

축구·달리기 ‘최고’…빵 만들기도 잘해…국어시험도 100점

2008년 11월

아들은 “못하는 게 없는 아이”가 됐다. 축구클럽에서는 소질 있는 선수만 뽑히는 ‘엘리트반’에 들었다.

달리기는 3학년 전체를 통틀어 1등이다. 빵 만드는 데도 능숙해서 친구들한테 인기가 좋다. 지난해 2학기 기말고사에서는 비록 국어 한 과목이지만 100점을 받았다. 이제 읽고 쓰는 데 자신감이 붙었고 약 없이도 자기 조절이 가능해졌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