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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구성원들 행복한 대학 만들고 싶었다”

등록 2006-07-19 19:29수정 2006-07-19 19:36

정원10% 감축·의학전문대학원 전환 ‘구조개혁’
금혼학칙 폐지·지하캠퍼스 건립 보람 느껴
금기와 고정관념 깬 120년 역사 계속될 것
[이사람] 이달말 퇴임하는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신인령(63) 이화여대 총장이 31일 임기를 마친다. 2002년 8월부터 4년 동안 대학 구조개혁, 교수 강의 시수 감축, 지하 캠퍼스 착공 등 굵직한 현안들을 강력히 추진해 ‘몸집은 작아도 강단진 여성 총장’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가장 중점을 둔 과제가 대학 구조개혁이었어요. 최소한만 했는데, 다른 대학들이 덜 하니까 우리 이대가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이대는 내년부터 단과대 6개를 3개로 통폐합하고 입학정원도 3580명에서 3184명으로 10% 줄인다. 의학전문대학원은 올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대학 구조개혁은 1995년 만든 ‘이화 21세기 발전계획’을 토대로 선정한 13대 역점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한 셈이다.

그래도 진통은 만만치 않았다. 신 총장은 “고난의 구조개혁이었다”고 했다. 일부 교수들이 반발했고, 일부 동문은 밤샘농성까지 했다. 취임하자마자 의대 교수들은 의학전문대학원 전환 결정을 되돌리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여자 사립대가 살아남으려면 한발 먼저 나가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대학본부가 단호하게 밀고갔고 교무위원들도 만장일치로 뒷받침해 주었다. 총동창회도 공감해 줬다.

신 총장은 196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섰고 70년대엔 노동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 85년부터 노동법 교수로 모교 강단에 섰다. 여성·노동·환경 운동에도 깊이 관여한 ‘진보적 학자’다. 그런 그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하나로 비판받는 대학 구조개혁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은 규모로 경쟁할 수 없어요. 축소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창조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세계적인 추세이자 요구이고 방향이지요.”

그는 1970년대 크리스찬아카데미 노동 교육 강사로 10년 남짓 뛰었던 때를 떠올렸다. 노동자들은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강의를 알아들을까 걱정하지 않았다. “많은 지식이 중요한 건 아니다, 설탕 포대를 풀 때 실을 잘 골라 당기면 한꺼번에 풀리는데 그 실을 찾자, 그러면 삶을 변화시키는 키가 되고 힘이 된다고 강조했어요.” 노동자 교육에는 김대환(전 노동부장관)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 한명숙(국무총리) 방용석(전 노동부장관)씨 등이 참여했고, 장명국(내일신문 대표) 김세균(서울대 교수) 장상환(경상대 교수)씨 등도 함께 했다.

자신도 쉽지 않은 대학 현안들을 풀면서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고, 그것이 교수들의 강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었다고 했다. 더 잘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게 강의 시수를 주 9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일이었다. 한 학기 동안 준비하고 그 다음 학기부터 바로 시행했더니 추진 속도에 놀라더라고 했다. 효과는 다방면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교수 강의 평가가 학기마다 좋아졌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더 줄었다. 봉급 올릴 돈으론 교수들을 더 뽑았다고 했다. “교수처럼 생활이 안정된 이들은 좀 가난했으면 좋겠어요. 학문하는 이들의 청빈함 말이죠.”

재임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일로 그는 2003년 봄 57년 만에 재학 중 혼인을 금지하는 ‘금혼 학칙’을 폐지한 걸 꼽는다. 재입학한 이들 가운데 70대들도 꽤 있는데 “참말로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인터넷도 못하다 졸업할 땐 파워포인트로 멋지게 발표한 이들도 있단다.

신 총장은 200억원 규모의 지하 주차장 계획을 공사비만 1200억원이 드는 지하 캠퍼스 신축 계획으로 바꿨다. 국제 기준에 맞는 설계공모부터 화제를 모았다. ‘몸집은 작은데 일을 저렇게 키우나’ 하는 말도 들렸지만, 더 멀리 내다보자는 뜻에서 추진했다고 했다. 내년 12월엔 4개층은 교육·복지 공간, 2개층은 주차장을 갖춘 지하 캠퍼스가 완공된다.

