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태권 브이’의 김청기 감독이 문화콘텐츠 앰버서더로 나서 횡성군 청소년들을 상대로 로봇 태권 브이의 탄생과정과 애니메이션 산업의 미래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횡성고른기회배움터협동조합 제공>
‘문화대사’ 김청기 감독 현지강연… 6살~고교생 참석 ‘열기’
“당신의 영웅이 돌아옵니다.”
30년 만에 다시 개봉 된 만화영화 ‘로봇 태권브이’의 여는 말이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사이 태권 브이에 열광했던 아이들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됐다. 그리고 태권 브이를 세상에 탄생시킨 김청기 감독은 ‘문화 외교관’이 되어 아이들 앞에 섰다.
지난 16일 오후 강원도 횡성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한 횡성군종합사회복지관. 살랑살랑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아이들이 현관에 들어선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조잘이며 도착한 강당에는 익숙한 노래가 퍼진다. 만화영화 ‘로봇 태권 브이’의 주제가다. 불꺼진 강당에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조금은 ‘낯선’ 70년대 영상과 마주한다.
아이들 “태권브이 좀 유치했는데…”
“그거 다 손으로 그렸어요?”
1시간 30분 남짓 만화영화 상영이 끝난 후 김청기 감독이 들어섰다. 6살 꼬마부터 변성기가 찾아 온 고등학생까지 모두 김 감독의 등장에 마냥 신이 났다. 70년대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 대한 김 감독의 회고가 시작됐고, 참석한 아이들은 그들이 본 장면이 밤을 새워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김감독 “도시엔 없는 문화감수성 너희들에겐 있단다”
강연이 끝나자 태권 브이의 연료가 무언지, 왜 24자 중에 하필이면 ‘V’인지 등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김 감독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사는 여러분은 도시의 아이들이 갖지 못하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다”며 “그것을 계발한다면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산업에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했다.
김 감독과 아이들의 만남은 ‘횡성고른기회배움터협동조합(이하 조합)’이 ‘문화콘텐츠 앰버서더 초청강연’을 요청해 이뤄졌다. 조합은 지난 5월 교육 기회가 제한되고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을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설립했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내놓은 8천억원을 자본금으로 출범한 ‘삼성 고른기회 장학재단’의 교육소외계층 장학사업에 공모해 3년간 10억원의 ‘종잣돈’을 얻은 덕이다.
조합은 앞으로 교육 기회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횡성군 각 지역에 12개의 공부방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8월 말 아이들의 개학에 맞춰 청일면, 서원면, 강림면 등 3개 면에 공부방을 연다. 자녀가 있는 농가에 한우를 분양하고 소득이 생기면 절반을 조합 교육 사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한우장학사업도 어느새 여러 농가의 참여를 확보했다. 조합 사무국 사회복지사 김은정(25)씨는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큰 도시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많다”며 “도시 못지 않은 교육열을 가진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콘텐츠 앰버서더 초청 강연을 신청한 것도 아이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꿈이 없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들에게 열정을 가진 전문가를 만나는 일이 자극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태권 브이와 김 감독을 만남으로써 ‘자극’을 체험했다.
강연에 참여한 횡성여고 김선미(16)양은 “사실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만화영화를 봤는데 감독님 이야기를 들으니 감히 유치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며 “인생의 교훈을 얻은 느낌이다”고 했다. 횡성중 구민범(13)군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이 30년 동안 이렇게 변하고 발전해 왔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문화콘텐츠 앰버서더’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겨레신문사가 2004년부터 시작한 사업으로 영화, 음악, 게임, 문학 등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원하는 학교나 청소년 기관을 찾아 문화 콘텐츠와 관련 직업의 미래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2만 4천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조윤미 싸이더스 FNH 영화마케터,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김유곤 문화방송(MBC) 프로듀서,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뮤지컬 배우 남경주씨 등 50여명의 전문가들이 문화외교관으로 활동 중이다. 학교나 청소년 관련 기관이라면 어디나 신청 가능하며, 문화콘텐츠 앰버서더 홈페이지(amba.kocca.or.kr)를 통하면 된다.
좀더 능동적으로 문화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면 올 여름 3회째를 맞는 ‘청소년 문화콘텐츠 창작 페스티벌’이 제격이다. 청소년이 직접 만화, 애니메이션, 영상 등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제작해 ‘작품’을 완성하는 대회다. 대상에게는 문화관광부 장관상과 100만원의 부상이 돌아간다. 1차 기획안에 대한 접수마감은 7월30일이다. 문의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문화콘텐츠 앰버서더 사무국 (02)3279-0922.
횡성/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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