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논술 ‘기초체력’ 키울때
중학교 때 읽기와 쓰기 능력의 기본을 바로잡지 못하면 고등학교 이후 교육에서 요구하는 ‘종합적·비판적·창조적 사고능력’을 갖추기 어렵게 된다. 중학생 시기가 중요한 이유다. 글을 이해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매뉴얼과 습관을 세우되, 학생과 학부모의 충분한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읽기·쓰기 능력 수준을 정확히 알고 수준에 맞는 독서법과 글쓰기 방법을 계발해야 한다.
‘악법도 법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중학생 논술학원에서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중학생 시기는 자아에 대한 새로운 탐색기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 시간과 공간에 대한 확대된 관심은 중학생이 되어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조화 및 경쟁 등을 고려하며 자신의 위치를 상정하기도 한다. 성적 성숙을 동반하는 신체 변화로 자신감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감수성이 풍부해 쉽게 우울해지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독립과 의존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시기다.
중학교 때는 인지발달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글 내용에서도 학년 간 편차가 크다. 다음은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학생 글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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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중학교 1학년 ○○○)
<줄거리> 이중섭은 민족을 사랑했고 진정한 예술을 추구했던 대한의 화가다. 그는 오산학교에 다니면서 민족의식을 배우고, 임용련을 만나 습작의 필요성, 즉 성실성과 독창성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로도 그만의 표현법으로 독창적인 걸작들을 그렸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가슴에 남게 되었다.
<느낌> 이번에 국어 교과서에서 이중섭의 생애에 대한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를 즐겨 그리기로 유명했던 화가.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삶은 마감한 화가 이중섭. 그는 오산학교에 다니던 어릴 적부터 민족의식이 강해 민족의식의 중요성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예술 작품에 혼이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중략) 이중섭의 그림은 인생 그 자체였고 그의 그림은 그의 일기와 다름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온갖 고생을 한 이중섭에 비해 나의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얼마나 잘 대해주시고, 편안하게 해 주셨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딸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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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중학교 3학년 ○○○)
1909년. 하얼빈 기차역에서 흰 콧수염의 신사가 많은 군중들의 환호 속에 내렸다. 그때 한 청년이 품에서 브라우닝식 권총 M1903을 꺼냈다. 7발의 총성이 울렸고 신사는 두 손을 벌리며 3발의 탄환에 쓰러졌다. 그를 맞춘 청년은 태극기를 높게 쳐들며 ‘대한독립’을 외쳤다. 민족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 그는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조국독립을 이뤄낼 중요한 디딤돌 하나를 세운 민족의 영웅이다. (중략)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의 대외적 발언권이 통제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천하에 알렸다. 곧 사라질 ‘몸집’을 버리고 죽고 난 뒤에도 영원히, 영겁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잔잔히 남을 ‘얼’을 드높인 것이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일본 총리를 저격한다거나 시마네현 장을 사살한다면, 이는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50년이 흘렀고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은 정당한 국교를 맺고 조력하는 입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중근 의사를 본받되 그 방식은 달리해야 한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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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시기에는 줄거리, 글을 쓰게 된 동기, 감상이 확연히 구별되는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글의 분량도 길지 않다. 또 다짐에 있어서도 개인적 차원에 한정돼 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쓴 글을 보면 줄거리와 감상이 적절히 결합돼 있으며, 사고의 폭이 넓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이 위인전을 읽고 쓴 글인데도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개인의 다짐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급우, 내가 속한 사회로 시야가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 든 글은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중 비교적 잘 쓰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단락 안에서 비문이 여럿 발견되고, 단락과 단락을 적절히 연결하지 못해서 글의 핵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중학교 3학년이라 하더라도 사고의 범위가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읽고 있는 책 여백을 메모 공간으로 활용하기. 두 권의 책 비교하며 읽기. 중요한 부분은 MP3로 녹음하기. 학부모와 교사에 의한 ‘천편일률적인 책 읽기 강요’로 질릴 수 있는 중학생들에게 전문가들은 위와 같은 방법을 권한다. 사진은 서울 관악구 관악중학교 학생들이 도서관 활용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이정아 기자
초등학교 시기에 독서 습관을 잘 들인 경우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독서의 폭이 더욱 넓어지고, 관심 분야도 다양해져서 일부 중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독서가 가능해지기도 하지만, 이전 시기에 제대로 독서 지도를 받지 못했거나, 독서에 흥미를 느낄 기회조차도 제공받지 못한 경우 한 자리에 앉아 수십 장을 읽는 것도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읽기와 쓰기 능력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읽기가 잘 안 되는 학생은 글 쓰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임에도 한 단락 글쓰기조차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한 경우 아예 글을 쓰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기도 한다. 읽고 쓰는 능력은 모든 과목의 학습에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우리말로 된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과목들의 학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학생들은 학업 성적도 떨어지고, 그것을 만회할 기회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학부모와 자녀 사이에 심리적 갈등 또한 심화된다. 이미 체격으로는 학부모를 능가하는 경우가 있고, 자신의 힘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부모에게도 심하게 반항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듣거나 체벌을 받는 경우 행동이 고쳐지기보다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이 시기 청소년이 심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상태에 있으며,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반항을 통해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내신이 부족할 경우 학부모들은 성적이 떨어진다는 점에만 관심을 기울여 학과목 관련 공부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기관에서는 점수에만 초점을 맞춰 일정 점수를 못받은 학생의 경우 자정이 넘어서까지 나머지 공부를 시키거나 체벌하는 등 강압적인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글을 이해하고 사고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문제의 정답을 계속해서 외우는 과정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읽기’부터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접근법이다.
