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윤양은 영어 유치원이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서도 영어를 배웠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도 영어권 문화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다독’을 통해 가능했다.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인터넷 뒤지며 목록 심혈 기울인 엄마
“언니 덕에 동생도 영어에 도통했어요”
“언니 덕에 동생도 영어에 도통했어요”
다독으로 국제중 간 권재윤양
권재윤(15ㆍ부천시 원미구)양은 영어 유치원에 다닌 경험이 없다. 방학에 한달 짜리 단기 어학연수도 다녀 온 적도 없다. ‘외국물’ 먹은 경험은 영어 경시 대회에 나가서 받은 부상으로 캐나다에 일주일 동안 관광을 다녀 온 게 전부다. 그런 그가 지난해 청심국제중에 입학했다. 재윤양한테는 보통의 국제중 합격생들의 화려한 해외경험 못지 않은 풍부한 ‘독서 이력’이 있었던 덕이다. 그리고 놀이처럼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어머니 조수민(42)씨의 노하우가 있었다.
재윤양이 다섯 살 무렵 처음으로 영어 원서를 접했다. 조씨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 영어 원서를 읽히기로 했다. 외국 잡지를 번역해 싣는 편집기자 일을 한 덕에 원래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매달 20~30만원 정도를 책 사는 데 썼다. “99년만 해도 영어 원서 읽는 분위기가 없었어요. 도서관에서도 영어 원서 찾는 게 어려웠구요. 빌릴 수 있으면 빌려서 봤을텐데 빌릴 수 없으니 직접 살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그건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아요.”
어린이 영어 원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는 재윤이한테 맞는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하루 두 시간 넘게 인터넷에 매달려 책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www.jamsune.com)이나 ‘쑥쑥닷컴’(www.suksuk.co.kr)과 같은 영어교육 정보 공유 누리집에서 얻은 정보가 도움이 많이 됐다. 영어 전문서점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카탈로그도 책을 고르는 데 좋았다. “영어 전문서점에 가면 원서를 수입하는 수입총판에서 내는 가이드북이 있어요. 주제나 수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찾기 좋죠.” 그렇게 사 모은 책이 1000여권이 넘는다.
양질의 책을 끊임없이 공급한 조씨의 수고는 서서히 효과를 거뒀다. 초교 1학년 무렵, 재윤양의 말문이 열렸다. “저녁에 산책을 나갔는데, 그날 읽은 책이라며 내용을 이야기해 주더라구요. 영어로요. 집에 와 책을 뒤적이니 책에 나온 문장 그대로 얘기한 걸 보고는 깜짝 놀랐죠.” 책을 읽으면서 외국 성우가 본문을 녹음한 테이프를 함께 들은 결과였다.
물론 조씨는 재윤양한테 오디오테이프를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저는 어디까지나 시청각 자료는 영어를 배우는 데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은 책을 읽고 활자에 익숙해지는 거죠. 우리 국어처럼요.” 조씨는 오디오테이프가 딸려 있지 않은 책이라도 재윤양이 좋아할 만한 책이면 주저없이 샀다. 오디오테이프가 없으면 재윤양은 동생 재민(10)양과 책 본문에 나온 대화체를 주고 받으며 자연스레 말하기 ‘훈련’을 했다. 언니와 함께 놀이하듯 영어를 접한 재민양 역시 일곱 살 무렵 영어에 ‘도통’ 했다.
사실 그는 현재 영어 강사로 활동 중이다. 부천의 한 고교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 수업을 한다. 그 전에는 부천의 한 문화센터에서 초등생들을 가르쳤다. 결국 놀라운 독서의 성과는 영어를 가르칠 정도의 실력이 되는 조씨를 엄마로 둔 재윤양과 재민양만이 누릴 수 있는 걸까.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친 적이 없어요. 알파벳도 안 가르쳤어요. 영어로 책을 읽어주거나 대화한 적도 없죠. 애들은 제 발음이 ‘구리다’고 안 좋아해요. 제가 아이들한테 해 준 건 보통의 평범한 엄마들이 해 주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예요.” 누리집을 누비며 좋은 책에 대한 정보를 찾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일 정도는 모든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조씨의 말이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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