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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갖가지 글 읽고 생각 쓰기 ‘기본이 왕도’

등록 2007-01-14 21:12수정 2007-01-17 18:42

울산제일고 1학년 학생들이 국어 보충수업 시간에 고용우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활동지에 글을 쓰고 있다.
울산제일고 1학년 학생들이 국어 보충수업 시간에 고용우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활동지에 글을 쓰고 있다.
우리학교 논술수업 짱!/ 울산제일고 고용우 교사

“자, 지금부터 15분 동안 단편소설 한 편을 읽은 뒤, 나눠준 활동지에 적힌 질문들에 답해 보세요. 답변은 반드시 완성된 문장으로 써야 합니다.”

지난 8일 오전 울산제일고 도서관. 1학년10반 학생들의 방학 중 국어 보충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제시된 소설은 황순원의 <너와 나만의 시간>. 전투를 벌이다 낙오돼 생사의 갈림길에 선 세 사람의 심리와 태도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적의 포위망을 빠져나와 산속을 헤매고 있는 세 사람은 각각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 번 말해 볼 사람?”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각자 활동지에 정리한 생각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수업은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을 택해 그 사람의 태도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글을 한 단락씩 써 본 뒤 발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소설 시 수필에서 신문만평까지


10년째 이어온 보충교재 ‘알토란’

문제풀이 수업에 비할바 되나요

고용우 교사의 국어수업은 늘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입시 논술’이라는 시류와 상관 없이, 벌써 10년째 수업시간에 다양한 글을 읽고 생각을 써 보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학생들이 이날 수업시간에 읽은 소설은 고 교사를 비롯해 이 학교 국어교사들이 함께 만든 보충수업 교재 <2006 겨울방학을 위한 소설 읽기>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 9편 중 하나다. 학생들은 한 시간에 한 편씩 이 교재에 실린 소설을 읽고 글을 쓴다. 그동안 고 교사가 중심이 돼 자체 제작한 이 학교 국어 보충수업용 교재는 <소설 읽기의 즐거움>, <책 읽는 즐거움>, <즐거운 시 읽기> 등 다양하다.

이 교재들은 모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여러 종류의 글을 읽은 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활동을 하도록 구성돼 있다. <책 읽는 즐거움>에는 수필, 인문학, 사회학, 문화예술, 자연과학, 시조 등 6개 영역에 걸쳐 다양한 읽을 거리와 함께 ‘읽고 나서’라는 활동 과제가 제시돼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종류의 독서 교과서에 실린 글과 수능 및 모의고사에 출제된 지문, 교양서적에 실린 글, 신문 칼럼 등에서 적당한 글을 뽑아 교재를 구성했다. <즐거운 시 읽기>는 학생들이 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시들을 기다림과 그리움, 고향, 존재, 이별 등 11개 주제별로 묶어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해 볼 수 있도록 만든 교재다. 김남주 시인의 ‘자유’를 서정윤 시인의 ‘홀로 서기’와 함께 읽은 뒤, 두 시의 화자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고 글을 써 보는 식이다. 수능 대비 문제집 한 권을 정해 보충수업시간 내내 문제만 줄기차게 풀곤 하는 여느 고교의 보충수업과는 사뭇 다르다.

고 교사는 보충수업뿐 아니라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정규 수업 때도 교과서 밖 자료를 함께 엮어 활동지를 만든다. 예를 들어,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단원을 공부할 때는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를 함께 제시하고 두 글에 나타난 정약용의 심경의 차이점을 써 보도록 한다. 매체를 다루는 단원에서는 같은 사건을 소재로 한 시사만평 여러 개를 비교해 보며 각각의 만평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게 한 뒤, 가장 공감이 가는 만평 한 편을 고르고 그 이유를 써 보게 한다. 이 학교 1학년 탁성준(17)군은 “일방적인 강의 형태가 아니라, 스스로 글을 읽고 쓰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능을 앞둔 3학년 수업도 마찬가지다. 고 교사는 3학년 수업을 맡더라도 1학기 때까지는 1·2학년을 지도할 때와 똑같이 수업을 진행한다. 고 교사는 “수능 문제풀이는 2학기 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3학년 국어시간에 쓰는 교재는 <즐거운 산문 읽기>다. 1학년 교재인 <책 읽는 즐거움>에 견줘 한층 깊이 있는 글들을 담고 있다. ‘함께 읽는 수필’, ‘생각을 키우는 철학’, ‘역사를 생각하며 사회를 생각하며’, ‘문화를 생각하며 예술을 생각하며’, ‘과학을 생각하며’ 등 5개 단원에 걸쳐 각 주제별로 뽑은 글들과 함께 ‘생각하기 말하기’라는 활동 과제가 제시돼 있다. 예를 들면, 이 교재의 ‘문화를…’ 단원에는 미술가 임옥상씨의 ‘문화 식민지와 그 이데올로기’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이 글을 읽고 일제가 우리나라에 인상주의 미술을 강요한 이유를 인상주의 미술의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는 과제를 수행한다.

고 교사는 “학생들이 독해력과 표현력을 기르고 생각의 폭을 넓히려면 평소에 다양한 영역의 글을 읽고 써 봐야 한다”며 “수업시간에 이런 훈련을 꾸준히 하면 논술뿐 아니라 수능 언어영역 시험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논술교육 제대로 한번” 울산 교사들 뭉쳤어요

논술이 부담스럽기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육적 필요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 과정을 거쳐 현장에 도입된 평가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술을 가르치긴 해야겠는데 막막하기만 하다는 하소연이 엄살은 아니다.

울산국어교사모임 회장인 서상호 삼산고 교사를 비롯해 울산지역 국어·사회·도덕교사 10여명이 논술 공부모임을 꾸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토론회 등 한 달여의 준비를 거쳐 11월에 첫 발을 뗀 이 모임의 1단계 목표는 ‘교사 스스로 논술에 익숙해지기’다. 이를 위해 대입 논술고사 기출문제를 각자 집에서 풀어 본 뒤, 2주에 한 번꼴로 모여 논제를 분석하고 토론을 벌인다. 새학기부터 본격화할 2단계 목표는 논술과 토론교육을 각 교과의 교육과정 안에서 실현해 보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는 각자 학교에서 교과간 협력을 통해 통합교과형 논술특강 지도안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모임에서는 우선 ‘정의와 사회계약’, ‘개인과 사회’, ‘국가의 처벌과 인권’, ‘산업사회와 소외’, ‘사유의 방식’ 등 5개의 인문학적 주제를 선정했다. 이 주제들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교과 교육과정에서 관련 있는 내용을 찾고, 신문 등에서 해당 주제와 관련된 현실 문제도 찾아 볼 계획이다.

서 교사는 “비록 지금의 논술 바람이 대학 입시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논술고사가 요구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자체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논술 바람이 그동안 반복적인 문제 풀이에 매달려 온 수업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울산/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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