“지식인들이 책도 사고 차도 마시는 공간이 될 겁니다. 아마 다른 대학 남학생들을 만나기에도 여기가 좋을 거예요. 지역 주민에게도 열립니다.”

이대는 지난 5월 창립 120돌을 맞았다. 신 총장은 “이화 120년은 금기와 고정관념을 깨온 역사였다”고 뜻을 새겼다. “구성원들이 행복한 대학이길 바랐어요. 이제 물러나면 연구년 등으로 1년 쉰 다음 노동법 교수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겁니다.”

글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인터뷰/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올해 창립 120돌을 맞았는데, 의미는?

=이화 120년은 여성이라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향상 역사였고, 금기와 고정관념을 깨 온 역사였다. 없는 길을 만들며 걸었기에 개척적일 수밖에 없었다. 창립 120돌 공식 슬로건을 ‘프런티어 이화’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발랄한 학생들은 ‘이화, 즐겁게 세상을 흔들어라!’를 내놓았다.

-가장 보람을 느낀 때는?

=2003년 봄 57년 만에 금혼(재학 중 혼인 금지) 학칙을 폐지한 일이다. 재입학한 이들 가운데 70대 분들도 있다. 참말로 감동을 느낀다. 인터넷도 못하다 졸업할 땐 파워포인트로 멋지게 발표하기도 한다. 졸업하면서는 다들 울더라.

-어떤 대학을 꿈꿨나?

=구성원들이 행복한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교수들이 더 잘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게 강의 시수를 주 9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교수를 3분의 1 더 채용해야 하는데, 강사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서 단계적으로 풀어갔다. 교수회의 논의를 거치며 한 학기 동안 준비해 그 다음 학기부터 바로 시행했더니 속도감에 놀라더라.

-결과는 기대대로였나?

=학생들의 교수 강의 평가가 학기마다 좋아졌다. 2001년 평균 3.73(만점 5)에서 지난해엔 4.15였다. 연구 업적도 나아졌다. 교수 확보율이 올랐고(76.1%), 교수 1인당 학생 수도 더 줄었다(28.1명). 봉급 올릴 돈으로 교수들을 더 뽑았다. 교수처럼 생활이 안정된 이들은 좀 가난했으면 좋겠다. 학문하는 사람들의 청빈함 말이다.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1995년에 만든 ‘이화 21세기 발전계획’ 등을 토대로 13대 역점과제를 선정했고, 가장 중점을 둔 과제가 대학 구조개혁이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한 셈이다. 최소한만 했는데, 다른 대학들이 덜 하니까 우리가 눈에 띄는 듯하다. 방향만 잡고 그릇만 만든 정도다.

-내년부터 14개 단과대를 11개로 줄이고, 입학정원도 줄인다던데?

=6개 단과대를 3개로 통·폐합하고, 입학정원도 3580명에서 3184명으로 10% 줄인다. 구조개혁 방향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기 때문에 대학본부가 단호하게 밀고갈 수 있었다. 교무위원들의 만장일치 의결도 뒷받침이 됐다.

교직원 중 단 한 명도 불이익받지 않고 소속만 바뀌는데도, 참 힘든 진통을 겪어야 했다. 고난의 구조개혁이었다. 일부 교수들이 반발하고 16만 동문 중 40여명은 밤샘농성까지 했다. 설득하고 자료를 주고 토론했다. 하지만 옳지 않은 의견에는 타협하지 않았다. 총동창회가 ‘학교 운영에 동문이 관여해선 안 된다’며 밀어주고 대다수 교수들이 공감해줬다.

-의학전문대학원 준비는 어떤가?

=의학전문대학원 전환은 취임 이전에 결정됐는데, 내가 취임하자 의대 교수 200여명이 서명해 결정을 번복하라고 압박했다. 고민했으나, 되돌릴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화가 살아남을 방법은 한 발 먼저 나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지난달 첫 입학생(2007학년도) 수시 모집에 경쟁률이 5.6 대 1이었다. 이젠 의대 교수들도 자긍심을 갖고 준비한다.

