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SPECIAL] 세상을 바라보고 내 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꺼내는 화가

등록 2022-08-26 13:15수정 2022-08-26 13:33

화가(畵家)는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전업 작가를 말한다. 비단 위에 그려낸 초현실적 인물화로 국내는 물론 해외 예술계에서도 주목을 받는 동양화가, 서기환 작가를 만나 아이디어가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 그렸다.
사진 김영배
사진 김영배

평면 위에 작가의 의도로 깊이와 너비를 더하는 예술

화가는 작품의 구도를 구상한 뒤 그림 재료를 선택하고 이를 캔버스와 종이 등에 윤곽을 그린다. 캔버스와 종이, 나무, 유리, 비단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표면에 작가의 생각을 그리면 모든 것이 ‘회화’가 된다.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선과 공간, 크기, 색채 등 시각적 요소를 활용하며 이후 전시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판매한다. 회화와 관련된 학과를 전공한 뒤 각종 미술 공모전이나 전시에 참여해 이름을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나, SNS를 통해 그림을 지속적으로 게시해 인기를 얻어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로 데뷔할 수 있는 길도 넓어진 편이다. 화가는 크게 서양화가와 동양화가로 구분하는데, 서양화는 주로 유럽 지역에서 발달한 미술이다.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 수채물감, 크레용 등으로 그리고 자연적인 형태를 유지해서 그리는 구상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점이나 선, 면 등 추상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는 추상화로 나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원근법의 구도를 이용하고, 색을 다양하게 사용해 명암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에 반해 동양화는 중국에서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발달했다. 비단이나 화선지에 붓과 먹, 안료를 사용하며 동양의 전통적인 기법과 이론에 따라 그리는 동양화는 먹의 짙고 옅음을 이용해 그리는 수묵과 색을 사용하는 채색 기법으로 나누고 인물을 중점적으로 그리는 인물화와 풍경을 담는 산수화로 분류한다.

■화가에게 듣는 직업 이야기

사진 김영배
사진 김영배

“오늘의 동양화가는 한국의 정서로 새로운 전통을 그려냅니다”

서기환 동양화가

Q. 서기환 작가님은 채색 인물화를 전문적으로 작업하시는데요, 동양화를 그리는 작업 과정을 알려주세요.

저는 화선지나 종이보다는 주로 비단에 작업을 해요. 종이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보며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스케치가 완성되면 종이 위에 얇고 고운 비단을 붙입니다. 그러면 비단 위로 스케치가 비쳐요. 이 스케치를 먹선으로 따라 그린 뒤에 색을 칠하는 거예요. 채색은 분채(고운 흙에 안료를 섞어 만드는 물감)나 석채(색을 내는 광물을 갈아 만든 물감) 등의 동양화 물감에 아교나 물을 섞어서 사용하는데요, 두 번의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전채(前彩)로 앞에서 색을 칠한 뒤, 비단 뒤에 색을 칠해 한 번 더 우러나오게 하는 배채(背彩)로 완성합니다. 전채와 배채가 합쳐지면 그림에 깊이감이 생기거든요. 100호 크기의 작품을 기준으로 두면 비단에 그릴 때는 두어 달, 종이에 그리면 한 달 정도 걸려요.

Q. 작가님의 그림은 아주 섬세해서 디테일을 곰곰이 살펴보는 재미가 있어요. 밑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겠는데요.

비단은 한 번 잘못 그리면 고치기 어려워, 스케치를 아주 정확하게 해야 해요. 저는 작품을 구상할 때 책상에 앉아 에스키스(Esquisse, 회화에서 작품 구상을 정리하기 위해 하는 시험작, 초고, 밑그림)를 하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찾아내요.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공상과 상상을 하면서, ‘이렇게 사람의 욕망과 욕구를 비틀면 재밌겠다’ 하는 걸 짚어내는 거죠. 요즘은 휴대전화로도 손쉽게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서 참 편해요.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로 구상을 시작한 후부터는 작품에 임하기까지 꽤 오래 걸려요. 인물화 작가는 영화감독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감독은 배우를 캐스팅한 뒤 그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찾고, 촬영 장소를 물색하잖아요. 화가도 마찬가지로 그리고 싶은 인물이 생기면 어떤 옷을 입힐지, 또 어떤 색을 쓸지 몇십 번을 반복해서 구성도 하고 최대한 세세하게 설정한 뒤 그림으로 구현하고 있답니다.

사진 김영배

Q. '서기환'의 화풍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죠. 곧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외국의 여러 아트페어에서도 작가님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들었어요. ‘서기환’의 그림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서양인의 눈에는 유화 작품이 훨씬 익숙할 테니 비단이나 화선지에 그리는 동양화의 독특한 매력에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서양화가들이 구사하는 빛과 명암은 동양화의 기법과 아주 다르거든요. K-콘텐츠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상당하고요. 제가 요즘 발표하는 ‘화인(花人)’ 시리즈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귀가 잘린 자화상>이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 서양 명화를 모티브로 한 것들이 있는데요, 익히 아는 명화 작품을 동양적 시각과 기법으로 재해석해 또 다른 맛으로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합니다.

