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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전형기준’ 사회적 합의점 찾아야

등록 2005-05-10 18:54수정 2005-05-10 18:54

지난 1월5일 치러진 205학년도 이화여대 정시모집 일반전형 논술고사에서 수험생들이 문제풀이에 열중하고 있다. 강창광 <a href=mailto:기자chang@hani.co.kr>기자chang@hani.co.kr</a>
지난 1월5일 치러진 205학년도 이화여대 정시모집 일반전형 논술고사에서 수험생들이 문제풀이에 열중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본고사 부활하나 - (하) 해결방법은

2008학년도 이후 대학별 전형안은 고교 교육과정 정상화와 대학의 학생 선발권 존중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는 고교와 대학 등 교육주체들의 사회적 합의에 의한 타협안을 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서울대의 논술 확대 방침이 내신 위주의 새 대입안 취지를 크게 훼손시킬 수 있는 만큼 논술 유형과 비중 확대에 대한 명확한 합의점을 찾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술의 함정=서울대가 정시에서 논술을 60% 반영하고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현재의 5.7%로 묶겠다는 선언은 새입시안을 둘러싼 대학과 고교의 시각차를 극명히 드러냈다. 서울대 논리는 간단하다. 내신의 교과와 비교과로 선발하는 지역균형선발과 특기자 전형을 합해서 3분의2로 늘리기 때문에 3분의1을 뽑는 정시에서 내신 비중을 낮추더라도 내신위주인 새 대입안의 기조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전문위원은 “지금 고교 1등이 아니더라도 서울대에 올 수 있는 경로를 열어주겠다는 것”이라고 논술 확대 방침의 뜻을 설명했다. 그는 또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면서 점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선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도 거론했다. 결국 내신이 불리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아울러 점수를 주지 않는 수능 대신 논술 시험 점수로 촘촘히 줄을 세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논술로 국·영·수 실력을 살필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영·수 변별’은 수능과 내신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바람직한’ 논술 유형의 하나로 ‘화살속 게임’을 들었다. 동물이 여러 각도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수학 논술에서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언어 논술에서는 구한말 조선 정세를 설명하는 다양한 글을 제시한 뒤 왜 조선은 망했는 지를 물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종합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 논리력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몇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른바 사고력 측정 논술에 대한 의구심이다. 한 교육학자는 “국·영·수 위주가 아닌 전형은 말도 안된다”라고 일축했다. 대학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여겨왔고 이런 신조를 지금도 굳게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요한 선발 도구로서 국·영·수를 부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는 서울대가 최근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를 질타하며 △영어 원서 독해능력 부족 △수학 실력 부족 등을 주로 문제삼았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서울대는 신입생의 영·수 실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기초교육원까지 세웠다. 그는 “얼마나 문제를 잘 내느냐의 문제는 남겠지만 그게 국·영·수 실력과 관계없는 시험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대학들이 단순 지식과는 상관없이 고도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측정할 문제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도 의문이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는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며 그런 역량과 시험 출제 경험을 가진 교수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합교과적인 고등사고력 측정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수능도 국가 차원에서 최고의 인적자원을 활용해 출제하지만, 해가 지날 수록 유형화되면서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2008학년도부터는 교과서 내용의 틀 속에서 수능 문제를 내겠다고 물러섰다.