-지하 캠퍼스 계획을 소개해 달라.

=국제 기준에 맞춘 설계공모부터 화제가 됐다. 당선자인 세계적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언론에 소개될 때마다 우리 캠퍼스 작품까지 세계에 알려진다. 19세기의 이화학당(최근 복원)부터 1935년 지은 20세기 건축물에 이어, 2007년 12월 지하 캠퍼스가 완공되면 3세기에 걸친 건물이 어우러진 캠퍼스가 된다.

-어떻게 구상했나?

=이전에 경의선 복선화로 정문 앞 다리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낮아질 학교 광장에 지하 2층 주차장을 짓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교육 공간이 부족해 수정했다. 지하 캠퍼스는 2개층은 주차장, 4개층은 교육·복지 공간이 된다. 공사비만 약 1200억원이다. 지상에선 차량이 사라진다. 그러다보니 ‘몸은 작은데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나’ 하는 말도 들었다.

이화여대는 여성들만 있으니 재미없을 거라고들 하는데 달라진다. 우리 지식인들이 책도 사고 차도 마시는 곳이 마땅치 않은데, 그런 공간이 될 거다. 다른 대학 남학생들을 만나기에도 여기가 좋을 거다. 재미있고 지역 주민에게도 열린 공간이 될 거다.

-왜 지하인가? 지방 캠퍼스 구상은?

=충청도 쪽에 캠퍼스 터를 마련한 적도 있다. 하지만 늘리기보다 집중하는 것이, 용광로 같은 신촌캠퍼스에 학생들을 모아 함께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봤다. 그런데 고도 제한 때문에 7층까지만 올릴 수 있다. 지하를 개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등록금 동결을 요구했는데, 어떻게 매듭지었나?

=들어줄 수 있는 건 들어주지만, 힘에 밀려 정책을 이랬다저랬다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지난해에도 학생들이 등록금 문제로 40일 넘게 단식했다. 이번에도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학교는 5.8%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이 철탑에 올라 농성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흔들리진 않았다. 계절학기 등록금 동결 등을 약속했다. 지난 5월30일 창립 기념식 두 시간 전에야 농성을 풀더라. ‘유연한 종결’을 이뤘다고 본다.

6·3(한일회담 굴욕외교 반대 운동) 때 100시간 단식한 적 있다. 군이 학교 문 닫고 그랬으니까. 법대 학장 때는 단식하는 법대 학생회장에게 ‘학생운동 목표가 고작 등록금 동결이냐’며 등을 툭 쳐 준 적이 있다. 이번에도 총장만 아니었다면 등을 쳐 주며 한마디했을텐데.

-총장 직선제 주장도 나왔는데?

=이사회가 총장을 직접 임명하다가, 1990년 교수들이 한자리에서 이름을 써 3명을 추천하는 교황식 직선제로 윤후정 총장이 뽑혔다. 그래도 교수 분열 같은 분위기가 생겨서 교황식 간선제로 바뀌었고 장상 총장과 내가 뽑혔다. 이번에 교수협의회는 다시 직선제를 주장했다. 여론을 모은 결과 간선제 틀 안에서 교황식을 포기하고 교수들에게 추대받은 3명을 추천하기로 해서, 이배용 교수가 차기 총장으로 선임됐다.

-엘리트 여성만을 키워낸다는 지적이 있는데?

=여성 정치인·법조인·의사·약사·교사 등을 다수 배출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다. 대표적 시민운동가는 엔지오(시민운동) 쪽에 이화 출신 없으면 일이 안 된다고 하더라. 많은 이화인들이 배고파가며 운동했고, 70~80년대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도 많다.

-퇴임 뒤엔?

=연구년 등으로 1년 쉴 수 있다. 쉬면서 강의 준비도 하고, 그런 다음 법대 노동법 교수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다. 정년 퇴임하면 생각도 하고, 소설도 읽고, 여행도 하고….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어떤 형태로는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참여할 것 같다.

정리 이수범 박주희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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