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기술과 만났을 때, 상상은 현실이 된다! ‘미디어아트’는 대중매체를 미술에 활용했다는 의미에서 컴퓨터 기술을 사용해 미디어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뜻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다. MR(혼합현실), 홀로그램 등 실감 미디어를 개발하며 우리의 눈과 귀를 신세계로 이끄는 기업이 있다. ‘닷밀’ 정해운 대표를 만나 미디어아트의 모든 것을 물었다.
“신비로운 경험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다면”
정해운 ‘닷밀’ 대표
Q. 먼저 ‘미디어아트’에 대해 알고 싶어요. 오늘날의 미디어아트가 우리가 흔히 아는 미술 작품이나 전시와 다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돌이나 나무를 깎아 조각을 만드는 방식과 다르게 미디어아트는 프로젝터나 LED 등의 최신 장비로 작품을 표현해요. 즉, 기존 미술 작품과 재료만 달라졌을 뿐 맥락은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소유욕까지 느끼게 한다면 저는 그것을 ‘예술’로 정의하는데요, 그래서 미디어아트와 전통적인 예술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은 언제부터 미디어아트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미디어아트 회사를 어떻게 창업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저는 원래 컴퓨터공학을 배우는 학생이었어요. 한창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제 길이 아닌 것 같아 디지털아트과로 전공을 바꾸면서 미디어아트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이 분야는 적성에 잘 맞고 매력을 느껴서 즐겁게 일을 해오다가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주자’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차렸죠. 닷밀의 ‘밀(mill)’은 방앗간을 의미해요. 콘텐츠와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방앗간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신비한 것이 메말라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비로운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잘 일어나지 않지만, 미디어아트를 통해 가능하게 해보자는 것이 목표였죠. ‘Be Mystic’, 세상을 더 신비롭게 바라보라는 닷밀의 슬로건처럼요.
Q. 그만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도전을 계속한다는 의미겠죠? 닷밀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제주에 ‘루나폴’이라고 하는 야외형 디지털 테마파크를 만들었어요. 일명 ‘메타파크’라고 이름을 짓고 초대형 규모로 올해 8월에 개장했답니다. 루나폴은 ‘만약 제주도에 달이 떨어진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사람들이 달에게 소원을 너무 많이 빌어서 점점 무거워진 달이 어느 순간 떨어졌고, 그래서 테마파크에 가면 언젠가 우리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빌었던 소원을 찾을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을 완성했죠. 이렇게 기획자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전체적인 콘셉트를 짜고요, 공간을 설계하는 전문가와 캐릭터 디자이너, 영상 디자인을 담당하는 아트 디렉터, 조명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현장 답사가 중요한데요, 공간을 둘러보며 어떤 미디어아트를 보여주면 좋을지 꼼꼼히 계획해서 그에 따른 도면 설계도를 제작하고, 하드웨어 장비를 설치해요. ‘영상이 영상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영상이 영상 같지 않다는 건 뭘까요? 눈에 보이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구현한다는 걸까요?
가령 바위에 금색 폭포가 흐르는 것을 보여주는 미디어아트를 만든다고 가정해볼게요. 우선 바위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할 수 있도록 3D 스캐너로 찍은 뒤 컴퓨터로 정교한 3D 모델링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특수효과를 제작하는 FX 디자이너가 폭포가 흐르는 영상을 만들어요. 물의 반짝거림과 질감, 흐르는 속도 등 실감 나 보이는 설정 방법을 찾아가면서요. 단순한 폭포 영상이 아닌, 실제 바위에 폭포가 흐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면 더 다양한 장치가 필요해요. 프로젝터를 설치해 실제 바위 표면에 폭포 영상을 띄우고, 폭포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내요. 그리고 바위 아래에는 물이 떨어질 때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치를 두기도 하고요. 또, 반응형 센서를 통해 관람객의 손에 무언가가 닿았을 때 금빛이 반짝거리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죠.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모든 오감으로 생생히 접하는 실감 나고 재미있는 미디어아트를 선사하고 싶어요.
Q. 국내 미디어아트를 이끌고 있는 대표주자로서 잊지 못할 순간도 있었나요?
2~3명의 직원과 회사를 꾸려갔던 초창기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어요.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의 미디어아트는 우리가 만들 거다’라고. 그런데 그 소원이 정말 이루어져서 전 세계인에게 우리가 만든 프로젝션 매핑 쇼를 펼쳐 보였을 때의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해요. 그 일이 평생의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웃음)
Q. K-콘텐츠 시대를 이끌어갈 미디어아트 전문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미디어아트 분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미디어아트는 특수한 공간에서만 만나볼 수 있지만, 머지않아 TV나 모바일로도 접할 수 있게 돼 미디어아트가 점차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올 거예요. 우리 닷밀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즐기는 피크닉’이라는 콘셉트의 복합문화공간을 선보이려고 해요. 영국의 국립박물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고흐, 세잔, 렘브란트 등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을 프로젝션 매핑으로 구현하고, 숲을 재현한 공간 안에서 누구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 거예요. 여러분도 앞으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계속 경험하면서 직접 미디어아트를 만들어보며 나만의 작업물을 모은 포트폴리오를 완성해보세요.
■ 미디어아트 입문자를 위한 간편 용어 사전
1. 프로젝션 매핑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된 영상을 띄워 마치 다른 공간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
2. 미디어 파사드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보여주는 기법으로, 건물 벽이 미디어 스크린 기능을 하도록 구현하는 것
3. 디지털 사이니지
키오스크나 홀로그램 등 디스플레이를 네트워크와 연결해 각종 정보를 보여주는 디지털 미디어
4. 아나모픽
스크린에서 물체가 튀어나오는 듯한 착시효과를 통해 입체감을 극대화하는 기법
■ Art & Technology_‘닷밀’의 미디어아트
잃어버린 벽화를 찾아서, 디피랑
통영의 동피랑 마을 벽화는 2년마다 새롭게 그려진다. 이때 지워진 벽화들은 어디로 갈까? 동화 같은 상상으로 시작된 몽환적인 나이트 테마파크, ‘빛의 정원, 디피랑’은 통영 남망산공원 1.5km의 디지털 산책로를 통해 미지의 세계로 관람객을 이끈다. 홀로그램, 프로젝션 매핑, 일루미네이션(장식용 조명) 등을 이용해 ‘신비폭포’, ‘비밀공방’, ‘빛의 오케스트라’ 등 15가지 테마 속에서 실감 미디어를 즐길 수 있다.
서울의 역사를 빛낸 2019 서울라이트
서울의 랜드마크인 DDP를 빛으로 채운 ‘2019 서울라이트’에서 220m에 달하는 미디어 파사드를 제작했다. DDP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3개의 챕터로 구성된 미디어아트가 약 16분 동안 DDP 전체 외벽에 펼쳐지며 아름다운 빛으로 출렁였다.
세계를 하나로!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세계인의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모두를 위한 미래를’, ‘행동하는 평화’, ‘열정의 노래 1, 2’ 등 총 5개 공연의 프로젝션 매핑을 맡았다. 환상적인 미디어아트 기술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음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 평화, 통일의 메시지를 자연스레 전달했다.
스크린 너머로의 비상, 영화 <승리호> 옥외광고
전광판 안에서 ‘승리호’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 영상으로 화제가 된 이 광고에서는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통해 ‘서울 강남 빌딩에 등장한 비현실적인 우주정거장, 그곳에서 출격하는 승리호’를 표현했다.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박태양, 닷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