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디지텍고 교실에서 김도연 코드닷오아르지 아태총괄이 자세를 취했다. 원낙연 선임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디지텍고의 프로그래밍 수업. 게임개발과 1학년 18명이 2명씩 짝을 이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박경은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 게임 속 로봇에게 일을 시킬 때 순서에 맞게 실행시켜야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여러분이 앞으로 배우게 될 프로그래밍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교실 뒤에선 김도연 코드닷오아르지(Code.org) 아시아·태평양총괄이 팻 용프래디트(Pat Yongpradit) 교육책임자와 함께 수업을 참관하고 있었다. 코드닷오아르지는 컴퓨터과학 교육을 돕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다.
수업이 끝난 뒤 교사,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김 총괄은 “미국에서도 교육 현장에서 교사·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이해하는 게 훨씬 많아 이번 방한에서 학교를 꼭 방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디지텍고 게임개발과 1학년 프로그래밍 수업을 김도연 코드닷오아르지 아태총괄이 참관하고 있다. 원낙연 선임기자
2013년 미국 시애틀에서 설립한 코드닷오아르지는 다양한 컴퓨터과학 콘텐츠를 누리집에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전세계 학생 8천만명과 교사 20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김 총괄은 “코드닷오아르지에는 용프래디트 책임자처럼 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을 가르쳤던 교사 출신들이 많아 콘텐츠의 질이 정말 괜찮다”며 “모든 콘텐츠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코드닷오아르지는 컴퓨터과학 교육을 핵심 교과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서 컴퓨터과학 교육이란 단순히 코딩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사이버 보안, 네트워크 등을 포함한 개념이다. 김 총괄은 “컴퓨터과학을 배우면 디지털 기술과 문제 해결 능력, 창의적 사고와 협업 능력을 향상시키고 미술, 음악, 언어 등 다른 과목을 공부할 때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챗지피티(ChatGPT) 등 인공지능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교육 현장에서도 뜨거운 주제다. 올해 초, 뉴욕시 공립학교들은 교내에서 학생과 교사의 챗지피티 접근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학습 효과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챗지피티가 잘하는 검색 기능을 활용해 아낀 시간을 더 창의적인 데 쓰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공포에 가까운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게 우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3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디지텍고 게임개발과 1학년 프로그래밍 수업을 김도연(뒷줄 왼쪽부터) 코드닷오아르지 아태총괄과 팻 용프래디트 교육책임자가 참관하고 있다. 원낙연 선임기자
코드닷오아르지는 창립 10년을 맞아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학생에게 컴퓨터과학을 배울 기회를 여는 것이다. 현재 누리집에서 외국인 이용자를 위해 30개 이상 언어를 지원하고 있다. 번역은 전세계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돕고 있다. 초등학생용 콘텐츠는 대부분 한글 번역을 마친 상태다.
“지금까지는 미국 위주로 활동해왔는데, 앞으로는 다른 나라에 컴퓨터과학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더 많은 아이가 배울 기회를 제공하려고 해요. 2025년까지 대단히 큰 변화가 있을 한국이 아태 지역에서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해 이번에 방문했습니다.”
최근 교육부는 2025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수학·영어·정보 교과를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디지털 교과서로 배우는 내용 등을 담은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에 새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에 우선 도입하고, 2026년 초 5·6학년과 중2, 2027년 중3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김 총괄은 “2025년부터 정보 교과 시수가 2배로 늘어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인데, 교사들이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기에 2년은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라며 “우리가 한국의 컴퓨터과학 교육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코드닷오아르지는 교사·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교육단체인 미래교실네트워크와도 최근 양해각서를 맺었다. 김 총괄은 “정책만 있다고 현장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이 정말 중요하다. 미래교실네트워크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며 “우리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있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을 잘 알려면 각 나라의 좋은 파트너(동업자)를 찾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컴퓨터과학 교육 지원 비영리단체
‘코드닷오아르지’ 아·태총괄 맡아
모든 교육 콘텐츠 오픈소스 공개
IT기업 후원…30개 언어로 누리집
카이스트·하버드 케네디스쿨 졸업
“한국·미국 경험 살려 ‘아·태’ 기여”
전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아태 지역은 한국처럼 인터넷 환경이 우수한 나라도 있지만, 대도시가 아니면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운 나라도 많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인터넷이 안 돼 쓸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인터넷이 안 되더라도 이용할 수 있게끔 콘텐츠 플랫폼을 바꾸고 있어요. 글로벌 관점에 맞춰 계획도 새롭게 짜야 하고, 저희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아요. 지난 10년이 미국의 비영리 단체였다면 앞으로 10년은 국제 비영리 단체로 성장하는 단계가 될 겁니다.”
3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디지텍고에서 김도연(뒤쪽 왼쪽부터) 코드닷오아르지 아태총괄과 팻 용프래디트 교육책임자가 게임개발과 1학년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원낙연 선임기자
1995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 입학한 그는 학부에서 생물학과 컴퓨터과학을,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뒤 아이비엠(IBM)에서 근무하다 비영리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공공정책대학원)을 졸업한 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재단에서 비영리 업무를 시작했고, 이후 여러 비영리 단체를 직접 설립했다. 2011년 청소년의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한국의 비영리 교육단체인 점프(jumpsp.org)를 공동 창립했고, 2017년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 여성의 취업과 경력 계발을 지원하는 심플스텝스(simplestepscc.org)를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했다.
3개월 전 아태 총괄을 맡으며 코드닷오아르지에 합류한 그는 자신의 인생 키워드(핵심 단어)들이 코드닷오아르지에 합쳐졌다고 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했던 게 ‘컴퓨터과학’과 ‘기술’이었고, 미국 와서 했던 건 ‘비영리’와 ‘교육’이었어요. 컴퓨터과학 교육 비영리 단체인 코드닷오아르지는 그 모든 키워드가 합쳐진 곳입니다. 사실 미국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제가 아태 지역의 교육에 기여할 수 있어 기대가 큽니다.”
원낙연 선임기자
yan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