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대안적 미술 교육이란?…왁자할 만한 일은 모두 저질렀다

등록 2023-02-20 17:26수정 2023-02-21 02:33

연재 I 미술교실에선 무슨 일이?

인형극·뮤지컬 등 공연 기획·발표
미술사 강의에 미술 감상 수업 진행
모둠별 토의 수업 전환 못해 아쉬워
이우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우학교 제공
이우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우학교 제공

이번 글에서는 학교와 관계된 미술 교과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로서는 이우학교가 유일한 교직 경험이기에 미술 교사라는 과업은 이우학교의 특별함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 이우학교는 교사가 상상하는 모든 수업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였다. 교육 개혁자들 사이에서 풍문처럼 떠돌던 교육과정을 한데 모아 용광로 같은 혁신 한마당이 펼쳐졌다.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모둠별 자리 배치와 블록제 수업, 분기 집중제와 학년팀 중심의 운영구조가 도입되었다. 농사수업과 농촌봉사활동, 생존 훈련이나 다름없는 도보기행과 해외 통합 기행, 그리고 엔지오(NGO) 수업과 친환경 급식 등등.

당시 대안학교의 인식은 ‘변방’이나 ‘아웃사이더’를 위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우학교는 공교육 현장에서 불가한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그것은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교육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었고, 간디학교와 다른 도시형 대안학교를 처음으로 정립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대안적 미술 교육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왁자할 만한 일은 모두 저질렀다. 영화사 연출부의 경험을 살려 각종 공연을 기획했다. 중학교는 그림자극과 인형극과 혼합극, 고등학교에선 뮤지컬 공연과 각종 발표를 실행했다. 무모했다. 학년 팀 선생님들이 퇴근도 못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급급했고, 결국 교장 선생님이 나섰다.

미술 감상 수업도 중학교에선 한국미술사를, 고등학교에선 서양미술사를 강의했다. 달랑 책 한 권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었다. 당시 내가 벌인 일들이란 아찔할 정도의 허무맹랑함이었으나, 이우학교는 어떠한 도전과 실험이든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의욕이 과잉되었고 그만큼 서투르고 날것투성이였던 시절이었다.

2006년부터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 이우학교를 일신하기에 이른다. 이우학교의 수업은 ‘배움의 공동체’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인데, 사토 교수는 교사의 옆에 서서 학생들을 정밀 관찰했다. 이전의 공개 수업에서 참관자가 앞문으로 들어와 버티고 서는 것은 무례한 행위였다. 교실 뒷편에서 수업 내용을 관찰하고 전개 과정이 적절한지가 공개 수업의 주된 내용이었고 아이들 뒷머리만 바라보다 연구회가 끝났다.

사토 교수는 수업 내용은 뒷전이었고 아이들의 표정을 우선했다. 수업 중 교실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교사만 바라보던 수업 연구회 방식이 아이들 중심으로 격변했다.

‘배움의 공동체’는 배움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수업 연구의 풍토를 확 바꾸었다. 교사의 강의 기술과 수준을 교사 입장에서 평가하던 기존의 연구수업이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이 일어났고, 아이들 사이에서 협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미술 감상 수업도 모둠별 토의식 수업으로 전환하지는 못했으나, 중학교 미술사 수업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활동지 방식을 도입하였고, 서양미술사 수업 또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을 담보하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인상파의 발생 배경을 강의할 때 주로 ‘본격적인 카메라 기술의 발전’을 중심으로 설명되지만, 튜브물감의 발명도 화가가 다른 작업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었단 사실을 강조한다. 수업 내용을 좀 더 숙고하고 연구하여 단순한 지식 전달을 벗어나고자 했다.

이때부터 이우학교는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특성화 중·고등학교로서 변환되고 공교육 혁신모델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우학교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의 참여와 협업에 의해 운영되는 협치 구조를 실험했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마을 커뮤니티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실험적 대안적 기관 및 사람들과 연대했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생태, 인권, 평등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만드는 활동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교육과정과 혁신적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삶의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견인하고자 했다. 이러한 실험과 상상은 공교육의 변화에 새로운 교육적 영감과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였다.

올해로 이우학교는 20살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맞이했지만 교사들은 20살을 더 먹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몇몇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방랑자를 자처한 나로서(미술 교사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간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한 동료들의 희로애락을 청해 들었다. 동료들은 여전히 각자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으며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간의 세월은 자부심과 함께 고통과 걱정과 노여움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쉽게 말로 설명하는데 익숙하지 못했고 다만 늘어난 흰머리를 탓하거나 걱정했다.

<맹자> ‘공손추’ 편에 있는 글이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묻는다.

“선생께서는 어떤 장점이 있으십니까?”

맹자가 말했다.

“나는 내가 말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있으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고 있다.”

공손추가 다시 묻는다.

“호연지기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말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맹자는 대답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맹자는 자신의 말을 황급히 수습한다.

“천지간에 넓고 큰 기운으로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떳떳한 기운을 말함인데…”

신라 시대 화랑도들이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거나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길렀다고 하여, 오래전부터 과업의 성취나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언젠가 안동지역을 여행하며 청량산의 울퉁불퉁한 산세에 놀라 화랑도들의 호연지기를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호연지기’란 장쾌거나 거대한 그 무엇으로 여겼다.

한 어른의 인생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 어른이 높을 산을 오르는 비결이라며 하신 말씀이다. 우공(愚公)이 산을 옮긴 것도 이와 같으리라.

이우학교가 감당해야 할 교육적 과업과 사회적 공헌이 여전히 멀고 거대할 것이다. 그 막중한 과업을 이루는 호연지기를 ‘사부작~ 꼼지락~’이라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우학교의 교사들만 아니라 모든 교육 운동가들에게 조금의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나에게도. <끝> 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 ‘미술교실에선 무슨 일이?' 연재를 마칩니다. 노길상 필자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대답하라고 악쓴 윤석열…총 쏴서라도 끌어낼 수 있나? 어? 어?” 1.

[단독] “대답하라고 악쓴 윤석열…총 쏴서라도 끌어낼 수 있나? 어? 어?”

[단독] 여인형, 계엄해제 전 “자료 잘 지우라”…불법인지 정황 2.

[단독] 여인형, 계엄해제 전 “자료 잘 지우라”…불법인지 정황

홍장원 “내가 피의자로 조사받는 거 아니잖냐” 받아친 까닭 3.

홍장원 “내가 피의자로 조사받는 거 아니잖냐” 받아친 까닭

“급한 일 해결” 이진숙, 방송장악 재개?…MBC 등 재허가 앞둬 4.

“급한 일 해결” 이진숙, 방송장악 재개?…MBC 등 재허가 앞둬

계엄 ‘수거 대상’ 천주교 신부 “순교할 기회 감사” 5.

계엄 ‘수거 대상’ 천주교 신부 “순교할 기회 감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