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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석양과 로스코

등록 2022-08-22 18:31수정 2022-08-23 02:34

[연재] 미술교실에선 무슨 일이?

1956년 8월11일. 한여름 밤의 후덥지근한 대기 속으로 포드자동차가 사나운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커브 길에도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이내 찢어질 듯한 마찰음과 함께 차는 도로를 벗어나 나무를 들이받았고 그의 몸은 차창 밖으로 튕겨 나갔다.

“망할 놈의 피카소, 그가 이미 모든 것을 해버렸어!”

잭슨 폴록은 피카소를 흠모하거나 비난했다. 흠모할수록 자괴감은 커졌고, 비난할수록 나아갈 길을 잃고 절망했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은 더욱 심해졌고, 연거푸 피워대는 담배 연기만 허공에서 자유로웠다. 1946년부터 폴록은 캔버스 천을 바닥에 깔고 그 위를 걸어 다니며 페인트를 뿌리거나 떨어트렸다. 일체의 형상은 없고 유럽 추상화가들이 맹종했던 기하학도 없었다. 단지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선율에 따라 격한 감흥의 자취만 남을 뿐이었으나, 이것은 ‘추상표현주의’ 또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의 출발점이 된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몸부림이었지만 폴록은 이를 통해 피카소의 그림자를 벗어나 유명해졌으며 급기야 유럽 미술을 뛰어넘는 미국적 회화의 첫 주인공이 된다.

절망과 자기 파괴를 일삼던 일개 화가를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재탄생시킨 것은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였다. 그는 유럽 중심의 미술은 힘을 다했고, 이제 새로운 미술이 미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유럽의 보호자와 양육자 노릇을 하는 미국의 당연한 자격이라 생각했다. 그린버그는 유럽 모더니스트들이 정의한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다. 모더니스트들은 르네상스의 업적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교한 투시 원근법으로 실재하는 듯한 공간과 해부학적으로 아름답게 구현된 인체는 결국 왕권과 신권을 절대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 여겼다. 하여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은 현실적 공간과 형태의 묘사는 혁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입체파는 형태를 끝내 벗어나지 못했고 칸딘스키의 순수추상과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또한 공간의 깊이감과 대상과 배경의 관계를 뿌리치지 못한다. 그린버그가 기획한 미국 회화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캔버스 천의 표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평면성과 어떤 형상도 암시하지 않는 비구상성. 잭슨 폴록이 페인트를 뿌리거나 떨어트리는 행위는 그린버그의 기획에 너무나도 적절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린버그는 잭슨 폴록을 앞세워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음을 천명한다. 그의 기획은 미술 역사의 전체 흐름을 관통하는 것이어서 실재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마침 1940년대는 미국이 미국적 문화를 갈구하던 때였기에 그린버그와 폴록은 세계사적 천운에 올라탈 수 있었다.

졸지에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음에도 잭슨 폴록의 우울과 방황은 계속되었다. 그의 성취가 자신의 것이 아닌 그린버그의 성취였기에 더욱 그랬다. 고주망태가 된 잭슨 폴록은 그의 정부를 옆에 끼고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파괴를 감행한다. 캔버스 천 위에 흩뿌려지는 페인트처럼 폴록의 몸은 15m를 흩뿌려지며 날아갔다.

잭슨 폴록이 없더라도 그린버그의 기획이 중단되어선 아니 되었다. 그가 다시 선택한 화가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였다. 그린버그의 눈에는 로스코의 비구상적이며 매끄럽고 평평한 색면이 질주하는 선으로 난잡한 폴록의 화면보다 더 평면적이었다. 1940년대 잭슨 폴록에 이어 로스코는 1950년대 그린버그가 주도하는 미국적 미술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로스코의 그림은 폴록의 그것과 달랐다. 그린버그가 미국적 회화를 규정짓는 절대적 평면성이라는 형식적 정의와 다른 특성이 있었다. 배경 화면 위에 덩그러니 떠다니는 색면은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 일쑤였다. 폴록의 그림은 그린버그에 의해 감상 가능한 것이었으나, 로스코의 그림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고 울먹이며 격한 감정을 유발했다. 몬드리안의 색면에서 느끼는 냉정함과 이성적 사유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지독한 근시였던 로스코는 색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마감하기를 즐겼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옮긴 결과일 것이다. 꽤나 큰 캔버스 위로 수평적 색면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은 아련한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사람들 각자의 추억 속에 어렴풋한 드라마를 품은 풍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스코는 끝까지 자신의 그림이 풍경과 연결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색면으로 인간의 비극, 엑스터시, 운명 등의 감정을 발현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로스코의 그림은 그린버그의 기획이 필요 없는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관객을 흐느끼게 하는 색면에 대해 ‘형식’적 논의는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것은 너무 많은 추억과 회상과 드라마가 녹아 있는 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체가 되었다. 그의 색면은 관객을 동요시키는 ‘능동적 발현체’였기 때문에 단순히 화가의 붓끝에서 그려진 색칠(Color)이 아니라 드라마를 일으키는 작용자(Agent)였던 것이다. 그 드라마는 결국 ‘숭고함’으로 귀결되었다. 제한적인 캔버스 화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로스코의 그림은 캔버스의 가장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이런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는 최적의 거리를 45㎝라고 규정했다.

로스코 이후로 그린버그의 미국적 회화, 즉 추상표현주의 운동은 서서히 막을 내린다. 그 없이도 이미 뉴욕은 세상의 모든 미술을 품은 거대한 용광로였고, 1960년대 팝아트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에 종지부를 찍는다.

언젠가 어떤 아이가 물었다.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왜 슬픈 감정이 들거나 눈물이 나는 걸까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감정의 격앙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이외엔 할 일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린버그처럼 이성적 이해와 목적을 앞세운 감상자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질문은 내 마음의 저면에 깔려 사라지지 않았다. 일상에선 자각되지 않지만 어떤 햇볕 어떤 바람 어떤 풍경에서 불현듯 갑작스럽게 상기되는 그런 것.

한여름의 제주 용눈이오름을 올랐다. 정상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걸을 때 이미 해가 뉘엿뉘엿 서편으로 저물고 있었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 주변으로 우도가 보이고 곳곳에 봉우리가 울쑥불쑥했다. 주변은 이내 석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거뭇해졌고 다만 핏빛처럼 빨간 석양이 바다와 하늘을 까마득하게 뒤덮었다. 멀리 있는 어선의 불빛이 샛별처럼 아련히 빛나던 그 순간 나는 로스코의 붉은 색면이 떠올랐다. 알 수 없지만 지금 느끼는 묘한 감정이 로스코 그림 앞에서의 느낌 아닐까? 점멸하는 빨간 석양의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아내와 딸과 아들을 등지고 혼자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그 아이의 질문에 대해 응답의 말을 건넬 수도 있을 것이다.

로스코는 끝까지 풍경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혹여 8월의 어느 날,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아이가 있다면….

“아이야~ 지금 석양을 보고 있니?”

나는 다시 제주 바다의 석양을 보고 있다. 선혈의 붉은 색면!

글·그림 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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