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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설국열차’ 보면서 빈곤·채식 이야기…더 재밌어해요”

등록 2023-05-22 14:55수정 2023-05-23 02:33

세계시민교육 현장을 가다

‘영화로 알아보는 세계시민교육’ 교사들
빈부격차·기후위기·식량안보·전쟁 등
교과목 시간에 영화와 연계해 가르쳐
자기주도성·문제 해결력에도 효과적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기술·가정 수업시간에 <설국열차>를 보면서 식량문제와 채식주의에 대해 배우고 있다.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기술·가정 수업시간에 <설국열차>를 보면서 식량문제와 채식주의에 대해 배우고 있다.

지난 17일 찾아간 경기도 안양시 신성중학교 3학년3반의 ‘기술·가정’ 수업 시간. 이날의 수업 주제는 ‘미래 산업 푸드테크’였다. 아이들이 펼친 교과서는 “영화 <설국열차> 속에 등장하는 꼬리칸 승객들의 주식인 바퀴벌레 양갱은 미래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암시하며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2050년까지 세계 인구가 91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며, 지구의 식량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고기를 대체하는 식품으로 곤충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이 주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생님이 “혹시 <설국열차> 본 사람 있어요?”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없다”고 답했다. 선생님이 칠판의 스크린 화면을 통해 <설국열차> 요약 버전을 틀었다. 학생들은 영화의 암울한 미래 설정과 줄거리에 “우와!” “헐” 등의 감탄사를 쏟아내며 몰입했다.

선생님은 영화 중간중간에 해설과 설명을 곁들이며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빈부격차와 식량문제, 대체식품, 곤충식량 등으로 자연스럽게 설명과 질문이 이어졌다. 곤충식량 대목에서 선생님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밀웜’이라는 곤충식품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으악’이라고 괴로워하면서도 호기심에 앞다퉈 시식했다. 뒤이어 동물권과 기후위기 등으로 연결된 수업은 다양한 종류의 채식주의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됐다. 수업 마지막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리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요?” 아이들은 “맛만 있다면 좋아요” “1주일에 한번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도 채식은 괴로워요” 등의 답변이 쏟아졌고 마침 수업 종이 울렸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변지윤 교사는 이렇게 자신의 교과 ‘기술·가정’에서 배워야 하는 개념을 세계시민교육으로 연결시키는 수업을 종종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시키는 도구로 영화를 활용한다. 세계시민교육이란, 지구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보편적인 가치와 실천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안양 시민이면서 경기도민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동시에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자 세계시민이기에 세계시민교육은 필요하다”며 “내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이 영상 세대이다 보니 미디어 교육 차원에서 영화를 교육 도구로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성공적이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이나 삶의 터전과 연결된 이야기를 하니까 재미있어 한다”며 “다른 수업에는 소극적인 아이들도 이 수업에는 적극적인 아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수업을 들은 정하랑 학생은 “현재도 곤충으로 만들어진 식품이 시중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에 영화같기만 한 미래가 머지않아 실현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채식과 대체식품 등에 신기한 것들을 배우면서 앞으로 인류의 식생활이 많이 변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유민 학생은 “수업을 통해 락토, 페스코, 플렉시테리언 등 채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예전에는 아무리 동물과 환경을 위한다고 해도 채식만 하는 생활에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플렉시테리언’을 알게 되어 이 정도는 나도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플렉시테리언은 가장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로, 기본적으로 채식을 지향하면서 상황에 따라 간헐적인 고기와 생선, 유제품 등을 섭취한다.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탄소중립 세계시민교육 학생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신성중학교 제공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탄소중립 세계시민교육 학생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신성중학교 제공

아이들 직접 실천하며 변화해

환경과 동물권 주제에 관심이 많은 변 교사는 자신의 교과 수업에서뿐만 아니라 동아리, 방학 캠프 등을 통해서도 아이들을 미래 시민으로 키워내고 있다. 학생들은 공정무역 제품이나 장애인 자활기업 제품을 직접 써보고 관련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전기 소등을 통해 에너지 절감에도 참여하고 저탄소 공정여행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안양천 수질 조사 및 개선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공정무역 교실 발표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안양시에 정책제안을 해서 채택이 되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이 변하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특히 아이들이 학교 근처 안양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안양천 근황을 먼저 나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졸업 뒤에도 관련된 연락을 하니까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지윤 교사는 자신과 같은 관심과 실천을 도모하는 교사들의 모임 ‘영화로 알아보는 세계시민교육 분과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부터 중·고등 교사까지 국어·영어·사회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모여 있다. 이 모임은 유엔이 선정한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영화와 연계해서 수업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빈곤층 감소와 사회안전망 강화, 식량안보, 기후변화 대응, 불평등 해소, 평화 등이 17가지 목표다.

모임은 연구 결과를 다른 교사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영화로 알아보는 세계시민교육 초등 및 중등 워크북’으로 만들어서 배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책 <선생님, 우리 영화로 세계시민 만나요!>(살림터)를 펴내기도 했다. 책은 130여편의 영화를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맞게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영화는 <인터스텔라> <마션> <빌리 엘리어트>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유명 작품부터 <가버나움> <기적의 사과> <100억의 식탁> 등과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까지 망라하고 있다.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공정무역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신성중학교 제공
신성중학교 학생들이 공정무역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신성중학교 제공

“어려움 있는 아이들에게 더 필요해”

이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북 임실초등학교 윤승희 교사는 “담임 교사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 답을 구하던 차에 세계시민교육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간혹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세계시민교육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는 이들도 있는데, 아이들이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교실에서 만난 아이의 문제가 지역의 문제이자 우리나라의 문제이고, 한 국가의 문제는 비단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가 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집, 교실, 학교, 동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이 전부인 아이들에게 우리가 처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지구적 관점에서 실천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교육복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라북도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정책 연구에 참여해 ‘전북형 세계시민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문윤주 전라남도교육청 학생교육원 교육연구사는 “국어교사로서 한국어 교육을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보니 다문화 교육과 연결이 되었고 그게 세계시민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연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시민교육이 평화, 인권, 다양성, 지속가능성, 민주주의 등을 다루기 때문에 이것은 시민교육이자 인성교육이기도 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세계시민교육이 지금의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남 창원용호고등학교 박병준 교사는 “사회가 너무 미분화되면서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포용심이 부족해지는 걸 느껴서 관용정신과 연대성에 기반한 세계시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세계시민교육은 결국은 실천을 하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자기주도적으로 제안도 하고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나아가 다른 분야에서도 문제해결능력이 향상되는 걸 보게 돼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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