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에서 모여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중학생, 고등학생 청소년 12명의 넋을 기리며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달 31일 오전 전북의 ㄱ초등학교 교실에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이틀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교육 당국이 ‘교직원 검은 리본 착용’, ‘각종 학교 행사 자제’ 내용을 담은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지만 이를 전달받지 못한 학생이 미리 계획됐던 핼러윈 파티 준비물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이 학교 정성식 교사는 “안전관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1교시 조회 시간에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의 ㄴ초등학교는 같은 날 이태원 참사 전 붙여둔 핼러윈 장식을 급히 뜯어냈다. 아이들에게 해마다 하던 행사를 왜 올해는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지만, 교육 당국이 제공한 자료는 없었다. ㄴ초등학교 3학년 담임인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결국 동료 교사들이 수업자료 공유 누리집에 올린 자료의 도움을 받아 이태원 참사를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정 대변인은 “누리집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참사 다음날 낸 성명서 등을 바탕으로 ‘아이의 질문을 피하지 말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라’ 등의 내용을 정리한 카드뉴스 등이 올라와 있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어른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학생들을 다독였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이어 “참사 관련 이미지에 노출될 수 있으니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멀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검은 리본’ 참고 사진까지 공문에 첨부하며 애도를 강조하고 안전교육 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 학교 현장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수업’ 자료는 전혀 지원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현장 교사들은 수업자료 공유 누리집에 올라온 정보를 활용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교육당국이 직접 교육 자료를 만들어 배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국가의 안전관리 책임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의 고민도 적지 않다. 아이들에게 참사의 기억을 계속 상기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검은 리본을 착용하지 않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 손경은씨는 “참사에 충격받은 아이들에게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부분을 알려주면 정서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들 스스로 발언을 검열하는 분위기도 교육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인 이영탁씨는 “단순히 사실만 언급해도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민원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교사가 먼저 원인을 찾기보다 학생들 스스로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찾고 또래들과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면서 자연스레 국가의 역할을 논하는 수업은 진행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심폐소생술 등 안전교육보다 이번 참사의 본질을 성찰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며 “교육당국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자료를 만들어 현장에서 재가공해서 쓸 수 있게 한다면 (교사들의) 보호막이 될 것”이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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