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비타민
자신의 아이가 고통을 느끼기를 바라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아이만큼은 상처 없이 크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고통은 받아들이기 괴로운 현실에서 시작된다. 내일의 날씨를 언제나 예측할 수 있다면 비를 맞을 일도, 따가운 햇볕에 고생할 일도 없으련만 우리에겐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이 없다. 현실에선 비나 따가운 햇볕보다 더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곤 한다.
요즘에는 부모의 이혼을 앞두고 아이의 상처를 미리 염려하여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예방주사라도 미리 맞히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가끔은 아이의 고통이 크다면 이혼을 재고할 수도 있다는 부모도 볼 수 있다. 부모의 따뜻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아이들은 분명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고통에 부딪혀야 한다.
사춘기가 되어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슴푸레하게 느끼기 이전의 아이들에게 부모란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이자 이상적인 사람들이다. 자신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났고 보호받고 있기에 값어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간의 다툼이나 헤어짐은 아이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느낌이기에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불안을 유발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고통도 시간을 통해 해결된다.
부모가 이 과정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란 자신이 포기하는 것은 상대 배우자이지 아이가 아님을 반복해서 확인해 주는 것이다. 확인을 위해서는 말과 행동 모두가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이다. 이미 아이의 마음은 불신이 높아진 상태이다. 이런 마음을 잘 헤아려서 좀더 신뢰할 수 있는 부모 노릇을 해야 한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약속 위반도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고통도 때로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불행한 어린 시절을 딛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현실과 부딪히면서 의미를 구성한다. 버거운 현실이더라도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면 아이를 한 뼘 더 성장시킬 수 있다. 비록 그 현실 전체를 돌파하지 못했더라도 부딪히는 과정에서 신체적이든, 지적이든,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이든 자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를 통째로 들어서 결승점에 데려다 놓을 수는 없다. 힘들어 비틀거리고, 때론 피를 흘려도 아이가 가야 할 길이다. 과도한 죄책감에 빠진 부모들은 아이를 통째로 들어 옮기려다 아이를 자기 품에 넣고 같이 유아기로 퇴행하곤 한다. 지나치게 피를 흘린다면 끼어들기도 해야 하고,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이는 바로 아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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