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손씨의 양복
얀손씨의 양복 /
우리 사회에서 어린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낸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 어린 것을…”이라며 혀를 끌끌 차곤 한다. ‘비정한 부모’라는 손가락질은 응당 짊어져야 할 멍에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는 되묻는다. “자식을 버려야 했던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겠느냐?”고. “남몰래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들의 마음은 아마 피멍이 들었을 것”이라고.
이 책은 입양 문제를 자식을 머나먼 나라로 떠나보낸 부모 처지에서 풀어낸 동화다. 5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을 홀로 키우다 생활고와 주변의 편견을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입양 보낸 뒤 평생 죄의식을 안고 살다 간 아버지, 이국 땅에서 40여년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온 아들 근우, 동네 양복점 할아버지(근우 아버지)가 빌려준 양복 덕에 어릴 적 꿈인 축구 선수가 된 민재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이다. 196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2007년까지 50년 가까운 시간을 넘나들며 가슴 뭉클한 사연을 담아낸다.
이야기는 민재가 초등학교 때 양복점 할아버지가 남긴 낡은 양복을 들고 네덜란드로 가 근우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민재는 근우에게 건네려고 꺼낸 양복을 몸에 대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 때부터 80년대 민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등학교 4학년 민재는 가난하고 공부도 못 하는 아이다. 친구들은 민재를 고등어 대가리, 줄여서 ‘고대가리’라고 부르며 놀린다. 엄마가 생선장사인 민재의 옷에서 늘 썩은 생선 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민재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동네 들머리 허름한 양복점 할아버지와 친구가 된다. 할아버지가 빌려준 멋진 양복 덕에 민재는 학교에서 명물이 된다. 민재를 친아들처럼 예뻐해주던 할아버지는 유괴범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고, 결국 혼자 떠돌이 생활을 하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민재는 할아버지가 남긴 양복 한 벌을 소중히 간직하다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양복의 원래 주인을 떠올린다. 바로 할아버지가 늘 가슴에 품고 산 사진의 주인공 근우다. 민재가 건넨 양복은 근우의 기억을 1960년대 서울로 이끈다. 아버지한테서 버림받는 아픈 기억이지만, 어린 시절을 거쳐 다시 2007년으로 돌아온 근우의 가슴에는 그동안 응어리져 있던 부모에 대한 원망은 사라지고 그리움이 사무친다. 멀리 떠나보낸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회한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읽다 보면 코끝이 시려온다. 원유순 글, 두비기 그림. 한겨레아이들/8천원.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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