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고산면 양화분교는 지난 3월 산촌 유학생 6명을 받아들여 학생 수가 총 19명으로 늘었다. 양화분교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훌라후프 놀이를 하고 있다. 완주/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표지 이야기 / 산촌유학 도농 어린이들 유쾌한 동거
올해 봄 전북에서 폐교 1순위로 꼽혔던 완주군 고산면 봉동초등학교 양화분교에 학생 6명이 늘었다. 교사 두 명이 새로 부임했다. 교실에 활기가 넘치고 운동장에 아이들 웃음 소리가 가득하다. 양화분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시 아이들과 시골 아이들의 행복한 만남, 양화분교와 고산산촌유학센터가 함께 전하는 훈훈한 이야기가 따뜻한 봄바람에 실려 우리 곁에 왔다.
학생 수 13명인 작은 학교,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양야리 봉동초등학교 양화분교에 도시 깍쟁이 6명이 새로 왔다. 문아정(초6) 정현교(초6)양과 서은석(초4)군은 전학생이고, 주상우(초4) 주상운(초6) 형제와 조은솔(초6)양은 한 달 동안 도시·농촌 교류학습을 하러 양화분교를 찾았다. 새 친구를 맞은 분교 아이들의 소감은 한 마디로 “축구하기 좋겠네”다. 이 지역 학생인 6학년 임하림양은 “1·2학년 아이들을 빼고 두 팀으로 나눠서 축구를 해도 이제는 폼이 난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학생 수가 늘면서 교사 두 명이 새로 부임했다. 지난해까지 송호필 분교장을 포함해 총 3명의 교사가 3개 학급을 가르쳤는데, 올해부턴 1·2학년 복식학급을 빼고 각 학년에 한 학급씩 총 5개 학급을 5명의 교사가 가르친다. 1992년 분교가 된 뒤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양화분교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송 분교장은 도시 아이들이 첫 등교한 3월14일, ‘두꺼비알 채집 체험학습’으로 환영식을 열었다. “앞으로 학교 공부와 더불어 자연 속에서 다양한 생태 체험 학습을 하게 된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양화분교의 4월 일정표에는 가재 잡기, 서해안 주꾸미 탐사 등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도시 아이들과 시골 아이들의 행복한 동거가 이렇게 시작됐다.
사건은 지난해 가을, 이 지역에 7년 전 귀농한 주상태·지아가씨 부부가 ‘산촌 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촌 유학은 30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대안교육의 한 형태로, 도시 아이들이 시골 마을의 집이나 기숙사(산촌유학센터)에 머물면서 그 지역 학교에 다니고, 방과후엔 마을(센터)에서 마련한 다양한 생태·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씨 부부는 “산촌 유학이 양화분교도 살리고, 도시와 산골 아이 모두에게 행복한 유년기를 선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국내 최초의 산촌유학센터를 열기로 했다. 텃밭을 끼고 널찍하게 지은 집을 빌려 황토방을 만드는 등 시설을 확충한 뒤 학생 모집에 나선 것이 지난 1월. 전국에서 몰려든 21명 지원자 가운데 “아토피나 비만 등 산촌 유학 생활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들 순으로” 4~6학년 7명과 중학 1·2학년생 2명 등 총 9명을 뽑았다.
현재 센터에 입소한 초등학생 6명은 양화분교에, 중학생 2명은 인근 완주중학교에 다닌다. 전학을 앞두고 있는 초등 3학년 조정완군은 서울과 고산을 오가며 ‘분위기 파악’을 하고 있다. 조군이 전학하면, 현재 양화분교의 유일한 3학년생인 문세리양은 단짝 친구를 갖게 될 것이다.
센터 아이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유기농 채소로 식사를 한 뒤 학교로 몰려간다. 수업을 마치고 센터에 돌아오면 감자 심기, 텃밭 가꾸기 등 농사일도 하고, 토끼와 개, 오리 등 센터에서 기르는 동물도 돌본다. 한 주에 두어 차례씩 회의를 열어 “컴퓨터는 일주일에 한 시간만 한다”, “화를 참는 연습을 한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숙제는 학교에서 돌아온 뒤 바로 한다” 등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지키고 있다.
