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14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시작 전 담임교사와 조회를 하며 방역 수칙을 배우고 있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서는 ‘조회’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아침모임’을 쓰라고 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나눠준 ‘청탁금지법 및 청렴한 학교문화 정착 안내’에 관한 통신문을 보자. “청탁금지법은 우리 사회 폐습인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의 관행을 근절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어렵다. ‘청탁’, ‘폐습’, ‘수수’의 순화어는 무엇일까?
청탁은 ‘청하여 남에게 부탁함’이라는 뜻이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를 보니 청탁과 ‘부탁’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폐습은 ‘나쁜 버릇’을 이른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폐습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나쁜 버릇’을 쓰라고 돼 있다.
수수의 사전적 의미는 ‘거두어서 받음’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수수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받음’을 쓰라고 되어 있다.
이어지는 문장을 보니 “그동안에도 학부모님들께서는 불법 찬조금 및 촌지 수수 근절을 위해 함께 노력해 왔으며”라고 돼 있다. 찬조금(贊助金)은 ‘어떤 일의 뜻에 찬동하여 도와주기 위하여 내는 돈’을 말한다. 촌지(寸志)는 ‘속으로 품은 작은 뜻’을 말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촌지 대신 순화한 용어 ‘작은 뜻’만 쓰라고 돼 있다.
서은아 교수(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는 “‘찬조금’은 순화어가 없고 ‘촌지’는 순화어가 있지만 자연스러운 대체가 어렵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를 살려 ‘뇌물’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위의 문장을 바꿔보면 ‘그동안에도 학부모님들께서는 뇌물을 뿌리 뽑기 위해 함께 노력해 왔으며’가 된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가 발행한 ‘저소득층 중고교생 대상 온라인 학습 데이터 무료 지원에 관한 통신문’을 보자. 지원 대상을 보니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및 차상위 계층 학생(교육급여수급대상 학생 포함)”이라고 나와 있다.
차상위(次上位)는 ‘특정 등급이나 위치의 바로 위 또는 아래 등급이나 위치’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차상위 계층은 경제적으로 최하위 계층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나은 계층을 말한다. 근로 능력과 약간의 고정 재산이 있어서 소득이 최저 생계비를 초과하므로 기초 생활 수급자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잠재적 빈곤층을 뜻한다. 행정 용어이긴 하지만 보호자와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 써주어도 좋을 듯하다.
여러 기관에서 ‘소외계층’을 대신해 ‘취약계층’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취약계층’ 또한 ‘약하다’라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어서 차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행한 ‘종이 가정통신문 발송 종료 안내문’을 보니 종이 가정통신문이 온라인으로 대체된다는 소식이다. “4월 1일부터 학교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안내문, 설문 조사, 수강 신청 등 모든 가정통신문을 기존의 종이 인쇄물 발송을 종료하고 e알리미 서비스로만 학부모님의 스마트폰으로 발송될 예정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종이 가정통신문이 필요한 학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요청하면 출력해 보내드립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부득이(不得已)는 ‘마지못하여 하는 수 없이’라는 뜻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부득이와 ‘할 수 없이’를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부산 한 초등학교의 ‘개학 연기 관련 일정 안내’ 통신문을 보자. “3월2일 개학일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모든 일정은 일주일 순연되어 실시됨을 알려드립니다”에서 순연(順延)이라는 말이 어렵다. 순연은 ‘차례로 기일을 늦춘다’는 뜻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순연 대신 순화한 용어 ‘순차 연기’, ‘차례로 미룸’만 쓰라고 돼 있다.
“신입생의 경우 명찰 패용은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입니다”에서 패용(佩用)은 무슨 뜻일까? ‘훈장이나 명패 따위를 몸에 다는 것’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 명찰 패용은 ‘이름표 달기’로, 패용하다는 ‘달다, 차다’로 순화한 바 있다. ‘신입생의 경우 이름표 다는(차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입니다’로 바꿔 쓸 수 있겠다.
“변경되는 학사일정에 대해서는 추후 안내될 예정입니다”에서 추후(追後)는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나중’, ‘다음’, ‘뒤’, ‘이다음’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한 통신문'에서 리터러시(literacy)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요즘 교육계에서 ‘문해력’이라는 말 대신 많이 쓰는 듯하다. 문자로 된 기록을 읽고, 거기 담긴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코로나 확진학생 지필평가 응시 안내 및 시험 시정표 안내 통신문’을 보자. ‘시정표’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 ‘시간 일정표’의 줄임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국립국어원에서도 “시정표가 사전에 올라 있지 않으며, 어떠한 의미로 쓰인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라는 답변을 온라인 질문 코너의 답으로 달아두었다.
서 교수는 “‘시정표’는 일선 학교에서 ‘일정표’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말이다. 표준어가 아니라서 사전에 올라와 있지는 않지만 쓰고 있는 ‘개조식’과 같은 유형의 말인데, 사전에서 그 뜻을 찾을 수 없는 말들은 되도록 쉬운 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고 말했다.
“확진 관련 서류 사전 제출이 어려운 경우 구두 확인 후 사후 제출 가능”에서 구두(口頭)는 ‘마주 대하여 입으로 하는 말’을 뜻한다. 구두 확인은 ‘말로 확인’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
‘증상 악화에 따른 응시여부 변경’ 항목에서는 “의사 소견서 첨부”가 어렵다. 소견(所見)은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을 말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소견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생각’을 쓰라고 돼 있다. 의사의 생각을 적은 소견서는 ‘의견서’ 정도로 대체하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분리고사실 응시생은 정수기 이용이 불가하므로 생수 지참”이라는 문장에서 지참(持參)의 뜻은 ‘무엇을 가지고서 모임 따위에 참여함’이다. 일본어 투 생활 용어 순화 고시 자료를 보면 지참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지니고 옴’을 쓰라고 돼 있다.
‘지필평가 당일 시정표’ 항목을 보니 “예비령 오전 9시15분”이라는 말이 보인다. 예비령(豫備令)은 ‘어떤 일이 곧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종’을 말한다. 조금 더 쉽게 바꿔 쓸 수는 없을까?
가정통신문은 물론 학교 안팎으로 자주 쓰이는 조회(朝會), 종례(終禮)는 어떻게 순화할 수 있을까? 조회의 사전적 의미는 “학교나 관청 따위에서 아침에 모든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 또는 그런 모임. 주로 아침 인사, 지시 사항 전달, 생활 반성, 체조 따위를 한다”이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서는 조회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아침모임’을 쓰라고 돼 있다. 종례도 될 수 있으면 ‘마침모임’을 쓰라고 권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서은아
공동기획 |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