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8일 오전 서울 미근동 미동초등학교에서 3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가 진행되고 있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첫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였다. 6일 뒤 6학년도 시험을 치렀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오래전 한 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학년 부장 교사가 우리 반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일제고사(전수평가 방식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날 결석시키라고 권유했습니다. 차마 제 입으로 아이에게 말하는 것은 거부하였지만 그들이 뒤에서 하는 일은 모른 체 했습니다.”(중학교 퇴직교사 ㄱ씨)
“중학교 근무 때 학년 부장교사가 미달 학생 결석 권유”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해 ‘일제고사’ 부활 논란이 재점화된 가운데, 전·현직 교사들 사이에서 2008~2016년 일제고사 시행 당시 평균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 벌어졌던 각종 파행 사례들이 언급되고 있다.
ㄱ씨는 12일 <한겨레>에 일제고사 당시 교사들의 ‘부정행위’도 털어놨다. 그는 “또 다른 학교의 교사는 일제고사 시험지를 미리 살펴보고 쉬는 시간에 자기가 가르치는 반을 돌며 손가락으로 정답을 가르쳐주기도 했다”며 “일제고사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가려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은 그럴 듯 하지만, 학교간 경쟁을 격화시켜 많은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덧붙였다.
이전 전수평가 때와 현행 표집평가 때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을 비교해보면 전수평가 때 일관되게 비율이 낮다. ㄱ씨뿐 아니라 많은 교사들은 일제고사 때 높아진 학력이 각종 편법으로 ‘만들어진 점수’였다고 기억했다.
교사가 정답 알려주고, 일부 특수학급 편입 시도도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성적이 나쁜 학생들을 일제고사를 보지 않아도 되는 특수학급에 편입시킨 일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충북지부 음성지회장인 박옥주 교사(음성 남신초)는 12일 <한겨레>에 “2009년 옥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앞두고 성적이 좋지 않은, 경계선 지능 정도 되는 학생들을 학부모들을 설득해 특수학급으로 보낸 사례가 있었다”며 “이 밖에도 충북 도내 여러 학교에서 일제고사 당일 체육특기 학생들을 단체로 훈련 보낸 사례들을 제보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ㄴ(49)씨 역시 “과거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동료 교사들과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특수학급에 편입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돌이켜보면 매우 비교육적인 행태였다”고 털어놨다.
전북 임실교육지원청은 2009년 초등학교 6학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0%’로 조작해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들통이 나기도 했다. 이 결과를 두고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장의 리더십과 교사들의 열정을 운운하며 치켜세웠다가 망신을 당했다. 전수평가가 학교알리미 등을 통한 성적 공개, 또 이와 연동한 예산 지원 등과 결합해 일선 학교를 ‘경쟁을 위한 경쟁’으로 내몬 결과다. 교과부에 이어 일부 교육청들이 일제고사 결과를 교장·교감의 승진·전보·성과급 지급 등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는데, 교사들은 굳이 이런 조처가 아니더라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적은 학교’라는 평판을 유지하려 애를 쓸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 줄세우기로 끝나…미달 학생 지원 프로그램도 없어”
사교육이 밀집된 지역일수록 일제고사 부담이 덜한 역설도 벌어졌다. 또 다른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ㄷ(43)씨는 “목동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사교육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알아서 일제고사를 잘 치기 때문에 일제고사에 대한 부담이 없었는데 강서구의 학교로 옮기자마자 시험 한달 전부터 일제고사 대비를 시켜야 했다”며 “당시 일제고사는 학교·학생 줄세우기로 끝났고 기초학력 미달(1수준)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원하지도 않았다”고 떠올렸다.
교육부는 성적을 공개하지는 않고 학생·학부모·교사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준다는 입장이지만, 교육계에서는 전수평가 이후 성적 공개는 정해진 수순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일제고사를 주도한 당사자인데다, 최근 발언 역시 과거의 행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4월20일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 자격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2016년 이후 교육청별 기초학력 데이터가 깜깜이”라며 “학력격차를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문제제기조차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