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국력’ 정말 그럴까
사회 초년생들에게 들어보니
사회 초년생들에게 들어보니
올 8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이석원(27)씨는 최근 대기업 입사를 위해 모임을 짜서 공부를 시작했다. “첫 모임에서부터 영어 말하기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요식적으로 치르던 영어면접도 강화될 것이라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 이씨는 이 모든 게 새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영어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좁은 취업문 앞에 선 이들은 더욱 강화될 영어 자격 기준에 바짝 긴장한다. 영어를 강조하는 새정부의 움직임을 사회 초년생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우선, 기업 차원에서 영어의 필요성이 크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조선업체 외환관리팀에서 일하는 안상민(27)씨는 “조선업은 외국에서 물량을 수주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영어의 중요성이 크다”면서도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들한테는 직원의 영어구사력이 곧 경쟁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개인에게 영어가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이들은 말한다. 맡은 일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이 다른데, 영어 실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빙과류 제조업체 인사팀에서 2년째 일하는 강수연(27)씨는 “영국 어학 연수를 1년 동안 다녀왔고 토익점수도 950점대에 이르지만 2년 동안 영어를 말할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공기업에 입사한 이화준(29)씨는 “업무를 하면서 영어를 쓸 일은 별로 없다”며 “선물거래상담사나 자산관리사, 외환관리사 등의 자격증을 따면서 얻었던 지식이 나의 경쟁력이다”라고 했다.
새 정부의 ‘말하기 중심 정책’에 갸우뚱하는 이들도 많다. 강수연씨는 “회계나 인사 관련 업무는 영어로 말할 기회는 없지만 읽고 쓰는 데 영어가 필요할 때가 많다”고 했다. 당장 다음해부터 희망기업에 한해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는 등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영어는 말하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 마케팅부서에서 일하는 변윤희(30)씨는 “마케팅 업무와 관련된 책을 찾다 보면 한국어 번역서보다 영어 원서가 훨씬 쉽다”며 “읽기 역시 절대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이들은 새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으로 생활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실제 기업에서 인정받는 영어 실력을 쌓으려면 개인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했다. 변윤희씨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아이디어나 물건을 팔 때 필요한 것은 회화가 아니라 발표와 토론 능력”이라며 “인수위 정책대로 생활영어 하는 수준은 개인의 경쟁력이 될 수 없고 고교 졸업 후 높은 수준의 영어 구사를 위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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