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엄마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 한살림 동대문지부에서 동대문구 품앗이 학습모임 엄마들이 만든 학습용 게임판을 놓고 게임을 해 보고 있다. /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엄마들 품앗이 모임서 교과서 분석
아이와 단원별 공부 꼼꼼히 해보니
국어책은 논술책, 수학은 놀이책
아이와 단원별 공부 꼼꼼히 해보니
국어책은 논술책, 수학은 놀이책
새 학기가 되면 아이들이 한아름씩 들고 오는 교과서. 그러나 이 교과서를 꼼꼼하게 들춰보는 엄마, 아빠는 거의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할 내용이 통째로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교재인데도 말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의 학부모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학부모들은 대신 각종 참고서와 문제집, 학원 교재, 학습지 따위를 아이에게 들이민다. ‘학원 뺑뺑이’에 지치다 보니 아이도 교과서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교과서와 점점 멀어져 가는 사이, 학부모의 마음속에는 ‘학원에서 어련히 알아서 학교 진도를 맞춰 주겠지’ 하는 맹목적인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아이는 점점 사교육에 중독돼 간다.
이런 현실을 참다 못한 아줌마들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들은 “교과서에 길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지역별로 공부모임을 꾸려 교과서를 연구한지가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실제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즐거운 배움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 결과와 실천 사례가 더 모아지면 ‘엄마표 교과서 학습법’을 담은 책도 펴낼 계획이다.
아줌마, 교과서를 만나다 교과서 연구모임의 뿌리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지역의 품앗이 육아모임 ‘띠앗’이다. 품앗이 육아는 이웃에 사는 몇몇 엄마들이 모임을 꾸려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대안적인 육아형태다. 품앗이 모임에서는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비롯해 사교육을 일절 시키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교사이고, 회원들의 집과 마을 놀이터, 공원 등이 교실이다. 2001년 띠앗이 처음 꾸려졌을 때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이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면서 엄마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앞으로도 계속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엄마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아이를 학교에 보낸 이상 뭔가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던 엄마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묶어 세워 준 이가 품앗이 학습법의 ‘전도사’인 홍도미(46)씨였다. 지난해 5월, 두 아이를 학습지 한 번 시키지 않고 우등생으로 키워 낸 홍씨를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홍씨는 “교과서를 펼치면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고 엄마들을 안심시켰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홍씨의 강의에 자신감을 얻은 엄마들은 곧바로 교과별 교과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각 교과별, 단원별 교육목표가 뭔지,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학교에서는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엄마,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해 볼 수 있는 활동은 뭐가 있는지 등을 공부했다. 다른 지역 품앗이 모임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교과서 연구모임은 7곳으로 늘었다.
왜 교과서인가? 평범한 엄마들이 100권이 훨씬 넘는 초등학교 6년 과정의 교과서를 붙들고 씨름하는 이유는 의외로 소박하다. 교과서를 쫙 꿰서 자식을 1등 짜리로 키우겠다는 욕심은 애시당초 없었다. 다만, 엄마들이 확 바뀌어 버린 7차교육과정에 지레 겁을 먹고 학원에 속수무책으로 ‘투항’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홍씨는 “부모들이 학원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7차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교사 중심이 아니라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점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학생들이 몸소 해야 하는 탐구활동이 많다. 따라서 교과서도 예전 것과는 영 딴판이다. 글자는 거의 없고 온통 그림 투성이다. 끊임없이 ‘~을 해 보자.’고 제안한다. 교과서를 한 번 훑어 본 학부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학원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7차교육과정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포구 교과서 연구모임의 정보라(39)씨는 “교과서에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던 엄마, 아빠들은 내용이 거의 없는 현행 교과서를 보면 당황하기 쉽다”며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정작 7차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과서 연구모임 엄마들이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교과서가 하라는대로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함께 교과서를 보면서 ‘~해 봅시다.’라고 돼 있는 부분이 나오면 실제로 아이와 함께 해 보라는 얘기다. 이는 학교교육을 보완해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30~40명의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충분한 활동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현행 7차교육과정 교과서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구성도 잘 돼 있다”고 평가한다. 실생활이나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개념을 익힐 수 있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수학 교과서가 대표적이다. 수학 교과서는 모든 단원이 생활에서 알아보기, 활동, 재미있는 놀이, 실생활에 적용하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로 구성된 국어 교과서는 더없이 좋은 논술 교재다. 중랑구 교과서 연구모임의 최정숙(38)씨는 “교과서에는 별다른 품을 들이지 않고도 아이와 함께 곧바로 할 수 있는 놀이나 활동이 많이 제시돼 있다”며 “많이 공부한 엄마들만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동대문구 교과서 연구모임이 아이들과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만든 ‘역사랑 데굴데굴’ 게임판
아줌마, 교과서를 만나다 교과서 연구모임의 뿌리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지역의 품앗이 육아모임 ‘띠앗’이다. 품앗이 육아는 이웃에 사는 몇몇 엄마들이 모임을 꾸려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대안적인 육아형태다. 품앗이 모임에서는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비롯해 사교육을 일절 시키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교사이고, 회원들의 집과 마을 놀이터, 공원 등이 교실이다. 2001년 띠앗이 처음 꾸려졌을 때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이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면서 엄마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앞으로도 계속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엄마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아이를 학교에 보낸 이상 뭔가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던 엄마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묶어 세워 준 이가 품앗이 학습법의 ‘전도사’인 홍도미(46)씨였다. 지난해 5월, 두 아이를 학습지 한 번 시키지 않고 우등생으로 키워 낸 홍씨를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홍씨는 “교과서를 펼치면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고 엄마들을 안심시켰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홍씨의 강의에 자신감을 얻은 엄마들은 곧바로 교과별 교과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각 교과별, 단원별 교육목표가 뭔지,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학교에서는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엄마,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해 볼 수 있는 활동은 뭐가 있는지 등을 공부했다. 다른 지역 품앗이 모임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교과서 연구모임은 7곳으로 늘었다.
엄마들이 보드게임을 응용해 만든 학습용 게임판
왜 교과서인가? 평범한 엄마들이 100권이 훨씬 넘는 초등학교 6년 과정의 교과서를 붙들고 씨름하는 이유는 의외로 소박하다. 교과서를 쫙 꿰서 자식을 1등 짜리로 키우겠다는 욕심은 애시당초 없었다. 다만, 엄마들이 확 바뀌어 버린 7차교육과정에 지레 겁을 먹고 학원에 속수무책으로 ‘투항’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홍씨는 “부모들이 학원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7차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교사 중심이 아니라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점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학생들이 몸소 해야 하는 탐구활동이 많다. 따라서 교과서도 예전 것과는 영 딴판이다. 글자는 거의 없고 온통 그림 투성이다. 끊임없이 ‘~을 해 보자.’고 제안한다. 교과서를 한 번 훑어 본 학부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학원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7차교육과정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포구 교과서 연구모임의 정보라(39)씨는 “교과서에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던 엄마, 아빠들은 내용이 거의 없는 현행 교과서를 보면 당황하기 쉽다”며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정작 7차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게임판체험 학습 프로그램인 ‘맛있는 체험’에 다녀온 뒤 한 학생이 꾸민 체험학습 활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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