전북 고산면 산촌 학교로 생태체험 유학 온 여섯명
수업 끝나기 바쁘게 밭에 가 감자 심고, 토끼 돌보고…
1주에 두번은 원어민 수업
“적응 못할까 걱정됐는데 만나자마자 손잡고 놀아요” 센터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에는 인근 지역 엔지오(NGO) 활동가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흙피리 만들어 불기, 야생동물 탐사, 나무 공예, 풍물 교습, 만경강 답사, 산나물 채취 등 아이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참여한 체험 학습만 10여 가지에 이른다. 한 주에 두 차례씩 캐나다 원어민 교사가 센터에 들러 영어 노래와 놀이, 요가 등을 가르쳐주는 시간도 갖고 있다. 이런 ‘특별활동’이 있는 날은 마을의 모든 아이들에게 초대장이 발송된다. 주씨는 “센터가 도시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면 의미가 반감된다”며 “지역 아이들과 센터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성장하는 것이 산촌 유학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물론, 마을 아이들은 초대장이 없어도 센터를 수시로 드나들며 먹고, 놀고, 잔다.
도시 아이들의 전학을 앞두고 교사·학부모 대책회의까지 열며 고심했던 송호필 양화분교장은 한시름놓았다는 표정이다. “옷차림부터 생활 습관까지 너무 달라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마을 아이들이 기가 죽으면 어쩌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다 부질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는지, 전학생 소개를 마치자마자 서로 손을 잡아 끌면서 운동장으로 나가더군요.”
한 달 간의 도농교류 학습을 마친 주상우, 상운 형제는 내주쯤 자신들이 다니던 수원 장안초등학교로 돌아간다. 상우군은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방학 때 꼭 다시올 것”이라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애초 한 달만 머물기로 했던 조은솔양은 아예 전학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토피 피부염이 한결 나아진데다, 이 곳 생활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은 마냥 좋은데, 어른들의 고민은 남아 있다. 주상태씨는 아이당 한 달에 50만원이 채 안 되는 생활비를 받아 유기농 식비와 학용품값, 체험학습 비용까지 충당하느라 가계부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송호필 분교장은 학생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단위로 바뀌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학교를 운영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된 도시·산골 아이들의 동거, 그리고 양화분교와 고산산촌유학센터의 공생은 어른들에게도 행복한 일인 듯하다. 송 분교장은 “아이들이 찾아오는 한 학교는 문 닫지 않을 것이고, 더 많은 아이들이 찾아 오도록 센터 쪽과 함께 노력하겠다”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완주/글·사진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싹’트는 산촌유학 여기 있어요 고산산촌유학센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10인 이상 학생들이 기숙하는 ‘센터형 산촌 유학’을 시도한 경우다. 이밖에도 전국 곳곳에서 개인 또는 몇몇 농가가 공동체를 이뤄 산촌 유학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refarm.org), 생명의 숲(forest.or.kr), 대안교육 민들레(mindle.org) 등 관련 엔지오들은 산촌유학 운영자들 사이의 네트워크 구축과 다양한 산촌 유학 ‘모델’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개인 또는 몇몇 농가 손잡고 공동체 이뤄 산촌체험 ‘손짓’ 경북 상주시 화북면 산촌 유학(blog.naver.com/nongsachul)
귀농자인 이명학씨를 중심으로 5개 농가가 손잡고, 인근 화북초등학교와 함께 산촌 유학을 하고 있다. 지난 3월17~18일 산촌 유학 맛보기 체험 행사를 열었고, 오는 4월20일부터 20일 동안 10명 가량의 학생을 모집해 첫 산촌 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농사 체험과 예술 활동, 생태 살림살이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았다.
