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태재대학교 서울 캠퍼스 모습. 태재대 제공
지난 1997년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30년 뒤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들 말대로 한국 대학들의 미달 사태가 시작됐다. 웬만한 지식과 정보는 인공지능이 더 많이 더 잘 아는 시대에 고등교육기관은 지식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다학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해결력을 길러줘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의 혁신 대학인 미네르바 대학이 하버드 대학보다 입학이 어려운 곳으로 자리잡은 배경이다.
지난해부터 ‘한국의 미네르바 대학’을 표방하며 개교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으로 교육계의 관심을 끌던 대학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지난달 교육부로부터 원격대학(사이버대학) 설립인가를 받은 태재대학교 염재호 총장이 직접 대학을 설명하는 자리를 열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문을 여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인데다 4년제 사이버대학이 개교하는 것은 11년 만에 처음이다. 염 총장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캠퍼스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태재대학교는 미네르바 대학의 부족한 점과 아쉬운 점을 다 보완한, 미네르바 대학보다 훨씬 더 뛰어난 대학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한국의 미네르바 대학’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며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달 교육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태재대학교 염재호 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캠퍼스에서 학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태재대학교는 한샘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사재 3000억원을 들여 설립한 대학으로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이 초대 총장을 맡았다. 교수진은 전임 40명, 겸임 6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하버드, 예일, 시카고 등 해외 대학 교수들을 겸임교수진으로 갖출 예정이다.
이 대학이 일반 대학과 가장 차별되는 특징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3학기를 마친 뒤 도쿄, 뉴욕, 홍콩, 모스크바에 각각 1학기씩 체류하며 학업을 수행한 뒤 마지막 학기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학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학생들은 서울에서건 해외에서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글로벌 순환 수업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글로벌 현장 감각을 키우면서 각 도시에서 사회경제적 문제를 선정해 연구 조사 및 해결하는 실천적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뒤 2학년 이후 전공을 선택하게 되며 복수전공이나 자기설계전공도 가능하다. 혁신기초학부로 불리는 1학년 과정에서는 태재대학만의 6가지 역량을 집중적으로 기르게 된다. 6가지 역량이란 비판적 사고 역량, 창의적 역량, 자기주도학습 역량, 소통과 협력 역량, 다양성과 공감 역량, 글로벌 화합과 지속가능성 역량 등이다. 염재호 총장은 “1학년은 일반 대학에서처럼 기초 과목을 배우는 대신 이같은 역량을 훈련시킴으로써 지식의 근력을 키우도록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공학부는 인문사회학부, 자연과학부,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 비즈니스혁신학부 등 4개 학부로 구성돼 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며, 20명 이하의 온라인 토론 및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학생은 듣는 전통적인 형식의 강의는 없다. 수업 전에 학생들은 미리 제시된 사전 공부를 하고 와서 수업은 토론과 질의응답 또는 프로젝트 수행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신 프로젝트와 에세이로 평가받는다. 모든 수업은 녹화가 되며 학교는 녹화본을 분석 평가해 교수와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리더십 및 경력개발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으며, 학생 전원에게 실리콘밸리 현장학습 및 유럽문명사 그랜드투어를 무료로 보내준다. 학생들의 소속감과 선후배 스킨십을 위해 메타버스 캠퍼스를 운영한다. 매일 메타버스 캠퍼스에 등교해 게시판도 보고 상담도 받고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다. 온라인 교육으로 인한 학생 간 상호작용 부족 우려에 대해 염재호 총장은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다 같이 공동주방에서 밥도 해먹고 동아리도 만들어서 활동하기 때문에 일반대학보다 훨씬 더 교류와 접촉이 많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등록금은 한국인 학생의 경우 연간 900만원선에서 책정될 예정이다. 국가 장학금 5분위 이하 학생들에게는 등록금과 기숙사비, 해외체류비 전액을 지원한다. 졸업 뒤 국제기구나 국제단체에 활동하게 되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되는 경우 장학금이 지원된다.
염재호 총장은 “한국에서 비티에스(BTS)도 나오는데 세계 최고대학이 왜 못 나오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에 전세계 교수 자원을 바탕으로 4∼5년 안에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신에 우리 대학에 오게 하라는 조창걸 이사장님의 미션을 부여받아 총장을 맡게 됐다”며 “앞으로 그 미션에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태재대학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바꾸기 위한 척후병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우리의 좋은 시스템을 다른 대학에서도 가져가 쓰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는 9월 첫 신입생을 받는 태재대는 다음달 15일부터 전형을 시작한다. 한국인 100명, 외국인 100명을 단일학부로 뽑는데, 한국인 전형은 태재미래인재전형(70명), 자기혁신인재전형(20명), 사회통합전형(10명)으로 구성돼 있다. 태재미래인재전형과 사회통합전형은 학생종합부를 기본으로 하는 서류전형과 그룹토론면접, 개별면접 등을 거쳐 뽑는다. 자기혁신인재전형은 세상을 바꿔보거나 새로운 도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를 기본으로 한 서류평가와 개별면접을 통해 뽑는다. 9월에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 학력을 가진 사람만 지원할 수 있다. 염재호 총장은 “학생들을 잠재력을 보고 뽑되 사교육으로 훈련된 학생들은 뽑지 않을 것이고 정원을 채우기 위해 기준에 못 미치는 지원자들까지 굳이 뽑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항은 태재대 인재발굴센터 누리집(recruit.tju.ac.kr)을 참고하면 된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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