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청소년학교 학생들이 텃밭 가꾸기 수업 시간에 학교 자전거 보관대의 지붕을 만들기 위해 경운기로 볏짚을 나르고 있다. 간디청소년학교 제공 간디청소년학교 학생들이 텃밭 가꾸기 수업 시간에 학교 자전거 보관대의 지붕을 만들기 위해 경운기로 볏짚을 나르고 있다. 간디청소년학교 제공](http://img.hani.co.kr/section-kisa/2005/03/06/00500000012005030602259293.jpg)
간디청소년학교 학생들이 텃밭 가꾸기 수업 시간에 학교 자전거 보관대의 지붕을 만들기 위해 경운기로 볏짚을 나르고 있다. 간디청소년학교 제공
백혜순(47·경기 고양시 덕양구)씨는 스스로를 ‘대안학교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한다. 두 아들이 대안학교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올곧게 잘 컸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씨의 큰 아들 지용(22)씨는 전북 무주의 대안학교인 푸른꿈고를 졸업했고, 작은 아들 수용(17)군은 전북 남원의 비인가 대안중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를 졸업했다. 지용씨는 입시 스트레스 없는 행복한 고교 시절을 보내다 3학년 때 ‘간판’보다는 자기가 가장 신나게 할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해 “아주 쉽게”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지난해 실상사작은학교를 졸업한 수용군은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세상을 교실 삼아 배울 생각도 했으나, 검정고시 성적이 너무 잘 나오는 바람에 방향을 틀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백씨는 “둘 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제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른 것 같아서 믿음직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두 아이를 5년에 걸쳐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씁쓸한 기억도 없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학부모다. 대안학교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고 극성스럽게 나서거나 아이의 공부와 대학 진학 문제에 조바심을 내는 일부 학부모들의 모습은 불안하게만 보였다고 한다. 백씨는 “부모의 의식이 바뀌지 않은 채, 아이만 대안학교에 밀어 넣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서 중등 과정의 대안학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1998년 간디학교, 한빛고, 영산성지고 등 6개의 대안교육 분야 특성화고등학교(이하 대안학교)가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모두 18개의 특성화고등학교와 6개의 특성화중학교가 세워졌다. 비인가 중등 과정 대안학교들도 잇따라 세워지고 있다.(표 참조) 중등 과정 대안학교들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백씨가 두 곳의 대안학교에서 경험한 명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기존의 제도교육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대안교육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인 양희창 간디청소년학교 교장은 “획일적인 학교가 아닌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학교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색깔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보여 줬다는 점은 의미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전인성, 생태성 등 교육의 근본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이뤄지고, 교육이 경쟁과 효율, 질서와 복종의 체계로 치달아서는 안된다는 경종을 울린 점도 대안학교들이 일궈낸 성과”라고 말했다. 대안교육 전문가인 이종태 이우학교 이사(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는 “대안학교들이 추구해 온 교육은 근대 학교문화의 유산이 낳은 교육적 폐해에 대한 성찰과 극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서나 참고서 속의 죽은 지식보다는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앎을 중시하는 교육, 경쟁과 시험을 통해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기보다는 각자의 재능을 존중하며, 경쟁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을 살도록 하는 교육을 추구하고, 교사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꾸는 등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획일·경쟁·복종·수직에서 개성·자율·존중·수평으로 신선한 바람 몰고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성화학교들을 모두 대안학교로 볼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안학교로 보기에는 이미 ‘대안성’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학교들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역시 대학 입시다. 양 교장은 “대안교육은 잘못된 가치관과 문화를 따르는 인간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인간을 키워야 하는데, 대안학교들조차 대학 진학에 매달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씁쓸해 했다. 그는 “전인교육도 시키고 명문대도 보내려고 대안학교를 찾는, ‘꿩 먹고 알 먹고’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요구와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 탓에 대안학교들은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할 것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안학교에서 3년 동안 맘껏 자유를 누린 학생들도 입시 문제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3년 동안 대략 20여명의 친구들이 대학 입시 문제 때문에 자퇴를 하거나 학교를 옮겼다. 학생들 대부분이 남들에 비해 공부는 적게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한다.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 셈이다. 학교에서 입시 준비를 충분히 해 주지 않으니까 주말에는 집에 가서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교육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안학교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인 것 같다.” 지난달 한 대안학교를 졸업한 김아무개(19)양의 말이다. 대부분의 중등 과정 대안학교들이 교육청의 인가를 받은 학교라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 교장은 “인가를 받고 재정 지원도 받으면서 교사들은 초심을 잃은 채 매너리즘에 빠지고, 쓸 데 없는 공문 처리에 시간을 허비하는가 하면, 교육과정 운영도 자율성과 유연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인가 학교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이사는 “비인가 대안학교들의 경우, 오로지 학부모의 호주머니에 의존해 운영되다 보니 시설과 재정이 열악하고 교사 수도 적어 아이들에게 풍부한 교육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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