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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영어만능주의’로는 진짜 국제화 못한다

등록 2008-09-07 16:32수정 2008-09-07 16:42

제2외국어 교육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많다.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제2외국어 교육을 위해 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에서 일본어 마당에 참가한 학생들. 이정아 기자<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제2외국어 교육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많다.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제2외국어 교육을 위해 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에서 일본어 마당에 참가한 학생들. 이정아 기자leej@hani.co.kr
‘제2외국어’ 왜 중요한가
커버스토리 /

# 2008년 대한민국. 3년 전만 해도 독일어, 불어,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까지 7개 제2외국어를 가르쳤던 충남 계룡시의 엄사중학교는 ‘국제화 교육’의 모범사례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중국어와 일어만 남고 모든 제2외국어 수업이 사라졌다. 아랍어와 러시아어 등 ‘희귀’ 외국어를 가르칠 교사들을 구할 수도 없고, 불어와 독일어를 가르쳐 주던 순회교사들도 전근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생과 학부모들을 상대로 배우고 싶은 언어를 조사해 봤더니 일본어와 중국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중3 학생들만 한 주에 두 시간씩 열리는 일본어와 중국어 수업을 배우고 있다.

# 2008년 세계. 미국은 12살인 중학교 2학년부터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을 배운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외국어 2단위(한 주에 한 시간씩 두 학기를 배우는 양)를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프랑스는 외국어1, 외국어2, 외국어3 등으로 영어를 비롯한 다른 외국어에 경중을 따지지 않고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해 들을 수 있다. 대개의 유럽 국가들은 모국어 외에 외국어를 빠르면 11살, 늦어도 13살에는 시작한다.

영어에 ‘올인’하는 한국풍토
세계적인 추세와도 안 맞아
기업들도 다양한 언어 요구

세계화와 국제화를 지향한다는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종훈 유네스코 산하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기획실장은 “세계 각국에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들은 모두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영어가 세계공용어인 것은 맞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각각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의 아픔을 공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곧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일과 똑같이 인식되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어 만능주의에 대해서는 외국어 교육의 원로들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전 한국외국어교육학회 회장)은 “영어 조기교육은 세계적인 추세가 맞지만 세계는 영어와 더불어 제2외국어 교육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며 “반미정서가 있는 아랍에서 사업을 하면서 영어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질을 생각하지 않는 답답한 처사”라고 말했다. 엄익상 한양대 국제어학원 원장(중어중문학과 교수)은 “한양대는 10년 전부터 중국의 상위 5% 대학 100개와 모두 자매결연을 맺어 한양대 학생들이 다른 대학 출신자들보다 먼저 중국에 대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계획을 짜 놨다”며 “기업과 대학은 앞서 나가는데 여전히 중국어를 비롯한 제2외국어 교육이 홀대받는 중등 교육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각국의 제2외국어 학습연령과 필수 외국어 수
각국의 제2외국어 학습연령과 필수 외국어 수
영어 만능주의를 절감하는 이들은 다름아닌 학교 현장에 있는 제2외국어 담당 교사들이다. 얼마전 전국중국어교사회 68명의 교사들은 중국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상하이 복단대학에 연수를 다녀왔다. 박용호 교사회 회장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면서 중등학교 중국어 교사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 하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중등교육에서 중국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이 전혀 없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교육부에서 1000만원씩 지원이라도 받았지만 새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정부 차원의 지원은 끊긴 상태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기업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4년에서 2006년 사이 영어를 필수로 요구하는 채용공고가 85.8%에서 76.5%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불어를 필수 언어로 요구하는 공고는 전체의 1.2%에 지나지 않지만 101건에서 1262건으로 1149%나 늘었다.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의 외국어도 기업이 요구하는 언어들이다.

물론 제2외국어를 접할 기회를 공교육이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꼭 실용성 때문만은 아니다. 안삼환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고교때 배운 독일어는 쉽게 잊히고 사회 생활하는 데 쓸모도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사실 수학이나 과학 등도 전공하지 않는 이들에겐 마찬가지 아니냐”며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의 지명이나 인명 정도는 그 나라 법에 맞춰 읽을 수 있어야 ‘교양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너무 인색하게 쓰임새를 재단하려고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세계적 인재가 나오려면 영어만큼이나 독어, 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잘하는 인재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영어 일색의 교육에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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