독서 습관 들이기 안늦어
포기말고 차근차근 계획
관심있는 책부터 읽어라
책을 선택할 때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임을 고려해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일단은 책을 붙들고 오랫동안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부모들이 흔히 말하는 ‘십 분도 안 되어 엉덩이가 들썩인다’는 말은 학생들이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말이다. 필요성이나 재미를 느끼지 않으면 학생은 절대로 집중할 수 없다. 앉아 있다 하더라도 몸만 붙어 있을 뿐 머리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김수연 영남사이버대 논술지도학과 교수, 에플논구술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논술 강사
이런 학생들일수록 역량있는 교사와 잘 짜여진 교육과정,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중학교 저학년 시기라면 학습 습관을 교정하는 데 있어 결코 늦은 시기가 아니므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고 당장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원은 부모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이다. 물론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중학교 시기도 늦은 것은 아니다. 특히 중학교 시기의 자녀가 읽는 책은 부모가 읽기에도 재미가 있고, 자녀를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요즘 거실의 TV를 안방으로 옮기고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환경도 가족 전체의 독서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경우 그림이나 영상물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학생이 당장 무엇을 써야 할 지 막막해 하는 경우 그림을 보여주고 쓰게 하면 한결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김수연 영남사이버대 논술지도학과 교수, 에플논구술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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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논술 도움될만한 책들
* 〈독서의 기술〉모티머 J. 애들러 외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보고,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는지를 논한 책이다. 독서방법을 4가지 수준으로 나눈다. △초급독서(책에 서술된 문장과 단어의 의미를 아는 단계) △점검독서(‘어떤 종류의 책이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아는 단계) △분석독서(시간의 제약이 없는 경우의 가장 뛰어난 완벽한 독서로 책을 완전히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읽어내는 단계) △신토피칼 독서(하나의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서로 관련지어서 읽는 단계)가 그것이다. 자신의 독서 수준을 점검하고, 책 읽는 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점검독서’는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논술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쌓는 과정에서는 ‘분석독서’와 ‘신토피칼 독서’가 주로 활용된다.
*〈너희가 책이다〉허병두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에서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책을 엄선하고 읽기의 방향성을 제시한 책이다. 교과서 내용을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현직 교사가 추천한 책이므로 ‘교과서 연계도’가 높다. 교과 과정과 책읽기를 병행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좋다. 책 소개 뒤에 붙어 있는 ‘함께 생각하면 좋은 점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활용해 생각하기와 책읽기의 영역을 확대하는 지표로 삼는다.
*〈너무나도 쉬운 논술〉한효석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단계별로 정리하고, 학생들이 쓴 원고를 중심으로 해설한 책이다. 논술 문장 쓰는 방법, 요악하는 방법, 중심생각을 적절히 뒷받침하는 방법,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단락을 구성하는 방법 등 논리적 글쓰기의 기본 능력에 대해 정리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지만, 학부모와 함께 활용한다면 중학생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주어진 문제를 직접 풀어보면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수 있다. 학생 논술이 예시로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글과 다른 학생의 글을 비교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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