서울대가 말하는 ‘논술’ 역시 유형화로 귀결되면서 사교육만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본고사’가 다른 대학들에도 번져나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시험이 단순히 선별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평가체제의 질이 수능보다 훨씬 뒤처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시에서 수능의 변별이 부족하다면 다시 내신으로 한번 더 거를 수 있는 데도 서울대가 굳이 논술을 고집하고 있다”면서 “어려운 문제를 내면 마치 대학의 권위가 올라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허위의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아울러 “본고사 시비를 막기 위해 교사들이 직접 출제와 검토에 참여하거나, 대학들이 논술 유형을 미리 공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합의로=입시전문가들은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대학별 입시안의 접점을 찾아내기 위해 다시 고교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상임총무는 “교사가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제대로 가르치고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별도의 평가권을 행사할 경우 고교 교육과정이 그 쪽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고사 체제에서는 교사의 자발성과 창의성에 기반한 교육활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송 총무는 “대학이 교사의 평가권을 존중해주는 대신 교사들에게 준엄한 책무성을 요구하는 방식의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교사의 평가실명제를 제안했다. 교사의 평가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부에 과목별 평가 교사의 이름을 기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들은 ‘여러 줄 선발’의 긍정적 측면과, 내신과 수능의 변별력 한계 등을 들어 대학별고사가 필요하다는 태도다. 최재훈 한양대 입학처장은 “내신이 떨어지더라도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서 “수시에서 논술을 통해 이런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런 경로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 만족도도 높다”고 덧붙였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대학과 고교, 교원 단체가 본고사 등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원칙)의 쟁점에 대해 논의해 명확한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하며 합의된 내용은 대학들이 반드시 이행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난 12월 교육부 자문기구로 구성된 교육발전협의회(교발협)의 활성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8학년도 이후 입시안의 안착을 위해 교육·시민사회 등 각계 인사들이 모였으나 아직까지 본격적인 분과위 활동도 시작하지 않았다. 이 협의회 위원인 박경양 전국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교발협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관변체질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새입시안의 바람직한 모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틀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더욱 관심을 갖고 기능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교발협의 ‘대학-고교 협력 분과’가 이달 정식 발족하면 ‘새 대입제도 취지에 맞는 학생 선발 모형과 전형 기준’을 찾기 위한 정책연구를 직접 수행해 올해 안으로 합의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내신 높은 학생이 대학 학점도 높아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이 논술과 심층면접 등 대학별 고사의 비중 확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고교 내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다. 그동안 주요 대학들은 내신을 30%~40% 반영한다고 해놓고도, 실제로는 기본점수를 높게 주는 방법으로 내신 실질 반영률을 5~10% 수준으로 유지해왔다.

◇“내신의 가치에 주목해야”=많은 전문가들은 그동안 내신이 쓸모에 비해 지나치게 홀대를 받아왔다고 지적한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내·외의 여러 연구결과들을 보더라도 대입 전형 자료 가운데 내신이 학생의 대학 수학능력을 예측하는 데 가장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 3년 동안의 성취 기록인 내신을 무시하고, 수능이든 본고사든 단 한 차례 치르는 시험으로 학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외국어대가 지난해 3월 2002학년도 입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입학성적과 학업성취도’ 조사 결과를 보면, 내신 중심 전형으로 선발한 수시모집 합격생의 평균 학점은 3학기 동안 줄곧 4.5점 만점에 3.23~3.53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 학점은 같은 기간 2.60~2.90에 그쳤다. 경희대와 한양대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경우, 5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대학수학능력시험(SAT)과 같은 표준화한 시험 성적이나 적성시험보다 고교 교육과정의 성취 기록이 입학 전형에서 더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내신 중심의 전형인 지역균형선발로 입학한 서울대 교육학과 1학년 이영은(19)씨는 “내신에는 평소 수업이나 과제 수행에 있어서의 노력 여부와 성실성 등이 반영되기 때문에 대입 전형 때 수능이나 논·구술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 한 차례 시험이 당락 좌우 불합리

내신 불신 걷고 교육 정상화 힘쏟아야

◇내신 신뢰 회복의 계기로 삼자=2008학년도 이후 새 대입안을 계기로, ‘점수 퍼주기’로 생채기가 난 내신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진명여고 임덕준 교사는 “그동안 주요 대학들이 석차백분위를 무시한 채 평어 사용만을 고집해 내신 부풀리기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이제 성적이 상대평가인 석차 등급으로 표시돼 성적 부풀리기 가능성이 줄어든 만큼 대학들도 내신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중 교수도 “교사들이 평가권을 제대로 행사해 내신이 학생의 학업 능력을 적절하게 대변해줄 수만 있다면 대입 전형에서 내신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 정상화로 이어져야=단지 내신 성적 산출 방식이 바뀌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임덕준 교사는 “그동안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워낙 커 학교가 수능 대비 문제풀이 학원으로 전락할 지경이었다”며 “이제 수능 비중 약화로 탐구 중심 수업의 가장 큰 족쇄가 절반쯤 제거된 만큼 교사들이 분발해 토론과 실험, 과제 수행 중심의 교육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한성과학고의 박종호 교사는 “내신 중심의 대입안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교사가 스스로 교육내용을 기획하고 평가기준을 만들어 학생을 평가하는 ‘교사별 평가제’ 도입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 충훈고의 김성천 교사는 “대학들도 수능이든, 내신이든, 논·구술이든 점수로만 학생들을 뽑으려 하지 말고 학교생활기록부의 비교과 영역을 중요한 전형 요소로 삼거나 특정 과목에 가중치를 두는 등 대학과 학과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전형방법을 제시해줘야 고교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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