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권의 책
참으로 이상한 나라가 있다. 땅과 아파트를 서로 사려고 줄을 서고, 평생 모은 돈을 아낌없이 붓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몸부림을 친다. 기와집, 양옥집, 아파트, 천막집, 쪽방, 비닐하우스, 오피스텔, 전원주택, 원룸, 다세대주택, 주상복합아파트 등등 벼라 별 이름의 집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갈라서는 부부, 헤어지는 부모와 자녀, 무너지는 가정, 거리의 비참한 인생이 하루도 쉼 없이 생겨날까. 한 채의 집, 아파트 한 호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는데, 그 안에서 가꾸고, 지켜가야 할 ‘가정’은 어디에 내버린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풍조가 단단히 자리잡은 그 나라의 이름은 아파트공화국, 또는 부동산 제국이라고 한다나!
아, 이런 이야기가 그저 한 편의 우화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나라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치부이다. 어른들이 치를 떠는 대물림 가난이나 절대빈곤처럼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이혼이 무섭고 징글징글한 악마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조금만 언성을 높이면 제 방에서 공포에 떨며 흐느낀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건 아닐까? 그럼 나는 어떻게 될까?’
<우리 형이 온다>(웅진씽크하우스)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3학년 윤호는 그런 공포를 겪고는 마침내 아빠와 단 둘이 살게 되었다. 형은 엄마가 데리고 갔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열 살이다. 누구는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라고 했지만, 그건 다른 의미일 터이고, 열 살이면 세상을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나이이다. 그러나 윤호는 세상 한 가운데로 던져졌다.
그런데, 그때에 윤호의 가슴을 쿵 하고 울린 것은 형의 존재였다. 그전까지 형은 경쟁상대를 넘어서서 윤호를 괴롭힌 악의 대명사였다. 형만 없으면 윤호는 제가 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부모의 이혼으로 형과 헤어진 윤호에게 형은 다른 의미와 또 다른 존재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형의 무서운 주먹은 영웅의 멋진 주먹으로, 형의 지겨운 간섭은 너무도 따스한 손길로, 형의 쌀쌀한 야단은 그리운 목소리로! 이성의 사랑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지만, 핏줄의 끌림은 시공간이 멀어질수록 가슴 뻐근하게 그리워지는가 보다.
그렇게 형을 그리워하게 되자, 윤호는 이해한다. 헤어지던 날, 형이 왜 그렇게 울었는지를. 그리고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형을 믿고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고, 위풍당당하게 다녔으며, 눈꼬리 올라간 상급생들을 만나도 기죽지 않고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다녔지를 깨닫는다. 그런데 이제 형은 없다! 나의 방패이며, 나의 구원대장이 없다. 나는 혼자이다. 아빠도, 엄마도 채워줄 수 없는, 오직 형만이 채워 줄 수 있는 그 부분. 이제 어린 윤호는 혼자 헤쳐나가며,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지금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우리네의 ‘집’에 대한 열망은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집’에 가족의 흔적만 있고, 가정의 자취만 있다 해도 우리들은 ‘집’을 숭배한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우리들은 이 아이처럼 울부짖는다. “형, 보고 싶어!” 그 형이라 함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순수와 모른 체 했던 작은 사람들과 알고도 등 돌린 정의이리라! 노경실/동화 작가 ksksn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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