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에게 듣는 자녀교육·공부 노하우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어떤 공부 필요할까?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육퇴한 밤> 섬네일.
2016년 무릎 꿇고 아이에게 상장을 건네준 어른의 모습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사진 속 주인공은 2013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냈던 최재천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였다. 사진 속 모습처럼 그는 학생들과 자주 눈을 맞춘다. 아이들 요청이라면, 산 넘고 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시골 학교로 찾아간다. 강연을 다녀오면, 어김없이 메일이 도착해있다. ‘덕분에 진로를 정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당찬 포부가 담겨있다. 성심껏 답장을 보낸다. 기어코 찾아오겠다는 학생들에겐 연구실 문을 활짝 연다. 최 교수는 “<육퇴한 밤> 인터뷰 촬영하고 연구실에 가면, 고양시 학생 9명이 제 연구실에 ‘쳐들어’ 오기로 돼 있다”면서 활짝 웃었다.
국립생태원 블로그 화면 갈무리.
학창 시절, 공부보다 문학에 푹 빠졌던 소년은 정작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해 여러 분야를 기웃거렸다. 우연한 기회로 하루살이를 연구하는 에드먼즈 박사를 만나 동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평생 자연과 동물을 관찰해온 그는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가 됐다. 과학 지식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도 그의 또다른 직업이다. 한 해 6천여 건의 강연 제의가 쏟아진다.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도 ‘미안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날이 다반사다. 그런데도 학생들에게만큼은 시간을 낸다. 그래서일까. 그는 저널리스트 안희경 작가와 나눈 대담집 <최재천의 공부>(김영사)에서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교육 문제와 학생 인권 문제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그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을 위한 시간 외에는 모두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선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주면 좋을지 묻고 들었다. 문답 형식으로 일부 내용을 요약했다. 전체 이야기는 <육퇴한 밤>에서 볼 수 있다.
<육퇴한 밤>에서 만난 최재천 교수.
“육아를 전담하셨는데…”라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육아에도 꽤 열성적이었다. 아들의 등·하교를 도맡았고, 맡길 곳이 없을 땐 강의실 구석에 앉혀놓은 일도 있었다. 아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거나 놀다가 밤 9시엔 칼같이 ‘육퇴’를 했다.
— 육아 퇴직하셨습니다. ‘육아 고난기’에 기억 남는 일 있으세요? “미국에서 강의할 때, 아이 안고 제법 여러 번 강의했어요. 당시 제 별명이 ‘미제 수면제’였는데, 그만큼 아이를 잘 재웠어요. (웃음) 한국에선 그럴 엄두도 못 냈죠. 불가피한 사정으로 서울대 강의실 구석에다 앉혀놓고 ‘아빠 방해하지 말라’고 게임기 쥐여주고, 소리도 꺼놨는데 화장실 2번 그 녀석이랑 뛰어갔던 기억이 나요. 학기 말에 ‘마누라도 없냐’, ‘뭐 애 볼 거면 집에 가라’는 등 학생들 강의 평가 보고 굉장히 충격받았어요.”
—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아들은 자유롭게 키우셨어요. “제가 실험을 딱 한 번밖에 못 해봤잖아요. 한 명만 키워봤기 때문에. (웃음) 다시 하라고 해도 똑같이 할래요. 왜냐하면, 그 아이의 삶이잖아요. 아이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제가 무슨 재주로 압니까? 아이를 관찰해보세요. 내가 아이였던 때보다 내 아이가 더 탁월한 거 아닌가. 제 생각에 아마 열 가정 중에 아홉 가정의 결론은 ‘나보다 더 낫다’가 결론일 겁니다. 누구 덕에 그래요. 바로 어머니 아버님 덕에 아이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지금 되어 가고 있어요.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자고요.”
<육퇴한 밤>에서 만난 최재천 교수.
—<공부>에서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가 지금처럼 빼앗아도 될까? 의문을 갖게 된다”고 했어요. 미래 세대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은 뭘까요? “대한민국 국민 기대 수명이 80살인데, 학생들은 입시 공부하는 데 20년을 보내잖아요. 인생 1/4을 그 뒤에 오는 인생을 위해 완전히 희생하고 사는 거잖아요. 그게 옳은 일일까요? ‘자기는 공부할 거 다 하고, 누릴 걸 다 누려놓고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좀 찔리기는 합니다. 그런데 거침없이 이야기하게 된 배경은 잘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공통점이 보여요. 임윤찬 피아니스트, 손흥민 선수, 방탄소년단(BTS). 이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중략) 제가 관찰한 한국사람들은 (전자제품 사면) 일단 전기 코드를 꽂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그제야 설명서를 읽어요. 약간 창조적인 엉터리 같은데, 굉장히 끼가 많죠. 그래서 (설명서처럼) 하라는 거 다 한 사람보다 적당히 생략(Skip)하면서 자기가 꼭 하고 싶은 것을 한 사람들이 지금 다 대박 치고 있거든요. 그래서 도박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예요. 아이들 (입시 공부에서) 풀어주면 더 많은 임윤찬·손흥민·방탄소년단이 탄생할 것 같아요. 아이들을 제도권에 다 붙들어 놓고,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형 인재'로 키워야 한다”고 했어요.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미래학자들은 앞으로는 직업을 대여섯 번씩 바꿔야 할 거라고 합니다. ‘평생 일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새로운 일을 위해 계속 배워야한다는 얘기에요. 첫 관문에 목맬 이유가 없다는 거죠. 부모 세대가 살았던 세상과 시각으로 (공부를) 강요하고 이른바 ‘스카이(서울·고려·연세) 대학’에 아이를 보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들 아이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자신의 인생을 길게 설계하고, 살다 보면 어려움이 생겨도 헤쳐나갈 수 있는 아이. 제가 보기엔 그런 아이가 ‘통섭형 인재’입니다.”
—코로나와 폭우로 기후 위기를 실감합니다. 환경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질병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일 자주 벌어질 것 같다고 하거든요. 아이들이 생애 동안 이런 일을 대여섯 번 겪을 거라고요. 삶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국·영·수 뿐 아니라, 자연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공교육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반가운 건, 코로나로 힘들게 살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이 자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분명하게 느낍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Q. 육퇴한 밤은?
작지만 확실한 ‘육아 동지’가 되고 싶은 <육퇴한 밤>은 매주 목요일 영상과 오디오 콘텐츠로 찾아갑니다. 영상 콘텐츠는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 TV, 오디오 콘텐츠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공개됩니다. ‘구독·좋아요’로 응원해주세요. 소중한 의견 환영합니다. lalasweet.nigh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