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대입 상대평가 헌법소원 청구 및 100인 변호사의 위헌 선언 기자회견'에서 대입 상대평가의 위헌 및 행복추구권 침해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교 신입생 자녀를 둔 학부모 김아무개(48)씨는 지난 8월 딸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고3 시절, 밤마다 무언가에 찔리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아이가 내색을 안 해서 몰랐는데 대입에서 실패하면 학창시절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할 것 같아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안타깝고 미안했어요.” 특목고에 다니는 조카를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컸다고 한다. 올해 조카가 다니는 학교에선 한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주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어차피 입시해야 하지 않냐’ ‘빨리 마음 가라앉혀라’ 같은 것뿐이었어요. 이런 게 인권침해가 아닌가요?”
자녀와 조카의 모습을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김씨는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겨준 3000만원을 떠올렸다. 지난 9월 초 교육 분야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찾아가 이 돈을 기탁했다. 활동가들에게는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대입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달라고 제안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앞둔 10일, 사교육걱정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입 상대평가 제도가 학생들의 생존권, 교육권, 행복추구권, 수면권, 건강권을 위협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대입 상대평가와 입시 경쟁의 문제를 오래 지적해왔는데, 김씨의 기탁금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헌법소원 청구까지 나서게 됐다. 헌법소원의 대상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고교 내신에서의 상대평가다. 헌법소원 청구인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학생 1명과 고2 학생 2명 등 총 3명으로, 변호사 93명으로 구성된 ‘대학입시 상대평가 위헌을 선언하는 법률가’ 모임도 지지 선언을 하며 힘을 보탰다.
사교육걱정은 “변별하고 경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수십년 묵은 인식 속에서 학생들은 경쟁 교육으로 고통받고 안타까운 선택을 한다”며 “현재 청소년들의 마음은 친구를 경쟁자로 느끼는 괴리감,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으로 얼룩져 있다”고 비판했다. 또 “살인적인 대입 상대평가는 학생들의 건강권, 행복추구권을 짓밟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교육걱정과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인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진행한 ‘경쟁교육 고통 지표 조사’ 결과를 보면, ‘경쟁교육, 대학입시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반고 3학년 학생의 74.7%, 특목·자사고 3학년 학생의 76.3%가 ‘그렇다’고 답했다.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비율은 일반고 3학년 61.7%, 특목·자사고 3학년 65.7%였다. ‘학업성적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으로 자해·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일반고 3학년 중에는 24.9%, 특목·자사고 3학년은 30.9%였다.
변호인들은 실제 위헌 결정이 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내다보면서도 학생들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뤄 헌법소원에 참여했다. 청구인의 대리인단이자 청구서 작성자 가운데 한 명인 박은선 변호사(법무법인 청호)는 “우리 사회에서 상대평가 자체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소원은 없었고 성적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게 상식처럼 여겨져서 헌법재판소가 심사조차 하지 않고 각하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는 두드리면 언젠가는 깨지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평가는 보충할 부분을 파악하고 상급 교육기관에 진학할 수학 능력을 판단하는 것인데 우리는 오로지 줄 세우려고 평가한다. 나아가 치열한 경쟁으로 학생들의 수면권과 생명권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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