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해도 고전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전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에 나오는 책들도 어려운 책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고전은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쓴 글이 많아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독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대부분 잘 알고 있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든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경우에도 당시 유럽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고전도 있다. 서머싯 몸의 소설들이 그렇다. 고전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서머싯 몸의 소설을 권하는 이유다. 서머싯 몸은 소설은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한번 잡으면 중간에 놓기 힘든 재미가 있다. 그의 작품 중에 유독 <인간의 굴레에서>를 권하는데 이 작품은 재미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접할 수 있고 어떻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필립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으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 댁에서 자란다. 무뚝뚝하고 엄격한 성직자 큰아버지와 다정하지만 자식을 키운 경험이 없는 큰어머니 슬하에서 필립은 외롭고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느 날 기도문을 외우라는 큰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필립은 급기야 울음을 터트린다. 사려가 깊은 큰어머니는 필립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기침 소리를 내면서 필립이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준다. 아무리 아이라고 할지라도 울고 있는데 들이닥치면 수치심을 느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어머니는 큰아버지처럼 아이에게 명령하지 않고 옛사람들의 여행 이야기 책을 필립에게 보여준다. 필립을 무릎에 앉히고 이국적인 동방의 풍경을 담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된 어린 필립은 큰어머니에게 다른 책을 보여달라고 보챘고 이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필립의 독서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장난감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부모 등 보호자나 선생님은 아이에게 숙제를 내고 독서를 강제로 권하기보다는 아이가 책에 다가가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편이 좋겠다. 강제로 읽는 책보다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는 책이 재미나고 오래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애초에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게 된 계기가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교양 영어 교재에 수록된 글의 여자 주인공이 군인과 편지를 주고받다가 마침내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자신임을 알리는 표시로 <인간의 굴레에서>를 들고 있는 장면을 읽고 나서였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랜만에 꺼내 든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다가, 해박한 지식과 현란한 토론 솜씨를 자랑하는 등장인물이 추천한 에르네스트 르낭이 쓴 <예수의 생애>를 장바구니에 냉큼 담았다.
박균호 교사(<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 저자)
박균호 교사(<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