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비폭력대화법을 공부하며 자신의 삶에 적용한 결과를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라는 책으로 펴낸 이진희 한국방송 라디오 피디는 “가정에서도 비폭력대화를 쓰니까 아이들과의 대화가 풍성해졌다”고 말한다. 이진희 피디 제공
아들 쌍둥이를 키우는 이진희 한국방송(KBS) 라디오 피디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소리도 안 지르고 키울 수 있죠?” 이진희 피디는 그 비결이 “비폭력대화에 있다”고 말한다.
“비폭력대화를 만든 마셜 로젠버그가 말하길, 인간은 연민과 평화의 마음을 본성적으로 타고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가 양육이나 학교, 관계 등에서 상처 입으면서 우리의 본성이 왜곡된다고 해요. 아이들을 키워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고요. 제 양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타고난 평화와 연민의 마음을 감히 내가 훼손하지 않고 키우는 것이거든요. 아이들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가정에서 비폭력대화를 합니다.”
이진희 피디가 ‘대화법’에 대해 처음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직업적인 이유였다. 청취자 사연을 받아 전하는 라디오 피디를 하다 보니 이들의 사연에 진행자가 어떻게 반응해주는 게 좋은지 고민이 많았다. 사연에 대한 이런저런 코멘트 끝에 마무리는 대부분 ‘힘내세요’였다. 나쁜 의도는 없지만 왠지 공허하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말 같았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지 스태프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회의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비폭력대화’를 만나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이유였다.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던 중 “진희씨는 대화법만 조금 바꾸면 많이 좋아질 텐데요. ‘비폭력대화’라고 들어봤어요?”라는 조언을 듣는다. 내성적이긴 했지만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꽤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했던 그는 상담가의 제안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우울증의 근원이 해결되지 않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비폭력대화’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비폭력대화교육원을 찾아가 교육을 받고 관련 책도 읽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서 점점 삶이 변화해나갔다. 그 과정을 타인들과 나누고자 팟캐스트 ‘대화만점’을 2년간 운영한 데 이어 최근에는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마일스톤)라는 책도 펴냈다. 책은 그가 비폭력대화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여정과 함께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게 돕는 풍부한 사례와 적용법을 담고 있다.
그의 변화의 요체는 자존감이 나아지고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진희 피디는 “우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외부 자극이나 상대의 말은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 상처 주는 자책과 비난으로도 지쳤거든요. 요즘은 크게 자극받는 일도 없고,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도 많이 줄었죠. 그렇게 세이브된 에너지가 몸의 건강으로도 가고 마음의 여유로도 가면서 새로운 도전도 많이 하게 되고 이렇게 책까지 펴내게 됐어요.(웃음) 또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많이 쓰는 관계들도 많이 정리가 됐어요. 대신 나이·학연·지연·혈연과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면서 서로 북돋아주는 그런 관계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게 모두 자존감이 전보다 단단해지면서 가능하게 된 거 같아요.”
자존감이 나아지고 관계가 좋아지고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보통 상담의 결과물이다. 어떻게 비폭력대화법이 이런 상담의 결과를 낳았을까? 그 이유는 비폭력대화법이 바로 자존감을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관찰-느낌-욕구-부탁’의 4단계 말하기 방법이다. 일단 상대와 나의 상황과 상태를 판단이나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예컨대, 상대가 약속 시간에 10분 늦었다면 ‘약속 시간에 늦다니 무례하군’이라고 판단하는 대신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했다’라고 정리한다. 그다음 내 느낌을 살펴본다. 상대의 지각에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면 이게 나의 느낌이다. 느낌은 내가 원하는 것이 보내는 신호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욕구를 탐색한다. 탐색 결과, 내 욕구는 내 시간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마음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걸 상대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부탁한다. ‘나의 시간도 소중하게 대해주면 고맙겠다’고. 하루에도 숱하게 대화를 나누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숱하게 나의 느낌을 무시하고 욕구를 억압한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의 뜻대로만 굴러가게 되고 나는 원망과 분노가 쌓이고 결국 관계는 멀어진다.
비폭력대화법이 ‘대화법’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자신을 관찰하고 느낌을 살피며 욕구를 파악하는 과정을 계속 거치기 때문에 이는 일상적인 자기돌봄과 자기연결의 과정이 된다. 그래서 이 피디는 “비폭력대화는 나의 빙산의 일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물밑으로 들어가서 나의 빙산의 모습을 더듬어보고 다듬을 수 있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게 아니라 ‘부탁’하는 말하기이기에 나뿐만 아니라 관계도 지키는 대화법이다. 관계가 좋아지니 회사 내 팀워크도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
그가 교육원에서 비폭력대화를 배울 때 수강생은 대략 2개의 집단군이었다고 한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갈등을 중재해야 되는 교사들과, 사춘기 자녀들과의 대화에 목이 마른 어머니들이었다. 그에게 “만약 모든 가정에서 비폭력대화를 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었다.
“너무 상상만 해도 좋은데요. 비폭력대화로 싸우게 되면 너무 다른 삶의 경험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깊은 연결이 일어날 수 있고, 부부가 그런 안정된 연결을 이룰 때 아이들이 평화롭게 자랄 수 있다고 봐요. 이렇게 자라나면 학교나 직장이나 여러 공동체에서도 갈등을 폭력적인 언어나 행동이 아니라 대화로 풀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외연을 확대해나가면 너무 좋죠. 그 핵심은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가정에서 이걸 익히지 못하고 자라났다고 해도 저처럼 배워서 자기 삶에 적용할 수도 있으니 좋죠.”
실제로 이진희 피디는 남편도 함께 비폭력대화를 배운 터라, 부부가 싸울 때도 비폭력대화법으로 싸우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비폭력대화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비폭력대화를 하니까 대화가 정말 풍성해졌어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감정과 욕구를 이야기해요. 제가 비폭력대화를 가르쳤다기보다 본디 가지고 태어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덜 손상된 상태인 거 같아요. 가령 세살 아이가 저에게 물어봐요. ‘엄마, 지금 기분 괜찮아요?’ ‘엄마 지금 몸이 어때요? 몸이 뭐라고 말해요?’라고.”
7년째 여전히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비폭력대화가 널리 퍼지는, 상상만 해도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