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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딴나라 아이로 살아보기 ‘생생 체험’

등록 2008-08-03 16:44

월드비전이 개최하는 ‘2008 세계시민학교’ 청소년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이 개최하는 ‘2008 세계시민학교’ 청소년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세계시민’ 청소년캠프 가보니
입학과 함께 새 국적 여권 받아
베트남·네팔·몽골등 7개국 생활
게임 중 넘어져도 “괜찮아” 협동
누군가 발에 줄을 묶어 돌리자 그를 에워싸고 있던 이들이 줄을 피해 폴짝폴짝 뛴다. 미처 줄을 피하지 못한 이가 있어 산통이 깨졌지만 누군가를 나무라는 목소리는 없다. 대신 모든 이들이 쓰러진 이에게 달려가 끌어안는다. “괜찮아. 괜찮아!” 지난달 말 경기도 양평군 ‘경기도 학생야영장’에서 열린 ‘2008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곳에서는 게임의 목표가 너를 이기고 다른 모둠을 이기는 게 아니다. 그저 실수한 이를 꼭 안아 일으켜주는 게 전부다. 경쟁도 성적평가도 없는 세계시민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세계시민학교 지도밖 행군단’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월드비전의 청소년 캠프다. 참가자들은 3박4일 동안 합숙하며 세계 평화와 인권·환경·빈곤 등에 대해 체험하고 토론한다. 입학과 동시에 여권을 발급받고 새로운 국적을 지니며 3박4일 동안 그 나라 청소년의 삶을 산다. 올해는 일곱 모둠으로 나뉜 50여명의 참가자에게 베트남·몽골· 파키스탄·필리핀·타지키스탄·네팔·스리랑카 등 7개국의 여권이 발급됐다. 우리가 나라를 선택해 태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참가자들은 국적을 선택할 수 없다.

참가자들을 ‘세계시민’으로 길러내는 힘은 세계시민학교의 ‘체험’ 프로그램에 있다. 세계 각국의 물부족 문제를 직접 체험하는 ‘물부족 국가 체험’이 그렇다. 참가자들은 하룻동안 물부족 국가의 1인당 물 사용량을 배급받아 생활한다.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이 3리터에 그치는 수단에 속한 참가자는 씻고 마시는 데 3리터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 국민의 1인당 하루 물사용량이 395리터라는 것을 보면 참가자들은 평소 쓰던 물의 1%도 안 되는 물만으로 하루를 지내는 셈이다.

김경연 월드비전 옹호사업팀장은 “지난해에는 식사량도 다르게 줬는데 처음에는 불만이던 참가자들도 나중에는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빈곤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 아이들의 처지를 공감하더라”며 “부족과 결핍을 직접 체험한 아이들은 정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사흗날 밤 세계시민으로서 청소년이 해야 할 구실을 토론하는 ‘모의 유엔총회’에서는 “샴푸는 한번과 반만 눌러 쓰겠다”는 소박한 다짐들이 눈물 속에 낭독된다. 바다 건너 먼나라에 사는 친구의 아픔과 어려움을 내것처럼 느끼는 순간 참가자들은 ‘세계시민’을 체험하는 것이다.

‘세계시민학교’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합숙하는 동안은 경쟁이 없지만 참가자로 선정되자면 6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단 선발의 잣대는 여느 학교와 다르다. 올해 47명의 참가자 가운데 7명이 고3이다. 수능을 100일 앞두고 참가한 김경민(17·서울 광신고)양은 “세계 인권변호사가 꿈인데, 인권에 대해서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며 “고3이라 더욱 뜻깊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고3은 수능 공부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점을 아는 이들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없다.

특히 올해는 참가자들이 세계시민학교의 이름에 걸맞게 구성됐다. 몽골,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가정 청소년은 물론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외국 국적을 지닌 다문화가정 청소년 17명이 참여했다. 이태주 무지개청소년센터 소장(한성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가족구성원끼리도 종교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성장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넓은 의미에서는 다문화 가정이라 볼 수 있다”며 “인권이나 평화, 환경 등의 보편적 가치를 토론하면서 피부색이나 국적이 다른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도 깨질 것”이라고 말했다. 17명의 참가자는 무지개청소년센터가 추천했다. 무지개청소년센터는 올해 월드비전과 함께 ‘세계시민학교’를 연 곳으로 새터민 청소년, 이주노동자 가정 청소년,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는 곳이다.

“마지막 날 한 명씩 다 안아줬어요. 그런데 정말 한 명도 예외 없이 애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거예요. 이렇게 심장을 뛰게끔 하는 게 우리 어른들의 책임과 의무구나 싶었어요.” 지난해 ‘세계시민학교’에 참가한 청소년들을 만난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의 말이다. 글로벌 리더를 키우는 교육만이 각광받는 요즘, 평범하지만 위대한 ‘시민’을 키우는 세계시민학교의 교육이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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