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학교 아이들이 점심 시간에 학교 마당에 모여 화분의 흙 속에 숨어있던 지렁이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바라보고 있다. 성미산학교 아이들이 점심 시간에 학교 마당에 모여 화분의 흙 속에 숨어있던 지렁이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바라보고 있다.](http://img.hani.co.kr/section-kisa/2005/04/03/00500000012005040302324640.jpg)
성미산학교 아이들이 점심 시간에 학교 마당에 모여 화분의 흙 속에 숨어있던 지렁이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바라보고 있다.
주민들 공동육아‘씨앗’10년 흘러 마을학교로 성미산학교는 대안학교 가운데 ‘새내기’에 속한다. 지난해 9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의 한 살림집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맞았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 학교에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는 연륜이 쌓인 여느 대안학교 못지않다. 이 학교가 시도하고 있는 몇 가지 새로운 실험 때문이다. 성미산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학교’로 출발했다는 점이다. 성미산학교 사람들은 “우리 마을”이라는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쓴다. ‘우리 마을’은 성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마포구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 등에 걸쳐 있다. 성미산학교는 이 ‘마을’ 주민들이 ‘새로운 학교’의 필요성을 느껴, 서로 힘을 모아 세운 학교다. 성미산학교 만들기의 뿌리는 이 지역 주민들이 10여년에 걸쳐 일궈 온 도시 공동체의 역사와 맥이 닿아 있다. 대안적인 육아 형태인 공동육아협동조합운동이 그 출발점이다. 지난 1994년 공동육아협동조합 1호인 ‘우리어린이집’이 성산동에서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3개의 공동육아어린이집과 2개의 초등학생 방과 후 교실이 문을 열었다. 2000년에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공동육아조합원을 중심으로 70여 가구가 뜻을 모아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을 꾸렸다. 현재 생협 회원 수는 1000여명으로 늘었다. 2002년에는 생협 조합원 몇 명이 공동 출자해 협동조합형 유기농산물 반찬가게 ‘동네부엌’을 만들었고, 이듬해엔 마을 아빠들이 모여 카센터인 ‘성미산차병원’도 만들었다. 특히 2001년부터 2년 넘게 마포두레생협을 중심으로 진행된 ‘성미산 배수지 반대 투쟁’은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계기가 됐다. 성미산학교는 이렇게 목이 마르면 주민들이 스스로 우물을 파고, 마을의 문제를 함께 풀어 가면서 ‘함께 살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학교 학부모이자 교사인 주창복(44)씨는 “성미산학교는 이미 실재하는 생활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기반으로 태어난 학교라는 점에서, 주로 한적한 시골에 세워진 1세대 기숙형 대안학교나 2000년대 들어 서울 주변에 세워지기 시작한 대안학교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5-5-2 학년제 초중고 통합교육…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모두 참여
“삶의 터전인 마을이 곧 배움터” 초·중·고 통합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성미산학교는 국내 최초의 12년제 학교다. 이 또한 마을학교로서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10여 년의 마을 공동체의 역사를 배경으로 태어난 학교인 만큼 대안교육에 대한 수요가 전 학년에 걸쳐 존재했던 것이다. 현재 이 학교에서 가장 고학년인 10학년 학생 두 명은 ‘우리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공동육아의 ‘세례’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다. 주씨는 “이런 현실적인 요구 말고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긴 안목으로 기다림의 여유를 갖고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교육적 필요도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성미산학교는 12년 과정이지만 ‘6-3-3’ 학제를 따르지는 않는다. 요즘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5-5-2’ 학제를 채택하고 있다. 초등 5년, 중등 5년, 중등 후기 2년으로 교육이 이뤄지는데, 마지막 2년은 인턴십 등을 통해 스스로 선택한 자기 진로를 주체적으로 준비하는 시기다. ‘마을학교’라는 특성은 이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모든 학년의 필수 과목인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수업이 그 예다. 1~5학년 학생들은 이번 학기에 ‘성미산 마을의 해리포터들’이라는 제목의 학년 통합 프로젝트를 모둠별로 진행하고 있다. 주일마다 두차례, 각각 세 시간씩 수업이 이뤄진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아이들은 마을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마법사가 된다. 성미산을 비롯해 한강시민공원, 놀이터 등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성미산 마을의 역사를 담은 비디오나 세계의 생태도시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를 보고 ‘우리가 꿈꾸는 성미산 마을’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6~10학년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직접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라디오 방송 프로젝트’와 사진으로 성미산과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는 ‘동네 사진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에는 도시에서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역 주민 모임인 ‘멋진 지렁이’, 환경단체인 녹색사회연구소, 동내 라디오 방송국인 ‘마포FM’의 방송작가, 사진작가 등 지역의 전문가들이 함께 한다. 초등 프로젝트 기획을 맡고 있는 박현숙 교사는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삶의 터전인 마을이 곧 배움터’라는 성미산학교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교육 활동”이라며 “이렇게 마을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 가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 속에 성미산 마을이 고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글·사진 이종규 기자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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