Q. 오랜 시간 동양화를 연구하고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처음 동양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처음엔 공업디자인학과에 지원하고 싶어서 미술 학원에 다녔어요. 당시 학원 원장 선생님이 동양화가였는데, 수묵화를 작업하시는 걸 보고 처음으로 동양화에 관심을 가졌죠. 먹이 번져나가는 게 정말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그러다 중국의 동양화가 ‘왕자무(王子武)’의 화집을 보고 인물동양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입시를 한두 달 남기고 전공을 바꾼 거예요. 구성이나 도안을 그리고 포스터컬러로 그림을 그려오다 갑자기 수묵을 이용하는 동양화를 전공하려니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합격했고요. 이후에는 동양화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종주국인 중국으로 유학을 가 수묵인물화를 공부했죠. 실제로 왕자무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답니다.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던 시절이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요.(웃음)

Q. 작가님의 그림은 생생한 인물화에 중점을 두면서도 환상적이에요.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일상적인 장면임에도 어딘지 비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작품에 초현실적인 장치를 넣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어릴 때 형이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어요. 비정상적인 사람과 함께 사는 집은 평범하지 않아요. 남들은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도 저에겐 동경의 대상이었죠. 좋아하던 형이 변하는 걸 보면서 인간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요. 제게 그림, 미술은 치유의 도구였어요.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 모든 걸 자유롭게 표현해낼 수 있으니 자연히 초현실주의로 그림을 표현하게 됐죠. 지금은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 파고들지, 아니면 동양화를 알릴 수 있게 대중적으로 다가갈지 고민이에요. 동양화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 거리감을 좁혀주고 싶어서 명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하기도 하죠.

Q. 지금은 서울대학교, 경희대학교, 제주대학교 등 여러 대학 강단에도 서시잖아요. 후학을 양성하는 입장에서 앞으로의 동양화가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국적인 정서, 한국적인 미감(美感,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만 있다면 한국화가, 동양화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양화에 담긴 정신성이나 기법만 제대로 이해하면 재료는 문제 되지 않죠. 연암 박지원이 설파한 고사성어 중에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어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죠. 전통에 갇히지 않고 자기화하는 게 미래의 동양화가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에요. 강의를 하면서 늘 하는 말이지만, 틀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가르친다고 해도 조선시대 화가인 김홍도처럼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잖아요. 옛날에는 없었던 플라스틱이나 비닐도 동양화 기법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요. 저 역시 당장의 작업이 바쁘기는 해도 동양화가 그저 고리타분한 그림이 아님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계속 강단에 설 예정이에요.

Q. 현대의 동양화는 서양화와 경계가 없어지는 추세예요. 이제 동양화는 또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요?

많은 동양화가의 작품을 보면 장지(壯紙, 우리나라에서 만든 두껍고 질긴 한지 종류)에 그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거예요. 그만큼 동양화의 화풍이 다양해지고 화가들이 나서서 틀을 깨는 추세예요. 이제는 채색 동양화가 새로운 전통이 될 거예요. 동양화를 전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건 조금 걱정이에요. 아무래도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동양화 재료를 자주 접하지 않다 보니 붓을 들고 먹을 칠하는 감성이 낯선가 봐요. 동양화에 관심이 있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서화관 등에서 옛 그림들을 많이 봐두면 좋겠어요. 그림은 실제로 감상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컴퓨터나 모바일 화면에서 보는 것과 그 느낌이 정말 달라요. 자기가 어떤 걸 재밌어 하는지 알면 ‘나’라는 사람이 보입니다. 다양한 경험으로 할 이야기가 많은 예술가가 되길 바라요.

사람풍경-Night travel_145.5×112cm_비단에 채색_2015. 서기환 제공
사람풍경-Night travel_145.5×112cm_비단에 채색_2015. 서기환 제공

서기환 화가는 따스한 눈빛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바라보고, 또렷하며 빛나는 색감으로 비단 위에 마음껏 그려낸다. 특히 새로운 공간이 주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 여행은 늘 그에게 영감을 준다. 그러나 여행이 늘 즐겁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라 가는 길은 답답하고 지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여행길 꽉 막힌 도로에서 느꼈던 가족 모두의 욕구를 풀어주고자 그린 그림이다. 차가 시원하게 달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배경은 바다로, 카시트에 앉아 답답해하던 아이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줬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쁜 아내는 혼자 유유자적 낚시를 즐기게 했다. 여행을 끌고 가야만 하는 작가 본인은 아직 운전석에 있지만! 작가도, 작가의 가족들도 모두 사랑하는 ‘최애’ 작품이다.

사람풍경-Flower Men 09(Red Wine)_117×153cm_ 비단에 채색_ 2021. 서기환 제공
사람풍경-Flower Men 09(Red Wine)_117×153cm_ 비단에 채색_ 2021. 서기환 제공

사람마다 활짝 필 개화 시기가 다 다르다는 의미를 가진 ‘화인(花人)’ 시리즈는 사람의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꽃을 그려 넣은 작품들이다. 인물화를 오래 그리다 보니 인물의 눈, 코, 입이 주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대신 꽃다발을 얹었다. 그림에 어울리는 꽃의 모양, 색감, 계절감, 꽃말까지 생각해 마치 꽃꽂이하듯 작업하고 있다.

전정아 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

글 전정아 · 사진 김영배 · 그림 제공 서기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1.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2.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3.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4.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5.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