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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사 부활하나 - (중) 무엇이 문제인가 “일단 한 번 해봐. 조금 비싸지만 효과는 좋아. 선생님 이름은…” 서울대의 논술 고사 확대 방침으로 일선 교육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하던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앞에서 한 학부모가 휴대전화로 다른 학부모에게 ‘잘 나가는’ 논술학원 강사를 소개해 주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자, 불을 밝힌 수많은 학원 간판들 밑으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 전 교육당국의 수강료 및 심야학습 단속이 지나간 대치동은 또 한번의 ‘특수’를 기대하는 듯했다. ‘껑충’ 뛴 사교육비 대학 ‘짐입장벽’ 될수도
강남으로 ‘학원유학’ 봇물…지방교육 ‘흔들’
내신중심 자리 찾는 공교육 신뢰 떨어뜨려 학원 앞에서 만난 이아무개(16·강남 ㅇ고1)군은 내신대비 학원과 논술학원을 모두 다니고 있다. 대학입시의 부담이 덜한 중학교 때부터 논술학원에 다녔다는 이군은 “중학교 때도 한 반에 6~7명 정도는 논술학원에 다녔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내놓는 논술문제가 어려운 만큼 학생들의 논술 준비기간 역시 그만큼 길어진 셈이다. 서울 강남에서 고교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아무개(43·여)씨는 “내신이 중요하다고 하면 내신준비 학원이 생기고 본고사로 바뀐다고 하면 본고사 준비학원이 생긴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학원에 안 보낼 수가 없다”며 불안한 속내를 내비쳤다. 입시 전문가들은 대학별로 구체적인 2008학년도 대입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서울대가 지른 ‘논술형 본고사’ 불길로 사교육 시장이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례도 있다. 2002학년도 입시부터 대학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한 심층면접과 논술시험만 해도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수학·영어·과학 실력을 평가하는 본고사형으로 변질하며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 시장을 훌쩍 키워 놓았다. 강남 ㅊ논술학원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중간·기말고사 12번, 수시 2번, 정시 1번 등 모두 15번의 입시를 치러야 한다는 학원들의 논리가 학부모들에게 먹혀 들었다”며 “내신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에서 서울대가 논술형 본고사를 들고 나오면서 수능시험을 대비한 사교육 시장이 논술 대비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치동의 한 학원장은 “이해찬 교육부장관 시절에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고3이 되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냐”며 “지금 고1이 고3이 될 때까지 학부모들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정확해야 살아남는 곳이 바로 이 곳”이라고 뼈있는 말을 던졌다. 결국 ‘알 만한’ 사람들은 벌써 ‘준비’에 들어 갔다는 말이다. 이미 중학생 대상의 서울대 준비반을 운영하고 있는 정일학원의 신영 평가이사는 “본고사가 실시된다면 당연히 사교육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대학별로 따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수강료 등 수험생들의 부담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본고사를 둘러싼 사교육 시장은 내신이나 수능시험 대비 사교육 시장보다 ‘단가’가 훨씬 비싸다. 예를 들어 ‘문항수를 줄인 본고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논술과 심층면접은 소규모 토론과 일대일 수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십 명이 바글거리는 일반 학원보다 몇 배나 비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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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중심 대입안’ 오해와 진실 “시험 한 번만 망쳐도 끝?”
“대학 가는 길 더 많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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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비중 강화를 뼈대로 하는 2008학년도 이후 새 대입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특히 첫 ‘실험 대상’이 된 고1 학생들과 학부모의 ‘내신 등급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불만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일선 고교 교사들과 입시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시험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서울 ㅅ고 1학년 홍아무개(16)양은 “1학년 학생들 사이에는 ‘시험 하나 망칠 때마다 좋은 대학 하나씩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내신 성적은 한 두 차례의 시험으로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학생에게는 ‘티끌 모아 태산’이고 불성실한 학생에게는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어느 대학이 학생부 성적을 30% 반영하고, 반영 과목이 국어, 영어, 수학, 국사 네 과목일 경우,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국어 성적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비율은 0.62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국어가 반영되는 비율은 학생부 반영률인 30% 중 4분의 1로 7.5%이고, 고교 3년 동안 12차례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다시 12로 나누면 중간고사 국어 과목에서 1등을 한 학생과 꼴찌를 한 학생의 차이는 0.625%라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중간고사에서 국어 90점과 80점의 차이는 매우 미미해지고 전체 점수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수행평가까지 고려하면 반영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모든 과목을 다 잘 해야 하기 때문에 전과목 내신 대비 학원에 다녀야 할 판”이라는 푸념도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도 모든 과목을 입시에 반영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부분 모집단위 특성에 따라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중 일부 과목만 반영한다. 이런 추세는 새 대입안에 따른 입시전형에서도 계속되리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1학년보다는 2, 3학년 성적을 더 많이 반영한다.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은 2006학년도 정시모집에서 1, 2, 3학년 성적을 각각 20%, 40%, 40%씩 반영할 계획이다. 설사 1학년 중간고사를 망쳤더라도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1 학생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모든 과목 점수를 잘 받아놓고 보자’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 같다”며 “교육부와 대학들이 하루 빨리 광역 모집단위(계열)별로 중요하게 반영하는 과목을 밝혀줘, 학생들이 자기의 진로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자기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공부에 집중하도록 하면 ‘같은 과목을 듣는 친구들은 모두 나의 적’이라는 살벌한 경쟁심리도 상당히 누그러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조성범 과천중앙고 교사는 “‘내신이 대입에서 절대적이다’거나 ‘시험 하나만 망쳐도 좋은 대학 가기 어렵다’는 식의 극단적인 판단이 고교 첫 시험을 치르느라 가뜩이나 불안해하는 고1 학생들에게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다”며 “단 한 번의 수능 성적이 대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행 입시제도에 비하면, 새 대입안에서는 대학 가는 길이 더 다양해졌기 때문에 중간고사 한 번 실패했다고 낙담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조언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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