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면 ‘백일장’ 대신 ‘글짓기 대회’를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2014년 서울 남산도서관에서 열린 ‘제9회 남산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이 글짓기를 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학교 가정통신문 속 우리말’ 네번째 연재에서는 학사일정과 교내 행사에 관한 말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가정통신문을 보자. ‘2022학년도 2학기 교과 보충 집중 프로그램 수강 신청 안내’에 관한 내용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교육결손 해결을 위해’에서 교육결손, ‘학부모님께서는 자녀가 교과 보충 집중 프로그램 참여를 통한 학습결손 해소로 학교생활을 알차게 할 수 있도록’에서 학습결손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맥상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지만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결손 대신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모자람’을 쓰라고 돼 있다. 우리말 전문가들은 “순화어를 바로 적용해 쓰는 것이 어색하면 쉽게 풀어 써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여러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보니 인터넷 과의존, 스마트폰 과의존, 게임 과의존 등 ‘과의존’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과의존’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않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다만 ‘과의존’ 대신 ‘지나친 의존’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이어지는 가정통신문 내용을 보니 ‘교육 수강을 원하는 학부모가 직접 기간 내 강의 링크에 접속 수강’이라는 말이 보인다. 링크(link)는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까? 링크의 사전적 의미는 ‘인터넷 누리집에서 지정하는 파일이나 문자열로 이동할 수 있도록 걸어놓은 누리집 사이의 관련’이다. ‘두개의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일, 또는 그런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를 보니 링크 대신 순화한 용어 ‘연결’, ‘연결로’라는 말을 권한다. 다만 링크의 순화어가 ‘연결로’라고 해서 ‘연결로에 접속 수강’이라고 바꾸어 쓰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연결로(링크)에 접속 수강’처럼 순화 대상어를 순화어와 함께 써주면 된다. ‘연결로’가 다수에게 지지를 받으면 자리를 잡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경쟁에 밀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받고 싶지 않은 가정통신문 1위’라는 중간고사 시험 안내문을 보자.
‘2022학년도 2학기 1차 지필평가 안내 통신문’을 보니 ‘코로나19 확진의심·증상 학생은 원칙적으로 등교가 중지되나 1차 지필평가 기간에 한하여 별도의 분리 고사실에서 응시가 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돼 있다.
고사실(考査室)은 학업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을 보는 방을 말한다. 응시(應試)는 시험에 응한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되지만 ‘별도의 분리된 교실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풀어 써주어도 좋을 듯하다.
가을에는 학교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0월 교내 사랑의 바자회 안내문’을 보자. 바자회(bazar會)는 ‘공공 또는 사회사업의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벌이는 시장’을 이른다. 패션 디자인 용어 순화 고시 자료를 보니 바자회는 ‘바자’와 ‘자선장’, ‘자선 장터’ 등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2학기 주요 교육활동 안내를 보니 ‘리더십 수련회’라는 행사가 보인다. 리더십은 무리를 다스리거나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말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서는 리더십 대신 순화한 용어 ‘지도력’, ‘통솔력’만 쓰라고 돼 있다.
김형주 교수(상명대 국어문화원)는 “문맥에 따라 리더십을 ‘지도력’이나 ‘통솔력’으로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지도력 수련회’가 바로 그런 사례”라며 “이런 때는 의미를 살려 ‘섬김 수련회’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리더’를 ‘앞장감’으로 순화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기별 교내 대회 안내문을 보니 10월에 ‘전교생 대상으로 한글날 기념 백일장 대회가 열립니다’라는 말이 있다. 백일장(白日場)은 국가나 단체에서 글짓기를 장려하기 위해 실시하는 글짓기 대회를 말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에서는 ‘백일장’과 ‘글짓기 대회’를 함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한글날 기념 글짓기 대회’라고 써주어도 좋겠다.
학사일정과 출결 관련 안내문을 보니 출석 인정 및 결석 범위에 ‘증조부모, 외증조부모의 사망’이라고 돼 있다. 같은 가족인데도 엄마 쪽 가족의 호칭에 ‘바깥 외’ 자를 덧붙여 가족 바깥의 사이로 규정하거나 ‘출가외인’이라는 시대착오적 맥락을 소환하는 것은 뒤처진 표현으로 보인다.
동일한 촌수와 성별에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되 구분이 필요한 경우 친가는 ‘아버지 본가’, 외가는 ‘어머니 본가’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3040세대 등 젊은 부모들은 ‘친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닌 지역 이름을 붙여 ‘부산 할아버지’, ‘춘천 할머니’라는 식으로 많이 부른다.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간이 다가오면서 ‘내신성적 반영 지침’에 관한 통신문도 있었다. 지침(指針)은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지도적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여주는 준칙을 뜻한다. 행정 용어 순화 편람을 보니 지침은 ‘길잡이’로도 바꿔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교수 김형주
공동기획 | 한겨레신문사, (사)국어문화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