경남 함양 마천면 산촌 유학
(blog.naver.com/hieri) 마천면 창원마을 햇살네 농가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 3개 농가에서 각각 4명 가량 학생을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작은 학교인 마천초등학교와 서하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방과후에는 책읽고 글쓰기, 농사체험, 전통놀이, 생태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다. 오는 21일까지 2주에 걸친 교류학습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늦은 봄 시골살이(6월4~16일), 여름살이(7월22~25일, 7월29일~8월1일, 8월5~8일), 가을 시골살이(10월8~20일, 10월8일~11월3일) 프로그램이 계획돼 있다. (055)963-5586. 충북 단양 한드미마을 산촌 유학(handemy.org) 마을의 3개 농가가 손잡고 센터 형식의 산촌 유학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학생 수 16명인 대곡분교 학생들을 위해 일본어 교실, 영화보기, 자연 체험 학습 등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산촌 유학생들이 오더라도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적은 상황이다. 마을에 있는 산림문화회관을 산촌유학센터로 삼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되 아이들은 인근 농가에서 기숙하는 방식으로 오는 9월 문을 열 예정이다. 이미경 기자
학교가 끝난 뒤 센터로 돌아온 산촌유학생들이 감자 심기에 나섰다. 강창광 기자
수업 끝나기 바쁘게 밭에 가 감자 심고, 토끼 돌보고…
1주에 두번은 원어민 수업
“적응 못할까 걱정됐는데 만나자마자 손잡고 놀아요” 센터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에는 인근 지역 엔지오(NGO) 활동가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흙피리 만들어 불기, 야생동물 탐사, 나무 공예, 풍물 교습, 만경강 답사, 산나물 채취 등 아이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참여한 체험 학습만 10여 가지에 이른다. 한 주에 두 차례씩 캐나다 원어민 교사가 센터에 들러 영어 노래와 놀이, 요가 등을 가르쳐주는 시간도 갖고 있다. 이런 ‘특별활동’이 있는 날은 마을의 모든 아이들에게 초대장이 발송된다. 주씨는 “센터가 도시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면 의미가 반감된다”며 “지역 아이들과 센터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성장하는 것이 산촌 유학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물론, 마을 아이들은 초대장이 없어도 센터를 수시로 드나들며 먹고, 놀고, 잔다.
학교에서 고산산촌유학센터까지는 버스로 5분 거리다. 1시간 30분에 한번 꼴로 오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별별 장난을 다 한다. 강창광 기자
‘싹’트는 산촌유학 여기 있어요 고산산촌유학센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10인 이상 학생들이 기숙하는 ‘센터형 산촌 유학’을 시도한 경우다. 이밖에도 전국 곳곳에서 개인 또는 몇몇 농가가 공동체를 이뤄 산촌 유학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refarm.org), 생명의 숲(forest.or.kr), 대안교육 민들레(mindle.org) 등 관련 엔지오들은 산촌유학 운영자들 사이의 네트워크 구축과 다양한 산촌 유학 ‘모델’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개인 또는 몇몇 농가 손잡고 공동체 이뤄 산촌체험 ‘손짓’ 경북 상주시 화북면 산촌 유학(blog.naver.com/nongsachul)
학생 수가 늘면서 교실엔 활기가 돌고, 운동장도 떠들썩해졌다. 운동장 한 켠에 있는 동상 위에 올라가 놀고 있는 아이들. 강창광 기자
(blog.naver.com/hieri) 마천면 창원마을 햇살네 농가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 3개 농가에서 각각 4명 가량 학생을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작은 학교인 마천초등학교와 서하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방과후에는 책읽고 글쓰기, 농사체험, 전통놀이, 생태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다. 오는 21일까지 2주에 걸친 교류학습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늦은 봄 시골살이(6월4~16일), 여름살이(7월22~25일, 7월29일~8월1일, 8월5~8일), 가을 시골살이(10월8~20일, 10월8일~11월3일) 프로그램이 계획돼 있다. (055)963-5586. 충북 단양 한드미마을 산촌 유학(handemy.org) 마을의 3개 농가가 손잡고 센터 형식의 산촌 유학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학생 수 16명인 대곡분교 학생들을 위해 일본어 교실, 영화보기, 자연 체험 학습 등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산촌 유학생들이 오더라도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적은 상황이다. 마을에 있는 산림문화회관을 산촌유학센터로 삼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되 아이들은 인근 농가에서 기숙하는 방식으로 오는 9월 문을 열 예정이다. 이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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