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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싱가포르의 이색 도서관을 가다

등록 2007-02-11 16:34

(왼쪽)주롱 지역도서관 1층에 있는 어린이도서관. 곳곳에 ‘ASK’라는 팻말이 있다. ‘왜’를 달고 사는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려는 의도다. (오른쪽)도심의 다카시마야 대형 백화점 5층에 있는 오차드도서관. 15만권을 보유하고 있다.
(왼쪽)주롱 지역도서관 1층에 있는 어린이도서관. 곳곳에 ‘ASK’라는 팻말이 있다. ‘왜’를 달고 사는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려는 의도다. (오른쪽)도심의 다카시마야 대형 백화점 5층에 있는 오차드도서관. 15만권을 보유하고 있다.
사색이 샘솟는 청소년 ‘해방구’

첨단 디지털시대를 맞아 아날로그의 상징인 듯하던 도서관의 변신이 눈부시다. 나라마다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 앞다퉈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싱가포르는 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오아시스’라는 해방공간을 제공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백화점 등에 도서관을 설립하는 등 이색적인 도서관 운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학생들 또래사서가 책 권하고

편하게 누워서도 읽는 주롱도서관

백화점·공연장 곳곳에 도서관

사람들 발길 끄는 시도 실험중

청소년의 해방공간 오아시스=싱가포르 서쪽에 있는 주롱도서관은 세 곳의 지역 도서관 중 가장 큰 곳으로, 장서량이 45만권에 이른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청소년 서비스이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어린이 때와는 달리 컴퓨터 게임, 스포츠, 음악 등에 빠져 책과는 슬슬 거리가 멀어지는 연령층이기에 궤도에서 멀리 이탈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이벤트를 모색한다.

도서관의 한 층이 온전히 청소년만을 위한 서가인데, 이름이 ‘버징-올-틴스’(verging-all-teens)이다. 벽 한편에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커다란 보드가 걸려 있다. 짧은 독후감이나 심경을 담은 메모지가 나부낀다.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마당이다. 독서모임이나 동아리들의 공동작업을 위한 별도 회의실까지 있다.

사서가 아무리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는 법. 그래서 사서도 학생들이 맡고 있다. 물로 정식사서의 지도를 받는다. 또래끼리 유행하는 트렌드를 잘 알기에 어떤 책을 요구하는지 한번에 ‘딱’ 알아챈다. 또 사서친구가 권하는 책에 신뢰도 더 높은 편이다.

‘오아시스’라는 코너도 눈길을 끈다.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 오전이라 도서관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 코너에는 남자 아이 두 명이 서로 비스듬하게 누워 편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었다. 오아시스에서는 누구의 간섭 없이 가장 편한 자세로 바닥에서 책을 보거나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사회적으로 억눌린 청소년들에게는 한마디로 ‘해방구’이다. 이 오아시스의 또 다른 샘은 자판기이다. 음료수는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 한평 정도의 샘을 통해 청소년들이 더 큰 호흡을 할 수 있어서인지 인기만점의 공간이 됐다.

주롱도서관 청소년실의 보드.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공간이다.
주롱도서관 청소년실의 보드.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공간이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는 보호자가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곳이 따로 있었다. 곳곳엔 ‘ASK’(물어보세요)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책을 읽으며 모르는 내용이나 이어지는 ‘왜?’의 질문 보따리를 꽁꽁 묶어두지 않고 이곳에서 풀어놓게 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서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정기적인 구연동화 발표회 등을 위한 무대도 눈에 띄었다.

싱가포르는 주민들은 보통 때는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어린이도서관을 이용한다. 좀더 많은 자료를 찾기 위해 지역도서관을 이용하는데 반납은 어느 도서관에서든지 가능하다. 크리스 림 슈 주 주롱도서관 매니저는 “책 반납 때문에 빌리는 것을 꺼려하지 않도록 대여시스템을 일원화했다. 전자태그(전자꼬리표)를 설치하고 우정국과 제휴를 해서 수거한 도서를 소속 도서관으로 24시간 안에 돌려보낸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찾아간다=이른바 틈새 도서관으로, 쇼핑몰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그것도 도심 오차드거리 한복판의 가장 큰 다카시마야 백화점 5층에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금싸라기 땅에 도서관이라니. 이름만 도서관이고 백화점 따라온 남편들이나 쇼핑에 지쳐 잠시 쉬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간이 휴게실 정도라고 생각하고 찾았는데 웬걸? 소장하고 있는 책이 15만권이나 된다. 백화점에 아이들을 데려와 이 곳에 맡겨 놓고 쇼핑하러 가겠다는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출입 금지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조용히 책 읽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다. 대신 음악과 차를 마시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세렌느 로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홍보관은 백화점의 도서관 유치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백화점의 오차드도서관은 9개월 동안의 준비를 거쳐 1995년에 문을 열었다. 예산안을 재무부에서 승인해줘 가능했다. 처음에는 백화점에 쇼핑하러 왔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갔으나 책 보러 온 김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숫자가 늘어나 쇼핑몰에서도 반기게 됐다.” 지금은 쇼핑몰들의 유치전략까지 겹쳐 10개로 늘었다.

또다른 틈새 도서관으로는 공연장 도서관이 있다. 에스플러네이드라는 공연장 3층에 있는 이 도서관은 예술 관련 도서들로만 한정되어 있다.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 음악, 영화, 무용 관련 도서로 서가를 빼곡이 채웠다.


파티마 술라이만 국립도서관 행정관 / “산모들 출산준비물에 독서목록 첨부”

“어느날 갑자기 어른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책읽기가 몸에 배도록 훈련시키는 게 중요하다.”

파티마 술라이만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선임 행정관은 성인들을 도서관으로 이끄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조기 독서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아이 때부터가 아니라 엄마가 임신하는 순간부터 한 생명의 책읽기 캠페인이 시작된다. 술라이만은 “산모들의 출산준비물에 도서목록도 첨부된다”고 밝혔다. 그 뒤를 이어 유아, 어린이, 청소년 등 나이에 맞는 적절한 책읽기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성인을 위한 독서 캠페인도 물론 있다. 택시기사, 미용사 등 직업별로 독서클럽을 조직해, 각각의 수준과 흥미도에 맞춘 책을 선정해 함께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독서프로그램의 이름이 ‘리드! 싱가포르’인데, 지적 자산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적극 앞장서고 있다.

술라이만은 도서관들의 책 구입에 대해 “선정위원회에서 싱가포르 안에 있는 모든 도서관들이 작성한 필요 목록을 검토한 뒤 국립도서관 차원에서 한꺼번에 구입한다. 언어도 인구 구성에 맞추는데 영어책 70%, 중국어책 25%, 타밀어책 5%선으로 안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추천한 도서도 검토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는 “싱가포르가 가장 우선시 하는 민족화합을 방해하는 책들은 제외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도서관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이에 대해 술라이만은 “도서관은 시민 것이다. 시민들이 도서관을 지키고 관리하는 데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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