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딸 학교에 불만이 많았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놀기만 해?” 현장학습, 공연 관람은 수시로 있고 롤러스케이트장, 놀이공원 등 노는 일정도 줄줄이. 한술 더 떠 체육대회 준비를 한 달 전부터 하는데 댄스 연습 때문에 피곤하다며 학원에 빠지려는 딸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이 과정을 통해 딸이 ‘어른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즘 체육대회의 꽃은 반별 응원전이다. 반별로 한껏 튀는 코스프레용 반 티를 맞춰 입고 케이팝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춘다. 딸네 반은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을 선곡했다. 곡을 4개 단위로 쪼개 4개 조가 각자 맡은 파트의 안무를 만들어 나중에 합치기로 했단다.
“어이쿠~” 나는 이마를 짚었다. 각 조마다 곡이 끝나는 지점의 동선이 다를 텐데 안무를 4팀으로 쪼개놓으면 어떻게 다음 안무로 이어질꼬. 어이쿠야.
어쨌든 3조인 딸은 나머지 3명의 친구와 1분가량의 안무를 준비하는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1명은 빠지겠다 하고 2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말만 한단다. 각 조의 안무를 선보이기로 한 날이 다가오는데 3조만 해 놓은 게 없다.
혼자라도 안무를 완성해 조원들과 공유하자는 생각에 딸이 수십 개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보며 안무를 연구하는데 ‘댄알못(댄스를 알지 못하는 자)’답게 복잡한 안무만 찜해놓고 정작 본인은 흉내도 못 내고 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엄마가 조금 도와줄까?”
반 전체가 추는 군무니까 쉬운 동작으로, 동선 이동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 때 유행했던 브라운아이드걸즈의 ‘아브라카다브라’. 엉덩이 흔드는 동작을 기본으로 손 동작을 다르게 해서 변화를 주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냈고 딸은 이를 받아들여 안무를 완성해 조원들과 공유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3조 안무는 채택되지 않았다. ‘구리다’며 까였단다. 반에서 춤 잘 추는 친구들이 3조 안무를 즉석에서 다시 만들었다고.
하지만 딸은 씨익 웃었다. 반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맡은 역할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완수한 것에 성취감을 느낀 것이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 결과(어떤 의미로는 성적)는 아무래도 좋았다. 노는 게 아니었구나. 학교는 이런 활동을 통해 ‘어린 사람’이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가는 곳이었구나. 나도 이런 과정을 통해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배웠겠구나.
딸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못내 아쉬웠다. 아들도 놀아야 할 텐데…, 요즘엔 특수교육도 ‘교육’에 치중하는 추세인지 어떤 해인가는 특수교사에게 야외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내자 “밖에 나가봤자 쓸데없다. 나가면 놀기만 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
어린이는 놀면서 배운다고 하는데 그건 학생도 마찬가지다. 놀면서 배우는 게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노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어른으로 살게 될 60여년 시간을 잘 살아내게 하는 자산이 된다. 열심히 공부하는 만큼 열심히 놀 수 있는 곳, 학교가 그런 곳이면 좋겠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