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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등록 2023-04-03 17:15수정 2023-04-04 02:33

연재 ㅣ 장애 & 비장애 함께 살기
Quar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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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이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선 개인의 강력한 내적 동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부 지상주의’ 집안에서 자라며 외부 압력과 외적인 동기 부여가 얼마나 소용없는 일인가를 몸소 체험했던 난, 자식의 학습적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내적 동기를 형성하는 데 무엇보다 큰 공을 들이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태어난 쌍둥이 남매.

비장애인 딸에겐 이 과정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자라왔던 경험에 비추어 방향성을 잡았다. 중학교 2학년이 돼 생애 첫 중간고사를 20여일 앞둔 딸의 눈빛은 지금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물론 그 눈빛도 핸드폰 앞에선 종종 갈 곳을 잃고 말지만 어쨌든 딸은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학습에 대한 내적 동기가 잘 형성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서 내적 동기를 끌어내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무엇을 해도 의지가 없고 관심이 없는 아들. 이 아이는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 걸까.

아들 교육(학습)은 생후 13개월부터 시작됐다. 재활치료라는 이름의 ‘개별학습’.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작업치료, 물리치료, 심리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 특수체육, 심리운동 등 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많은 ‘사교육’을 일찍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공들인 학습이었건만 대부분의 치료실에서 아들은 ‘끌려가듯’ 들어가 ‘억지로’ 참여하거나 아니면 드러누워 아무것도 안 하던가 잠을 자버리곤 했다. 특수교육의 틀 안으로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의 아들은 늘 무기력 그 자체. 자폐라 그런가, 발달장애인은 원래 이런가. 어느덧 내 안에도 체념의 기운이 퍼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들이 11살이던 2019년, 기적과도 같은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말 못 하던 아들이 갑자기 말을 하게 된 것도 아니고 밤마다 차던 기저귀를 뗀 것도 아니다. ‘기적’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아들 스스로가 강력한 내적 동기에 의해 행동을 바꾸고, 학습 의지를 보이고, 관계 변화를 끌어내는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이다.

담임이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던 걸까. 그 해가 끝나갈 무렵 일 년을 돌아보며 해답을 찾았다.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던 해답. 아들은 학교가 즐거웠다. 그뿐이었다.

선생님이 좋아서 즐거웠고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겨서 즐거웠다. 기존의 학교는 도무지 즐거울 일이 없는, 외부 압력과 외적인 동기 부여만 가득한 ‘견뎌야 하는’ 공간이었는데 사람들로 인해 그 공간이 즐거워지니 내면에서부터 이런저런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내적 동기가 형성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바로 ‘즐거움’이지.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그때 얻은 해답 덕분에 아들 교

육에 있어서 방향성이 잡혔다. 발달장애인이라서 내적 동기를 끌어내기 어려웠던 게 아니다. 딸이 느끼는 ‘즐거운 무엇’을 아들 교육에 있어서는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돌파구 하나를 찾은 느낌이다. 남은 건 주변 어른들의 노력. 아들에게 즐거운 2023년으로 남을 수 있도록, 엄마인 나도 내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 다짐해 본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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