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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현충일은 되고 5·18은 안되고?

등록 2008-06-08 18:58수정 2008-06-08 19:11

사회적으로 대립이 첨예한 현안을 살펴보는 ‘계기 교육’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깊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새로운 10대들을 위해 계기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사회적으로 대립이 첨예한 현안을 살펴보는 ‘계기 교육’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깊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새로운 10대들을 위해 계기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자유로운 ‘계기수업’ 벽이 두껍다
“가정시간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만난 한 고교생의 말이다. 다른 중학생은 “과학시간에 광우병에 대해 좀더 자세히 배웠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광장에 나선 10대는 여전히 알고 싶은 게 많았다. 이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풀 곳으로 결국 교실을 지목했다. 그렇다면 교실은 그런 구실을 하고 있는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진 광우병 논란 등 사회적 현안을 다룰 기회는 교실에도 열려 있다. 바로 ‘계기교육’을 통해서다. 계기교육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회적 현안이나 역사적 기념일 등을 개별 교사나 단위 학교가 따로 지도안을 만들어 수업하는 것을 말한다. 이주연 남양주초교 교사는 “과거에는 계기교육이라는 게 반공교육, 6·25 교육 등 정권 차원에서 내려오는 게 많았지만 요즘에는 교사가 자발적으로 교과서에 나온 딱딱한 이론들을 설명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실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교사들의 자유로운 계기교육을 가로막는 벽들은 너무 많다. 우선 계기수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매섭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위해 만드는 수업지도안은 번번이 일부 언론의 뭇매를 맞는다. 최근 전교조 충북지부는 교사들에게 돌리는 분회보에 광우병 관련 내용을 실었다가 촛불집회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김상열 전교조 충북지부장은 “일부 보도대로 광우병 관련 계기수업 자료를 배포했고 실제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그것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기 한참 전인 지난해 10월이었다”며 “지난해 수업할 때는 가만 있던 언론이 지금 이렇게 문제 삼는 이유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노동절·FTA 등 교장허가 ‘퇴짜’일쑤
교사들 재량권 정치적 잣대로 침해
“요즘 10대들에겐 이념주입 안먹혀”

기념일이 되고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계기수업 하는 것조차 교실에서는 쉽지 않다. 서울 ㅁ중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송재혁 교사는 지난달 5·18 계기수업을 추진하다 학교장에게 ‘경고성’ 지적을 받았다. 송 교사는 “현충일이나 스승의 날 계기수업은 권장하면서 똑같은 위상인 5·18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장의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학교장이 정치사회적 현안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계기수업을 껄끄러워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향된 이념교육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항상 논란이 되는 계기수업의 주제는 노동절이나 자유무역협정(FTA), 6·15 공동선언,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처럼 좌우의 견해차가 해소되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6조1항에는 “교육은 … 어떠한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이런 우려가 2.0세대로 불리는 10대들을 모르는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중학교에서 계속 계기수업을 해 온 이은주(35)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몰랐던 것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주는 것은 수용해도 어떤 가치를 주입하려는 시도에는 금세 거부감을 보인다”며 “수업을 마치고 감상문을 제출하라고 하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론을 내는 아이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자기 의견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교사들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공아무개(15)양은 “선생님들이 광우병이나 쇠고기 관련된 얘기를 하시면서도 뉴스나 신문처럼 뭐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교사의 수업을 정치적 잣대로 들이대는 일의 가장 큰 문제는 수업에 대한 교사의 재량권을 침해하는 데 있다. 박미선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도 중요하지만 교사 수준, 학교 수준의 교육과정도 중요하다”며 “교육부도 교사 스스로 주체가 돼 창의적인 수업을 하도록 권장하면서 계기교육을 할 때 학교장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송재혁 교사는 “단체협약 규정에 원래 수업지도안은 승인이나 허가를 받을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계기수업 지도안에 대해 학교장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은 교사노조와 교육부가 맺은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이 된다.


특히 일부 언론이 정치적 입맛에 따라 전교조의 계기수업 지도안을 비판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유명철 경북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사실 쇠고기 수입 문제로 수업하는 것은 문제가 될 이유도 없고 될 필요도 없는 일”이라며 “그런데 일부 언론들이 쇠고기와 관련된 교실의 수업을 문제삼는 것은 이런 교육이 정권에 부담이 될까 우려해 그런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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