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깨비는 양쪽 다리를 함께 살짝 잡아야 한다. 수컷보다 덩치가 큰 암컷이 방아를 잘 찧는다.
붉나무 생태기행
바랭이, 강아지풀, 방동사니, 돌피가 여물어가. 이런 벼과나 사초과 식물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메뚜기들이야. 바랭이나 강아지풀이 무성한 풀숲을 살짝 건드려 보면 메뚜기들이 폴짝폴짝 튀어 올라. 이래저래 일이 있어 우리는 가까운 시골로 기차를 타고 내려갔어. 메뚜기도 잡을 겸해서 말이야. 그곳엔 문을 닫은 조그만 분교가 있는데 올 봄에 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학교가 이상해졌어. 학교 건물이 폭탄 맞은 것처럼 부서져 내려앉았어. 콘크리트랑, 철근, 쓰레기 더미야. 여기저기 파헤쳐진 운동장엔 바랭이, 방동사니 따위가 초록빛 바닷물처럼 일렁거려.
햇볕은 화가 난 듯 엄청 따가운 빛을 쏘아대고 상처투성이 학교는 조용하고 쓸쓸했지. 그런데 우리가 무성하게 풀이 자라 오른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메뚜기들이 폴짝거려. 그 바람에 학교도 들썩들썩 생글거리는 듯했어. 꼭 울퉁불퉁한 두꺼비 살갗을 그대로 닮은 두꺼비메뚜기, 팥밭에 산다고 팥중이, 쌕쌕거린다고 쌕쌔기, 쓰익쩍쓰익쩍 베 짜는 베짱이, 쿵떡쿵떡 방아 잘 찧는 방아깨비, 무시무시 사마귀 따위가 풀숲에서 꼭꼭 숨어 있어 있다 화들짝 놀랐어. 어린벌레도 더러 눈에 띄었지만 모두들 여름 내내 1령, 2령… 허물을 벗으며 날개를 키워 제법 많이 자라 있었어. 어른벌레가 된 메뚜기들은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커다란 날개로 잘 날고 튼튼한 다리로 자기 몸 몇 배나 되는 거리를 뛰기도 해. 그래서 이름도 메뚜기이지.
부서진 건물 위를 굴러다니는 뚜껑 달린 빨간 바구니 통을 주워 그 안에다 풀을 깔았어. 그리고는 살금살금 숨은 그림 찾기를 했지. 풀에 붙어 있는 섬서구메뚜기나 베짱이 같은 건 모양이 꼭 벼처럼 길쭉하고 뾰족해. 색깔도 풀색이랑 똑같은 초록색이라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찾을 수 있어. 그렇지만 행동이 굼떠 손으로 잡아도 잘 잡혀. 돌밭에 있는 두꺼비메뚜기랑 팥중이 같은 건 땅 색깔이랑 비슷하고 무늬도 비슷해. 팔짝팔짝 잽싸게 뛰니까 뚜껑이 있는 통을 가져가서 한 손엔 뚜껑을 한 손엔 통을 들고, 통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뚜껑을 닫으면 돼. 땅에 있는 풀무치 같은 건 잠자리채 주둥이를 땅으로 향하게 해서 덮치듯 잡아도 되고, 날아가는 풀무치나 방아깨비 수컷 따위는 잠자리채를 휘둘러서 채면 돼. 매부리 같은 건 위험을 느끼면 밑으로 떨어지니까 재빨리 손으로 잡아야 해. 떨어지고 나면 풀숲을 아무리 헤쳐도 찾기 힘들어.
방아를 잘 찧는다는 방아깨비 수컷을 잡아 방아 찧기 놀이를 하는데 방아 찧는 게 신통치 않아. 그래서 커다란 방아깨비 암컷을 찾기 시작했지. 정말 어려운 숨은 그림 찾기야. 겨우겨우 방아깨비 암컷을 운 좋게 찾아 방아를 찧게 하니까 역시 아주 잘 찧어. 방아를 찧는 모습이 꼭 ‘안녕하세요!’ 끄덕, ‘안녕하세요!’ 끄덕 인사하는 거 같기도 해. 메뚜기들은 위험이 닥치면 뒷다리 하나 정도는 금방 떼고 도망치니까 뒷다리를 잡을 때는 한 쪽만 잡지 말고 양쪽을 같이 잡아야 해. 수컷보다 훨씬 훨씬 덩치가 큰 방아깨비 암컷이 쿵떡쿵떡 방아 방아 잘도 찧는다. 방아깨비랑 자주 헛갈려 하는 섬서구메뚜기 수컷은 더 작아서, 암컷 등에 매달리면 꼭 엄마한테 업힌 아기 모습이야. 아, 무시무시한 사마귀도 잡았어. 사마귀한테도 독이 있어? 아니야, 사마귀한테 독 없어. 그럼 사마귀는 물어? 아니. 그런데 사마귀한테 물린 자국남은 사람은 뭐야? 그건, 손이나 발에 도톨도톨하게 쌀알처럼 생긴 작은 혹이야. 이름만 사마귀고 사마귀랑은 아무 관계없어. 사마귀를 잡으니 종알종알 궁금한 게 많아. 사마귀는 날카로운 앞다리 발톱에 살갗을 긁힐 수도 있으니까 뒤쪽에서 가슴을 쥐는 게 좋아.
풀숲에서 메뚜기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운동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풀숲을 누비며 잠자리채로 훑어 잡기를 했어. 쓰윽쓰윽 풀 훑는 소리가 좋아. 싹싹 풀숲을 헤치는 맛도 좋아. 잠자리채 안에는 메뚜기들이 조금 잡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쓰윽쓰윽 잠자리채 휘두르며 싹싹 풀숲을 헤치고 다니는 게 더 재미나. 잡은 메뚜기들은 빨간 바구니 통에다 조심스레 넣고 잘 관찰하고 같이 놀기도 했어. 가까운 곳에 논이 많아선지 벼메뚜기가 가장 많았어. 콩중이, 팥중이, 실베짱이, 방아깨비야, 모두모두 힘들게 해서 미안해! 하고는 도로 놓아 주었어.
험하게 부서져 이상해진 학교, 쓸쓸했던 운동장이 잠깐이나마 우리랑 즐거웠다고 소리를 내 웃는 거 같기도 했어. 예전처럼 다시 아이들이 운동장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기를 바라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지.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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