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 바칼로레아(IB·아이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일반고를 살리겠다”는 구상을 밝혀 논란이다. 아직 교육 현장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확대했던 것처럼 졸속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이 부총리는 28일 공개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반고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잠자는 (일반고) 학생을 깨우려면 학생 주도의 프로젝트 학습과 토론식 수업을 늘려야 한다. (중략) 그런 점에서 아이비가 잠재력이 있다”며 “당장 도입하자는 게 아니라 성공 사례를 검토해 전국으로 확산하도록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아이비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재단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IBO)에서 개발·운영하는 교육과정 및 국제인증 프로그램이다. 토론형·프로젝트 수업과 논·서술형 절대평가 체제를 특징으로 한다. 160여개국에 확산되어 있고 국내에서는 제주·대구시교육청이 2019년 7월 아이비 한국어화 협력각서에 동시에 서명하면서 공교육에 처음 도입됐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와는 다르다.
프로그램 자체로만 본다면 암기나 기계적인 반복 중심의 우리 교육 현실에 비춰볼 때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아이비 본부로부터 인증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학교는 올해 기준 제주 3곳, 대구 10곳 등으로 전국 초·중·고의 약 0.1%에 불과하다. 또 이 부총리는 인터뷰에서 “이미 제주와 대구에서 아이비를 성공적으로 시범 운영했다”고 주장했는데 해당 지역 교사들의 의견은 달랐다.
임성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장은 이날 <한겨레>에 “지난 6월 대구시교육청은 일부 지방 치·의대와 협약을 맺어 아이비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없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며 “결국 대구시교육청의 목표는 학벌사회에 기초한 대학 진학에 있을 뿐,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청소년을 기른다’는 아이비 본부의 목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비 최종 평가가 11월에 3주간 치러지는 탓에 아이비 프로그램 이수 학생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수 없다. 대신 아이비 프로그램을 인정하는 해외 대학으로의 유학은 용이한 장점이 있다. 임 지부장은 “아이비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학교에 보내기 위해 타 지역에서 대구로 유학을 보낸 부모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해외 유학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제고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아이비 교육의 평가방식과 현행 대입제도가 병행되기 어려워 국내에서 왜곡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승진 사교육걱정없는 정책위원은 이날 <한겨레>에 “논술형 절대평가로 타당성과 공정성을 모두 갖춘 아이비조차도 일부 학교에서는 대입을 위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상대평가로 점수를 산출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등 왜곡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기본 취지의 반쪽밖에 실현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아이비 프로그램의 국내 정착을 목표로 한다면 객관식 수능에서 논술형 수능으로의 변화 등 대입의 패러다임 전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일찍이 아이비의 국내 도입을 적극 주장해온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리는 ‘아이비교육과정의 공교육 확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토론회 발제문에서 “비판적·창의력 사고력을 평가하는 논술형 입시는 더이상 늦츨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객관식 상대평가만이 가장 공정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중장기적으로 미래형 수능 체제 구축에 속히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취임 뒤 “대입 개편은 미세조정만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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